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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Sep 30. 2022

10화.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장편소설) 저주 딜리버리 프로젝트


'이쯤 되면 인정하자. 이건 진짜 저주다.'

'첫 번째 수요일엔 저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나라에서 공표해야 한다.'

'저 인간 폭탄을 백악관에 당장 잠입시키자!'


어으. 추워. 담요로 다리를 둘둘 감았는데도 무릎이 아릴 만큼 춥다. 잘 잠기지 않는 패딩을 최대한 당겨서 한 손으로 옷깃을 붙잡고 남은 한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슥슥 내렸다. 저승사자 기자는 그새 잽싸게 아수라장이 된 학교의 정면 사진과 함께 '첫 번째 수요일의 저주'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푸른 입술이 가늘고 선명한 프로필 사진 속 기자의 얼굴이 글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이런 미신 냄새가 흠뻑 나는 개인 블로그의 글에 귀를 기울일 이는 별로 없겠지만, 지난 사건의 정확한 날짜와 세 사건의 중심에 동일 인물이 있다는 정황이 꽤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모양이다. 다들 내 '저주'에 대해 신나게들 떠들어대고 있었다. 기사나 블로그 글에서 직접적으로 내 인적 사항과 학교, 동네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엔 대놓고 내 신상정보가 마구 돌아다녔다. 사건에 집중한 댓글들 아래로 나의 외모와 개인사를 향한 비난과 비아냥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워서 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다 이내 창을 닫아버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난 그냥 집이 필요했을 뿐인데.


개교 68년 이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하필 내가 도서실에서 몰래 잤던 그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다. 원인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학교 바로 뒤의 뒷산에 불이 났고, 그 연기가 마침 열려있던 2층 교무실 창문으로 들어오면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이윽고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면서 도서실을 포함한 학교 전체에 물이 뿌려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뒷산과 근접해있던 급식실 바로 너머의 LPG가스 보관실까지 화마가 닿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학교는 물바다가 되었지만 더 큰 사고를 막게 해 준 스프링클러의 학교 설치 의무화에 대해 짧게나마 열띤 토론이 오갔다.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는 모두 보험 처리를 받아 큰 문제없이 수리할 수 있었고 각종 책과 자료 등의 문서들은 대부분 책장이나 보관함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긴 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수영하다 뛰쳐나온 흠뻑 젖은 곰의 형상을 한 나를 붙잡은 순간 사건의 심각성은 한층 더해졌다.


사건 경위를 조사하던 중 내가 근 한 달간 도서실에서 몰래 숙식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열렬하게 증언을 덧붙여준 경비원 덕분에 내가 뭐라고 변명할 틈도 없이 이 사건은 재빠르게 기사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난 도서실에서도 그리고 교무실에서도 쫓겨났다. 이번 학기까지는 두고 보자던 교감 선생님도 기사를 본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와 세 번 연속 경찰서에 증인으로 불려 갔다는 사실 때문에 정직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나를 항상 못마땅하게 훑어보던 교감 선생님도 막상 이지경이 되니 이젠 내가 안쓰러운지 교감실을 나서는 내게 당분간 묵을 곳은 찾았는지 물어봐주기는 했다. 자기 집에 와도 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식탁을 나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겠지. 정작 나를 거둬준 건 동정도 식탁도 없는 토마토였다.


"노 쌤! 밥이요! 밥!"


한 손엔 작은 컵라면과 다른 한 손엔 커다란 토마토를 송이 째 든 토마토가 창고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들어왔다. 참 언제 봐도 우아한 학생이다.


"뭔 컵라면이 이렇게 작냐. 대장 지나면 물 한 방울 안 나오겠다."


나도 우아함에 있어선 뒤지지 않는다. 토마토는 이젠 익숙하다는 듯 대꾸도 없이 나무젓가락을 쫙 뜯어 컵라면 용기에 푹 꽂은 뒤 내게 내민 뒤 토마토를 하나 뜯어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좀 있으면 아빠 배달 갔다가 곧 돌아오실 거니까 잔말 말고 얼른 드세요. 밥 먹을 시간에 라면 냄새나면 또 나만 한소리 들어요. 소파 나름 푹신하죠? 여기 원래 내 아지트인데 쌤한테만 특별히 빌려줄게요."


도서실과 교무실에 있던 짐들을 대충 상자와 봉투에 가득 쑤셔 넣고 기자들과 구경꾼들을 피해 학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오자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봉투 하나를 잡아채선 따라오라는 듯 성큼성큼 뒷산으로 들어갔다. 토마토는 수풀이 많이 우거진 곳에 짐을 내려둔 후 나더러 기다리라 하고 사라지더니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두워진 골목길과 큰 도로변을 지나 도착한 곳은 토마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토마토 농장의 버려진 창고였다. 창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말린 토마토 줄기의 시큼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아, 그래서 토마토가 토마토구나. 난 또 재수 없는 친구 얼굴에 토마토라도 던져서 토마토가 된 건가 했지. 토마토라면 진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마른 토마토 줄기 무덤 사이를 헤쳐가자 구석에 놓인 작은 스탠드 불빛이 낡은 소파 하나와 플라스틱 박스로 만든 간이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나고  머리 위엔 거미줄이 가득한 창문 하나 없는 더러운 창고였지만 그날 저녁 난 집에 불이 난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쌤. 근데 진짜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밥은 마음 편하게 못 먹게 하지만.


"낸들 아냐. 직장에서 잘리고 집은 불타고 모아둔 돈은 없고.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


토마토가 뭔가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래. 이 상황에 확실한 해결책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니. 순식간에 컵라면을 입에 다 털어 넣고는 바닥에 남은 미역 쪼가리를 젓가락으로 긁어모으고 있는데 눈앞에 핸드폰 화면이 불쑥 나타났다.


"뭐냐."


"이 블로그 보셨어요?"


"그래. 나더러 인간 폭탄이던데."


"그런 댓글엔 신경 쓸 필요 없고요. 근데 진짜 첫 번째 수요일마다 사건이 생긴 거예요?"


"몰라. 난 날짜까진 정확하게 기억 안 나. 근데 그랬다고 하더라고. 웁. 에이."


토마토 한 개를 뜯어서 입에 욱여넣다가 확 터져 나온 즙을 줄줄 흘리는 내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보던 토마토가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누가 어른인지. 참.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같은 패턴의 날짜에 사건이 생기니까 이상하긴 하네요. 정말 저주 뭐 그런 거 아녜요?"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저주까지 받냐. 그리고 저주면 뭐 어쩌려고. 굿이라도 받으리?"


"아니, 이 정도면 저주받았다기보다는 여기저기 저주를 뿌리고 다니는 것이라고 봐야... 헙."


갑자기 토마토가 소파 끝에 허리를 똑바로 펴고 앉더니 급히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노 선생님. 여기, 이거 읽어 보세요."


"'우리 집에도 저주를 내려주면 좋겠다', 뭐냐 이딴 배부른 소리는."


"이거 말고도 꽤 여러 개 있어요. 비슷한 댓글. '제발 저희 집에도 와주세요', '출장 저주 서비스 같은 건 안 하시나요'. 보세요."


"남의 인생이 박살 났는데 이런 장난 댓글 달면 좋을까. 그런데 너도 웃긴다. 이런 댓글들 신경 쓰지 말라며."


입가에 묻은 토마토 즙과 라면 국물을 소매로 대충 닦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파묻었다. 그래. 결국 내가 살던 집 보다 편한 소파에 잠을 자곤 있지만 내 인생이 박살 났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 끝내주는 군.


"대부분 장난이긴 하겠죠. 그런데 이 중에 진심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까요?"


"어떤 미친 인간이 자기 집에 저주가 내리길 바라냐?"


"만약...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얘가 제정신인가. 혹시 아까 그 토마토에 이상한 농약이라도 들어간 거 아닌가. 난 세 개나 먹었는데. 지금이라도 토해야 하나.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댓글들 중에 진심이 느껴지는 댓글도 분명 있어요. 노 쌤. 어쩌면... 어쩌면 이게 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쌤! 대박이예요! 이거 완전 재밌겠는데요!"


당장 게워내야겠다. 저 눈빛은 정상이 아냐.


"야, 야. 진정해. 난 지금 네 말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되거든. 뭐가 진심이고 그걸로 또 뭘 어떻게 날 구한다는 거야. 알아듣게 말해. 그리고 손에 힘 좀 풀어. 액정 부서지겠다."


"지금 액정이 문제가 아니에요. 쌤. 우리 사업 아이템 하나 찾은 거라고요. 내가 도와줄게요. 손 잡아요 우리."


"사업? 뭐, 진짜 출장 저주 서비스라도 하라 이거냐?"


어느새 일어난 토마토가 소파 주변을 서성거리며 양 손가락을 맞대고 토독토독 두드렸다. 파이프 담배만 쥐어주면 곧 나를 '왓슨'이라고 부를 것 같다.


"출장 저주 서비스... 이건 너무 퇴폐적인 냄새가 나니까 별로예요. 좀 더 산뜻하고 그러면서도 세련된..."


"출장인지 배달인지 뭔지 난 그딴 거 안 해. 내 불행 가지고 무슨 사업을 한다는 거야."


"그거예요 쌤!"


토마토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고 보면 토마토는 소리 내는 데 재주가 많다. 휘파람도 잘 불고.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 진짜 영어로 다 하면 말레딕션 딜리버리 서비스라고 해야 하지만, 그냥 한눈에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가죠."


이쯤 되면 좀 무서워지려고 한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거야 내가.


"이 재수 없는 블로그를 이용해보자고요. 댓글로 고객들을 모집해봐요. 이렇게 쓰는 거죠.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오늘 밤부턴 이제 이 소파에서도 편안하게 잠들긴 그른 것 같다.






토마토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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