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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Sep 30. 2022

9화. 악명을 얻는 덴 한 계절이면 충분하다

(장편소설) 저주 딜리버리 프로젝트


고등학교 교사 자택에 3인조 강도... "보디가드도 소용없었다"


 7일(수) 새벽 3시경, 경남 00시의 한 고등학교 교사의 자택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용의자들은 집에 있던 김 씨와 노 씨, 교사 두 명을 포박한 후 피해자들의 눈앞에서 각종 금품과 고가의 미술품 등을 탈취해 달아났다. 노 씨의 증언에 따르면 3명의 용의자는 모두 00세큐리티 직원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얼굴을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가렸고 숙련된 솜씨를 보였다고 한다. 용의자들은 두 피해자를 묶어둔 채 달아나는 데 성공한 후 세 시간 뒤 직접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는 여유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재 아파트 공동 CCTV와 신고 전화를 추적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노 씨는 지난달 3일(수)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주택 화재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사건 이후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 김 씨는 "강도들이 집에 들이닥쳤을 땐 그들보다 몸이 두 배는 큰 노 씨도 깨어 있었는데도 당했다. 보디가드도 소용없었다"라고 밝혔다. 



퉷. 벌레인지 모를 무언가가 입술에 앉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렇게 추운데 아직도 벌레가 날아다니다니. 너희도 나처럼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중인 거냐. 육중한 팔을 들어 몇 번 붕붕 휘두르니 크고 작은 벌레 몇 마리가 팔에 닿았다. 그때 멀리서 짤랑짤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재빨리 몸을 웅크리고 담요를 머리 위로 푹 씌웠다. 이윽고 드르륵 소리가 나고 손전등이 머리 위로 창문을 쓸고 지나가는 것이 얇은 담요 너머 보였다.


"하이고. 여긴 갈수록 지저분해지네. 직장도 이따위로 관리하니까 파혼이나 당하지. 쯧쯧."


다시 문이 닫히고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발소리가 멀어지고 도서실은 다시 고요한 암흑에 갇혔다. 경직되어 있던 다리와 허리를 쭉 편 후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서실 내 책상과 창문 벽 사이의 공간에 에어매트리스를 깔고 밤을 보낸 지 이 주째다. 책상은 내 몸보다 짧았고, 어느 날 경비원이 문을 열고 시체 다리를 본 것으로 착각해 비명을 지르는 상상을 하며 밤을 보낸다. 저렇게 매번 도서실 문을 열 때마다 혀를 차면서 한마디 할 때마다 아예 얼굴에 빨간 물감을 퍼붓고 혀를 내밀고 뒤쫓아가 끝을 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김 선생님은 그날 이후 병가를 내고 학교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 곧 그만둘지도 모르며, 당장은 아파트도 내놓고 본가로 들어가 지내고 있다고 동료 선생님들이 모여 내 자리를 힐끔 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강도 사건 이후 노 선생님이 김 선생님을 유혹해 약혼한 사이였다(왜 그렇다고 확신하는 거지?), 노 선생님은 집에 불이 난 후 김 선생님 댁에 얹혀 지내기 시작했다(보통은 이럴 때 동거하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나?), 김 선생님을 보호해주긴 커녕 노 선생님은 먼저 꽁꽁 묶여서 집이 난도질당하는 걸 눈뜨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그럼 응원이라도 해야 했을까?)는 다양한 버전과 레벨의 소문은 학교는 물론 동네 전체에 흥겹게도 퍼져나갔다. 내가 일부러 집에 불을 내서 부자 김 선생님 댁에 기다렸다는 듯 들어간 것 아니냐는 말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침 뱉듯 말하는 동료 선생님도 목격했다. 강도도 내가 고용한 게 틀림없다는 말이 도는 덴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이 저명을 얻는 덴 평생이 걸릴 테지만, 악명을 얻는 덴 한 계절이면 충분하다.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집과 학교로 몰려오는 바람에 내 '보물찾기'도 잠정적 중단되었다. 처음 화재 사건을 기사로 낸 기자는 아예 이번 두 사건을 묶어 '어느 젊은 교사의 비극'이라는 타이틀로 개인 블로그에 올렸고, 한동안 몇몇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를 '보디가드'로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김 선생님은 몇몇 기자와 짧은 인터뷰도 한 모양인데, 그 기사들을 통해 내가 파혼당했음을 알았다. 내 전화번호는 아예 차단해 버린 것 같다. 난 이 동네에 아는 친척이 없었고, 빠르게 퍼진 소문 덕분에 월셋집은커녕 찜질방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거구의 몸이 나타나는 순간 사람들은 대놓고 혹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결국 난 학교가 끝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도서실에 숨어 하룻밤을 보냈고, 얼마 후 작은 에어매트리스와 생필품을 교무실로 주문해 이곳에 비밀 임시 숙소를 마련했다.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면 재빨리 1층 화장실에서 씻은 후 창밖으로 빠져나가 뒷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8시 반 즈음 아파트 촌의 한 산책로에서 나오는 척 교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게 새로운 아침 루틴이다. 요즘 들어 아침 루틴에 산책이 너무 자주 들어가는 것 같다. 배달 음식도 못 먹은 지 오래되어서 살도 점점 빠지고 있다.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주말엔 인터넷으로 주문한 프로틴 바로 끼니를 때우는 탓도 있을 것이다. 보물상자를 찾기 전까진 아직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 


다행이라면 집에서 건진 물건들을 조금씩 도서실에 옮겨두었다는 것이다. 불행이라면 그 물건들 중에서 당장 쓸모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충전기가 한가득 든 봉지를 찾았지만 정작 핸드폰 충전기는 없어서 저녁에 몰래 교무실의 동료 선생님 자리에서 충전하다가 늦게까지 남아있던 미술 선생님에게 들킬 뻔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토마토에게 했더니 다음날 충전기 하나를 들고 도서실로 찾아왔다. 토마토는 내가 도서실에서 몰래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느 오후 도서실 책상 옆에서 쪼그라든 에어매트리스를 발견하곤 아무렇지 않게 '이제 밤 되면 꽤 추운데 전기장판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묻는 모습을 보고는 이 아이에겐 숨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내겐 너무 작은 감색 장갑 한 켤레를 내밀었다.


"우리 집에 안 쓰는 전기 포트 작은 거 하나 있는데, 갖다 드릴까요? 그거 있으면 라면은 냄새 많이 나니까 못 먹더라도 컵수프 같은 거 타 드실 수 있잖아요."


"고맙지만 사양한다. 요즘 경비원 눈치가 심상치 않아. 이젠 책상 뒤에서 자는 것도 못할지도 몰라. 저번엔 책장 쪽까지 들어가서 확인하고 갔다니까."


내가 선물을 마다하다니. 김 선생님의 후유증이 크긴 큰가 보다. 토마토의 말간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난번 교감 선생님하고 면담 때문에 그러세요?"


"불어보다는 중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그렇다는데 뭐 별 수 있냐."


"그거 다 핑계잖아요. 애들은 불어 건 중국어 건 제2 외국어엔 어차피 관심 없어요. 그냥 소문들이 불편하니까 내쫓으려는 것뿐이라고요."


언제나 솔직한 의견 고맙다.


"여기 말고 갈 데는 있으세요? 집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여기 떠나시면 어디로 가실지 생각은 해보셨어요?"


선생은 난데 왜 이 애한테 진로 상담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까.


"아니. 당장 쫓겨나는 건 아니잖아. 교감 선생님도 일단 이번 학기까지는 있어보자고 했고. 또 모르잖냐. 이대로 시간이 다 해결해 줄지. 소문은 금방 다른 소문에 묻히기 마련이야."


절벽 근처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 같은 얼굴의 토마토에게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주었다. 정말이지 저 애는 나를 과잉보호하려 든다니까. 다 알 것 같다는 차가운 얼굴로 나를 보던 토마토는 내 비밀을 공유하게 된 후부터 한 꺼풀 가벼워진 태도로 나를 대했다. 이제야 좀 상대해볼 마음이 들었다는 듯이.


소문은 금방 다른 소문에 묻힌다는 내 예언은 일주일 뒤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이제 온전한 가을 냄새가 풍기던 10월의 첫째 주 화요일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밤늦게 홀로 학교에 남았던 날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1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빈자리가 가득한 학교는 더욱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수능을 겨우 한 달 앞둔 3학년들의 무거운 공기만이 고등학교의 가을 티를 냈다. 평소라면 더욱 수업 시간이 줄어든 이 시기를 여유롭게 즐길 테지만 요즘은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과 일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도서실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난 이 시기에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지만 공연히 수업 자료를 준비하는 척을 해야 했다. 11시가 넘어서야 학교의 모든 교실에 불이 꺼지고 겨우 에어매트리스를 부풀릴 수 있었다. 그날도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피곤한 몸을 푹 누인 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귀가 찢어질 것처럼 큰 사이렌 소리에 벌떡 잠에서 깼다. 미처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흠뻑 젖고 귀가 너덜너덜 해질 것 같은 현장에서 비틀비틀 일어나며 생각했다. 아, 나는 이제 정말 유명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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