brunch

안녕, 내 마음의 빛이자 파도였던. 명파.

에피-을 롤로그 - 뒷이야기이자 다시 시작되는 인연

by Siho

10.31(금)


*마지막 사진을 무엇으로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이것만큼 <안에 계세요?> 프로젝트를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없었다. 봉여 할머니와 마지막 저녁식사 후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드렸더니 매일 보면서 생각하시겠다고 화장대에 꽃아 둔 모습.


아마도 나는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아주 찰나이더라도, 얇디얇은 사진 한 장이더라도 그렇게 꽂혀 있고 싶었던 것 같다. 달콤하고 따뜻한 라테를 들고, “안에 계세요?” 하고 문 두드리던 기억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와 기꺼이 발걸음을 맞추어 준 류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커피를 내리는 역할만으로도 충분한데, 아카이빙으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다양한 음료 실험에 함께 해 주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고, 마음을 더 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이타적일 수가 있을까' 신기했던 적마저 있었다.


그에 더해, 류 작가의 쏟아지는 진중한 질문들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중반으로 갈수록 질문-설명-납득의 프로세스가 익숙해지면서 때때로 자문자답을 하는 좋은 버릇이 생겼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설정한 가설만 믿고 그게 맞던 틀리던 밀고 나가지는 않았던가? 내가 하는 작업에 의문을 가지거나 잠시 멈춰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얼마나 있었나?


몸은 재료를 만들어 내느라, 머리는 의미를 찾아내느라 매일매일이 짧았지만 ‘이건 무슨 소용인가요?’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게 되었으니 이 과정은 분명 소용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류 작가님.



**명파를 떠나기 한 시간 전,

류 작가와 나는 차를 타고 그동안 우리가 은혜를 입은 모든 분들의 집을 돌았다. 분명히 나의 눈물주머니는 이미 진작부터 구멍이 나 있었음에도 여전히, 예측 가능하다시피, 나는 할머님들과 만나는 마지막을 눈물로 색칠하고 또 색칠해 버렸다.


한 할머니는 우리가 찾아갔을 때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깨우고 싶지 않으니 그냥 가자'라고 만류하는 류 작가의 말을 이번만은 듣고 싶지가 않았다. 어쩐지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 저희 가요. 저희 이제 명파 떠나요."

바보 같이 강하게 누르지 못하고 떨린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부스스 고개를 돌리면서부터 이미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 이제 아주 가?"


아, 너무너무 싫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그리고 슬픈 순간이지만 기어코 나는 말을 해야 한다.

"네, 저희 가요. 할머니..."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 할머니는

할머니는 "이런 보잘것없는, 나 같은 사람도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맙다. 고마워.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무릎까지 꿇고 나에게 매달려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할머니. 저희가 너무 귀찮게 했지요..."


얼굴을 묻고 꼭 안고 놓지 않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렇게나 꾹꾹 다부지게 눌러두었던 울음이 다시 터져 버렸다.

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서울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올라왔다.


참으로 밉게도, 하지만 고맙게도 뒤에서 류 작가가 너무도 담백하게 말했다. "작가님, 이제 그만 가죠"

이럴 땐 류 작가의 너무나도 T적인 성향이 꽤 도움이 되는 것도 같다. 안 그러면 나는 분명 떠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는 그 말을 해야 한다. 뱉은 순간, 약속이 되어버리는 말. 아마도 이곳을 찾을 때까지 몇 날며 칠, 어쩌면 수개 월을 나의 등 뒤를 따라다니며 "약속, 잊지 않았지?" 라며 쿡쿡 찌를 그 말.

"또 올게요. 할머니. 저희 꼭 다시 올게요. 건강히 계세요"



안녕 할머니.

안녕 명파.

안녕! 내가 사랑했던

모든 빛과 같은 순간, 그리고 파도와 같이 밀려오던 순간들이여.

스산한 새벽, 나른한 아침, 분주한 오후와 설레는 저녁, 잠들지 못하던 수많은 밤들, 새벽이여.


안녕. 안녕.











*부록*어느새 낡아가는 명파 사진첩


통일 박물관



지나칠 수 없는 얼굴들


따고,씻고, 깎고, 파고, 삶고, 끓이고, 달이고 의 반복



막 떨어진 밤은 너무 싱그럽고 귀여워!


우리 민박 앞 토란 밭에서 9월 말 토란 캐기: 알이 너무 작다


추석이 지나고 다시 캔 토란. 이거지!



길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순간


표정 있는 녹색이들


너, 고양이가 맞니?



그 많았던, 환대와 은혜의 순간들


keyword
이전 16화아트 페스타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