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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호랑 Aug 26. 2019

[연합] 남녀 성 대결

우리는 집안 사람들을 흉보다가도 막상 배우자나 친구가 우리 가족을 비난하면 기분이 나빠지곤 합니다. 가족이란 건, 자기가 선택했든 아니든 나 자신과 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을 비난했다고 해서 기분까지 나빠지는 현상이, 단순히 그들이 나와 같은 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가족도 일종의 연합으로서 작용합니다. 이 연합은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연합보다도 오랜 세월 동안 인연을 맺어 왔기에 왠만해서는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양육의 관계로 맺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라면, 해외로 입양되었던 모든 사람은 친부모를 재회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오려 하는 게 마땅하겠죠.
 
인간은 온 세상을 독차지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연합을 결성하고 이용하려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한 강력하기에, 당연하게도 이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가족 만큼이나 기본적인 연합이 바로 성별에 따른 연합입니다. 성별 역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자기를 규정하는 첫 번째 성질입니다. 사람이 처음으로 되는 것은 남자나 여자죠. 남자나 여자가 되기 전에 학생이나 군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이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집안 사람들을 욕하다가도 막상 배우자나 친구가 우리 집안 식구를 비난하면 화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자나 이성 친구가 내가 속한 성별 집단을 비난하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인간 집단, 즉 연합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독차지하기 위해 결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홀로 독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일단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힘을 합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친구도 이를 위한 것입니다. 친구가 소중한 것은 그 가치가 원래부터 고귀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희망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절망적이라는 뜻이며, 절망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가족, 학연 등 기댈 곳이 아무 데도 없는 천애고아와 같은 사람에게도 연합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자기 세계 확장, 그리고 온 세상의 독차지라는 궁극적 목적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해줍니다.
 
성별은 가족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고아가 된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가족보다도 더 근본적인 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연합과 달리 이 연합은 변경이나 공감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 중에는 지난날 몹시 가난했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부자들에게 가난을 설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마초가 여성이 되어 남성들에게 여성을 이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도 성 대결이 일어납니다. 다른 연합과 마찬가지로 연인 관계도 서로 다른 두 인간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인간은 본성적으로 저마다의 세계 확장이라는 기대감으로 삶의 동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단지 두 인간이 욕심쟁이라서가 아니라, 희망은 인간에게 있어 삶의 필수 요소이며, 희망을 유지하는 것은 자기 세계 확장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며,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성별에 의한 연합도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성 대결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연인이나 가족, 친구 사이에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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