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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페스타 마지막 날

"안에 계세요?"가 "다녀올게요"로 바뀌던

by Siho

10.25(토)

마지막 날답게 날씨가 쨍하다. 부스를 찾는 손님도 어제보다 부쩍 늘었다. 우리는 분주하게 밤새 만들어 둔 옥수수 라테, 밤 우유를 아이스박스에서 계속해서 꺼내어 대접했다.

정 작가의 '똥강아지' 알바생 8명 채용!



고맙게도 류 작가가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서 윗마을에 가 철쭉 할머님을 모시고 왔다.


요 며칠 재료를 만들고 홍보 영상에 신경 쓰느라 할머니를 통 못 뵈었는데, 봄날의 철쭉처럼 고운 패딩을 입고 차에서 내리시는 할머니를 보니 너무 반가워서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가 안았다.


할머니, 저희 할머니가 주신 은혜를 이렇게 따뜻하게 여기저기 알리고 있어요!!


할머니는 큰 반가움에 우리를 꼬옥 안아주셨다. “록샤쿠(*키 큰 남자를 뜻하는 일본어. 할머니는 류 작가에게 늘 키 큰 총각, 혹은 록샤쿠라고 부르셨다) 랑 어멈이랑 있었구나!”.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어떨 땐 어멈, 어떨 땐 처녀, 어떨 땐 아줌마로 바뀌는 내 명칭은 아무래도 좋았다.


“할머니, 저희 이 음료 이름들 지은 것 중에 “깟댐 바암 우유”는 할머니가 이름 지어주신 거예요.”

“깟대미네~”


실제로 할머니는 가끔씩 “깟대미네-“ “썬오브 비치네-“ 하고, 정겨운 영어를 자주 구사하셨다.

영어도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그 표현이, 묘한 철쭉 할머니만의 매력이 느껴져 진작 할머니가 좋아하신 밤 우유의 이름으로 정한 바 있었다.


날이 추워져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우리도 자리를 정리했다. 다행히 완판(?) 되어 하나도 남지 않은 빈 병들, 재료 통들을 하나씩 쌓아 정리하며 이제 정말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는 것, 바야흐로 짐을 쌀 시간이라는 것, 모두와 안녕을 준비해야 하는 ‘돌아갈 때’라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 며칠 더 묵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모두가 우르르 빠져나가고 난 마을은 조금 쓸쓸하지 않을까. 매일 인사하던 우리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어쩐지 나부터가 슬퍼진 기분이 되어 천천히, 조금은 덜 쓸쓸할 수 있게 마을을 빠져나가기로 한다.


그래봤자 삼일 남짓이겠지만 그간의 분주함에 충분히 마음으로 준비하지 못한 안녕을 할머님들께, 어르신들께, 어머님들께, 민박집 어르신들께, 금강산 슈퍼 할아버지 할머님에게, 부동산 강아지 금강이에게, 그리고 내가 입맛을 다시며 올려다보던 감나무에, 대추나무에, 밤나무에, 한 참 매타작에 아픈 어깨를 움츠리고 있을 깻단들에게, 그리고 내가 가든 말든 시큰둥하니 바라보고 있을 동네 고양이들에게 까지 찬찬히 전하기에는 나름 괜찮은 시간일 것 같다.


앞으로 하나, 둘, 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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