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이라는 이름의 명상
10/18(토)
한가한 토요일 낮. 잠시 비가 멎었다.
본디는 마을 어르신들과 하려고 했던 플로깅을 혼자라도 해 보려 주섬주섬 집게를 챙긴다.
(어르신들은 매주 노인일자리를 통해 바다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줍고 계셔서 굳이 플로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날씨도 꾸름하고, 기분도 어쩐지 꼬름하니 이런 날에는 플로깅이 제맛이다.
명파는 최북단이라는 특징 때문에 가끔 특별한(?) 쓰레기들이 발견되는데, 얼마 전에는 서울에서 놀러 온 동료작가 수혜와 쓰레기를 줍다가 북한 과자 봉지도 발견했다.
세상에 부럼 없다는 저 역설적인 문구... 정말 부럼 없는 거 맞니??
늘 그렇듯 부표에 꽃 핀 새로운 바다 생태계도 발견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표류했을까. (여기 긁히면 최소 피 철철인데...)
예전 같으면 전시에 쓰기 위해 바로 수집해서는 낑낑대고 숙소로 가져갔을 테지만, 저런 부표가 집에 네댓 개는 있는데다 + 냄새도 냄새. 그리고 이제 공간도 없으니 포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부턴가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울 땐 욕심을 조금 버리게 된다.
전부 줍지 않아도 돼. 내가 다 주워서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려.
왜냐면... 끝은 없을 것이고 쓰레기를 0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나는 금방 지칠 것이니까. 그리고
기왕 줍는 거, 몽땅 주우면 매우 좋겠지만 다음 주에 어르신들이 주울 거리도 좀 있어야 하니 나는 큼직큼직하고 줍기 쉬운 것들을 남겨 둔 채 조그만 플라스틱들만 건진다.
쓰레기도 가려가며 쇼핑하다니. 웃음이.
재작년과 작년에 부산에서 인터뷰했던, 쓰레기를 줍는 두 청년 이 생각난다.
꾸준히 바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두 청년들을 만나고 내가 느낀 건, 플로깅이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맞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의 찌꺼기를 줍는 거더라.
줍다 보면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도 주워야 하고, 왜 이러고 있나 하는 마음도 주워야 하고,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까지 오면 급기야는 나는 어디인가, 누구인가 까지 자문하게 된다.
더러는 도로 위에서, 더러는 모래 위에서
오롯이 '집게'와 '내'가 하는 일. 그쯤 되면 줍기 명상이다.
한참을 줍다가, 또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또 줍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려고 한다.
이다지도 잔잔하고도 평화로운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 까슬하다.
뭐든 그렇게 받아줘선 안 되는 거야 바다야.
인간을 혼내주라고. 된통 혼내줘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