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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Oct 27. 2024

다시 강진 한달살이 1일

논병아리,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강진에 돌아왔다. 비지니스 연계 지역살이를 하러 다시 왔다. 지난번엔 2주, 이번에는 한 달. 

동생을 진주에 내려주고, 나는 강진에 왔다.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강진은 익숙하고 반가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소리, 차소리 보다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 강진에 왔다.

지난 2주와는 다르게 이번엔 한달이라 단단히 준비를 해왔다. 한달을 사는데 나한테 필요한 물건이 이렇게 많은지 나도 몰랐다. 싸다 보니 거의 이삿짐이 되었는데,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사는 것보다는 가져오는게 맞는거겠지.

짐을 다 숙소에 옮겨두고 일단 산책에 나섰다. 강진에 왔으니 산책에 나서야지.

지난 2주동안 오리 한 마리 보지 못해서 온천천에서 만난 오리들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이번엔 강진에 오자마자 오리류를 만날지도 모를 저수지로 향했다. 분명 무언가 날개짓을 하고 날았단 말이지, 난 그게 무슨 오리인지 알아야겠다는 거지.


고작 일주일 다녀왔는데, 고새 추수를 다 해버렸을까봐 내심 초초했다. 근데 다행히도 아직 추수중이라 황금 들판을 조금 더 볼 수 있게 되었다. 추수철에다가 감도 수확하고, 콩도 따고 깨도 털고, 농촌은 지금이 한창 바쁜 시기인가보다.


너는 왜 거기 있니

인도가 없는 도로를 천천히 걸어 저수지에 도착했다. 저기 뭔가 까만 오리가 보인다! 꼬리쪽에 하얀 깃이 보이고, 얼굴쪽에도 흰색 털이 보이는데, 집에 가서 도감을 찾아봐야지.

도감 찾아봤는데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보러 가야된다.

그래도 연잎이 많이 시들어서 물이 많이 드러나 있었지만,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잎들이 흔들리는 탓에 새인지 바람인지 알 수 없는 움직임들이 많았다. 물고기들은 물 속이 답답한건지, 물 밖에 먹을게 있는건지, 숨을 쉬는건지 알 수 없지만 뽁 뽁 소리를 내며 물 밖으로 입을 뻐끔거렸다. 

반바퀴만 돌아 나오려고 했는데, 산책로 난간에 앉아있는 왜가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멀리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걷는 동안에도 내 시선은 계속 저수지를 향했다. 어 오리? 어? 잠수를 해버렸다. 

딱 저 중간에서 뿅 하고 사라져버렸다.

잠수하는 오리라니!! 어쩐지 자꾸 풍덩 소리가 난다 했어. 잠수하는 오리라서 더 포착하기가 힘들었구나. 오늘도 만나기는 힘들겠다 하고 저수지 둘레를 걷고 있었다. 


콩이다 콩

근데 어디서 삑삑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새소린데 이건 뭐지 하고 계속 걸으면서도 시선은 물에 향해 있었는데 뭔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오! 오리다! 아기오리처럼 작은 오리들이 삑삑 삐약삐약 거리면서 여러마리 이동하고 있었다. 쌍안경을 들어 자세히 보니 무리 중에서도 살짝 큰 오리가 있고, 작은 오리가 있었는데 살짝 큰 오리는 목 부분이 진한 붉은 주황색이었다. 이건 논병아리 같은데? 작은 오리는 얼굴에 흰색 얼룩무늬가 있었는데 딱 봐도 털이 보송보송한게 아기 같았다. 삐약삐약 삑삑 소리를 내면서 오리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나도 따라갔다. 멈춰서서 쌍안경으로 보았더니 목덜미가 붉은 주황색인 오리는 잠수를 했다. 그러면 작은 오리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데 잠수해서 나온 오리의 입에는 물고기가 있었고, 그 물고기를 작은 오리에게 건네 주었다. 아마 부모오리가 아기오리에게 먹이를 구해다 주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 어디 있어요 하면서 잠수한 부모오리를 기다리는 아기 오리는 삐약삐약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 

물 속에서 잡은 물고기 아기한테 주는 중


연꽃씨도 빼먹나..?


지난번에 2주동안 3번이나 왔었는데 그때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던 오리류의 새를 이번에는 두 종류나 보다니, 아무래도 강진이 나를 환영해주는 것만 같다. 

딱 자기같은 자리 찾아서 쉬고 있는 참새


벼다아~ 흘리고 갔나보다.


주렁주렁 열린 참새들


한골목길의 감들은 어느정도 익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렇담 또 가봐야지. 다음 산책은 한골목길이다. 

직박구리들은 달콤한 과일을 좋아한다.

걸은지 얼마 안돼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이구, 그만 걸으라는 거구나.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왔더니 어나더랜드 대표님이 반겨주셨다. 비지니스 연계 프로그램 계획서 얘기를 하기로 했다.

비지니스 연계 프로그램은 100만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제일 처음 생각난 건 독립출판이었다. 무슨 내용으로 하면 좋을까 하다가 강진에서는 하루에 2번씩 매일 산책을 했으니 산책에 관한 책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나랏돈 받기 쉽지 않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지금 여기서 행해야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나는 왜 이게 하고 싶은걸까. 왜 독립출판이 하고 싶은걸까. 왜 책을 만들고 싶은 걸까. 

돌아와서 한참을 생각해봤다.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길어진 무직기간에 무력감을 느기고 있는 나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뭘까.

정했다. 제목은 게으른 무직자의 로컬표류기. 올해 5월부터 경험한 감포(경주), 함양, 강진에서 한달살이한 경험을 써보는걸로. 한달살이를 여태까지 해 온 이유는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휴.. 생각하다보니 그래도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받아본 피드백에다가 '왜'라는 이유를 생각하는게 힘들었다. '왜'하는지 설명하는 걸 어려워한다는걸 알게 됐는데, 그 이유로 생각한건 크게 이유없이 즉흥적이거나 끌리는대로 행동하기 때문이 있는 것 같고,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이유인 것 같다. 

3시간 넘게 집중해서 계획서를 쓰고, '왜'에 몰두했더니 뭐가 자꾸 먹고싶었다. 저녁을 제대로 안 챙겨먹은 이유도 있었고, 스트레스 받으면 많이 먹는 나를 또 발견했다. 하지만 이 허기짐을 채워줘야 하거든...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있는 대로 다 꺼내먹었다. 집에서 뭐라도 챙겨와서 다행이지.

시작이 다이나믹하다! 한달동안 하고싶었던 거 마음대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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