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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희 Sep 30. 2022

11화. you can do it

(장편소설) 저주 딜리버리 프로젝트

이 세상엔 토마토 말고도 농약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눈앞에 들이밀어진 이 '고객'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상은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당신의 집에 저주를 배달해드립니다. 제겐 매달 첫 주 수요일에 머무르는 장소를 엉망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살던 주택엔 불이 났고, 얻어 살던 아파트엔 강도가 들었으며, 임시 생활을 하던 학교는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삼 개월 이내에, 모두 첫 주 수요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저주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신청해주세요.


 -신청 방법 : malediction.delivery@blogblog.com으로 사유와 주소, 연락처, 원하는 날짜 등을 상세하게 적어 보내주세요

-이용료 : 한 달 간의 숙식 제공

-주의 사항 : 사유와 상황에 따라 최소한의 안전 보장 요구를 할 수도 있으며, 저주의 '종목'은 선택할 수 없고, 저주의 '여부' 또한 보장할 수 없습니다


토마토는 어느새 '저주 딜리버리'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더니 저승사자 기자의 블로그에 댓글로 '우리'의 블로그를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은 호기심으로 우리 블로그에 접속해 '저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라는 글을 읽고 공유하고 댓글을 달았다. 토마토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같은 글을 영어로도 번역해 올리고(내게 불어로도 번역해달라고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전용 메일도 개설했으며 실시간 상담을 위한 카톡 계정도 만들었다. 말리지 않으면 사업자 신고도 할 판이었다. 내가 불행을 파는 일로 '돈벌이'는 할 생각이 절대 없다고 제법 강경하게 나가자 소정의 '출장비'를 매기려던 토마토도 이내 포기했다. 


토마토의 아버지가 퇴비를 얻으려 옆 동네 표고버섯 농장으로 떠난 틈을 타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공지글을 완성했을 때만 해도 난 그냥 이 일을 하나의 장난처럼 여겼다. 내가 정말로 저주를 갖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그 말을 믿고 낯선 사람을 집에 불러다 저주가 내리길 기다리는 인간이 세상에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인간들이 존재했다.


다음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몰래 빠져나온 토마토가 여느 때보다 힘차게 창고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들이닥쳤다. 토마토 말로는 아버진 드라마 틀어놓고 잘 땐 업어가도 모른다고 했지만 저렇게 뻥뻥 차대 다간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이 시기에 내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못되지만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군. 본인은 입에서 김치찌개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정작 내겐 생 라면 한 봉지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 이젠 뜨거운 물도 아까운 것인가. 그런데 토마토는 온전한 생라면마저도 내게 줄 생각이 없는 건지 부서 저라 봉지를 플라스틱 박스 위로 집어던졌다. 컵라면이라도 얻어먹을 줄 알고 한 시간 전부터 나름 세팅해둔 내 작고 소중한 테이블 위로 너덜너덜해진 라면 봉지가 이어지는 토마토의 흥분 상태를 증언해주고 있었다.


"쌤! 대박이예요! 벌써 신청 메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요!"


내 뱃속으로도 밥이 쏟아져 들어오면 참 좋겠구나.


"넌 학교 안 가냐."


"아직 수습이 덜 돼서 당분간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대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봐봐요 쌤. 사람들이 쌤더러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난리예요. 와. 진짜 이게 먹히네."


나더러 '고객'을 고르라고 들이민 메일함엔 정말로 수십 개의 메일로 가득 차 있었다. 개중엔 욕설로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들도 있었고, 종교를 홍보하는 메일, 보험 광고, 호기심에 보낸 장난 메일도 있었지만 분명 진지하게 장문의 메일을 보낸 이도 있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정말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난 그저 토마토의 장단에 적당히 맞춰주면서 다음 일을 고민할 시간을 벌어보려 했을 뿐이다.


"넌 이 사람들이 정말로 진심이라고 믿냐?"


연신 '대박' '와 씨'를 내뱉으며 화면을 주시하던 토마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람들이 진심이라면 더 큰일이야. 내가 정말 간절하게 저주를 바라는 사람들의 집에 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를 사기꾼이라고 욕할 테고,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다치거나 정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너무 위험해. 지금이라도 그만하자."


오. 이제 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려나. 보던 핸드폰 화면을 끄자 토마토의 얼굴이 어둠에 묻혔다. 작은 스탠드 불빛은 내 커다란 어깨에 가려졌다. 몸을 당겨 토마토의 표정을 살피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선생님. 학교에서 애들 사이에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어... 곰 쌤?"


"그건 선생님 앞에서만 부르고요. 우리들끼리 선생님 이야기할 때 따로 부르는 별명이 있어요."


기분 탓인가. 목소리가 잠긴 것처럼 들린다.


"농 쌤이에요. 농 쌤. 무슨 일에든 '농'이라고 한다고요. 애들이 선생님을 어떤 때 소환하는지 모르죠? 야, 너 자꾸 그렇게 시키는 대로만 하다간 농 쌤처럼 된다. 나 이러다 농 쌤처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이렇게 선생님을 갖다 붙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저쪽도 내게 대답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더 최악인 건, 애들이 그 별명에 큰 악의를 담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냥 노 쌤은 농 쌤이에요. 평생 한 동네 한 집 한 직장에 안주하면서 여행도 이사도 모험도 모두 거부하는 지박령 같은 사람. 선생님은 그런 사람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된 거라고요."


토마토가 울고 있다. 울고 싶은 건 난데. 내가 상처를 입었는데 왜 저렇게 아파하는 걸까.


"선생님. 선생님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동의할 수 없다.


"잠깐만. 내가 운이 좋다고? 너 지금 내 처지가 눈에 안 보여?"


"아뇨. 잘 보여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된 처지가 제 눈엔 아주 잘 보여요. 지금까지도 선생님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해줄 집도 있고, 여러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이 있고, 어딜 가던 무시당하지 않을 체격도 가지고 있죠. 비록 지금은 집이 망가졌고 직장도 잃었지만 아직 머리와 몸은 멀쩡하잖아요. 게다가 집과 일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사람이 이렇게 줄을 섰어요. 나라면 아무 메일이나 열어서 당장 떠났어요. 선생님은 이 동네가 지긋지긋하지도 않아요? 이젠 이 동네 사람들도 다 등을 돌렸잖아요. 언제까지 이 허름한 창고에서 라면이나 드실 건데요? 이 사람들이 진심이건 아니건, 위험한 일이건 아니건 지금 그거 신경 쓸 때에요? 선생님은 시간이 아깝지도 않아요? 멀쩡한 머리랑 유용한 체격은 뒀다가 뭐에 쓰실 건데요. 저는요. 선생님한테 지금 저주가 내린 게 확실하다고 봐요. 능력이 있는데도 썩히는 건 저주받아 마땅해요."


"야.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좀 너무했다. 저주받아 마땅하다니.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난 아직 못 떠나. 할 일도 남아있다고. 우리 집에 묻혀있는 보... 아니 할머니 유품도 찾아야 해. 그걸 놔두고 여길 떠날 순 없어."


"... 그럼 평생 그 유품이나 찾으면서 유령처럼 사세요."


끝내 토마토는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어두운 창고를 가로질러 마른 토마토 줄기 더미 너머로 사라졌다. 이윽고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정적 속에 울려 퍼졌다. 다음 달 첫 번째 수요일까지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토마토는 직접 이 창고를 제 손으로 부숴버릴지도 모른다. 처음 본다. 토마토가 화내거나 짜증 내는 건 자주 봤지만 울면서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상당히 낯설다. 내 일인데 왜 저렇게까지 본인이 괴로워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본인의 아지트에 저주를 내릴까 걱정해서는 아닌 것 같다. 정말 그게 걱정이었다면 애초에 나를 여기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토마토는 정이 많은 아이지만 간단한 계산도 못하는 무모한 아이는 아니다.


'지긋지긋하다'. 내게 쏟아낸 말들 중에 유난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 최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언어화하자면 저 말이 적절하겠지. 나도 이젠 지친다. 정말로 저주인진 모르겠지만 가는 곳마다 이 사단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짐작하는 것도, 사람들을 피해 몰래 집으로 숨어 들어가 수많은 짐들 사이에서 보석함을 찾아낼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해. 그냥 미친 척하고 해 버려?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일단 뭔가 행동을 하긴 해야 한다.


멀쩡한 머리와 유용한 체격이라... 그러고 보니 난 세 번의 큰 사건을 겪은 사람치곤 그다지 다치거나 하진 않았다. 나 외에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어. 발목을 삐었다는 소방 대원 한 명과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는 김 선생님이 있지만 사건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어. 어쩌면 내 '저주'는 사람들을 크게 다치지 않게 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있는 곳은 망가지게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바엔 저주를 바라는 이들을 찾아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여기에 계속 있으면서 토마토에게 위험을 주고 싶진 않다. 아무리 나를 함부로 대하고 라면을 집어던진다 하더라도(이건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어쨌든 내게 유일한 조력자가 되어준 사람이다. 저 아이에게 불운을 준다면 나는 정말 쓰레기인 거다.


핸드폰 화면을 켜 카톡 화면을 열었다. 오늘 아침 토마토가 블로그 주소와 메일 계정을 보내 둔 대화창으로 내리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메일 계정 malediction.delivery@blogblog.com

비밀 번호 Youcandoitouissam77


'할 수 있어요 위(예스) 쌤.'


내가 틀렸다. 토마토는 유일한 조력자가 아니다. 최고의 조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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