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목적
영화 ‘마더!’의 기본 설정
제니퍼 로렌스에게는 집이 있다. 집은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다. 그녀는 집을 자기화하려 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그녀가 벽면에 칠할 페인트의 색을 미묘하게 조절하는 장면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시인인 남편은 창작에 몰두하고, 제니퍼 로렌스는 화재가 발생했던 그들의 집(세계)을 보수하고 장식하는 데에 전념한다.
줄거리
그녀는 주어진 세계를 온전히 자기화하려 하지만, 애드 해리스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집 안으로 몰려 들면서 꿈이 좌절된다. 제니퍼 로렌스는 이 집(세계)이 남편과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 집이 자기에게 주어진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처럼 행동한다. (창조주는 인류 전체에게 단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며, 모든 인간은 저마다 그 하나의 세계를 독차지하려 한다.)
미셸 파이퍼는 레모네이드를 만든다면서 부엌을 어지럽힌 다음 정리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벽에 페인트 칠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제니퍼 로렌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굳지도 않은 붙박이 싱크대에 걸터 앉아 있기도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집에서는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세계의 모든 사건들이 발생한다.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광신자들로 넘쳐나며, 테러가 발생하고, 테러범들을 처단한다. 정말로 집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세계였던 것이다.
주어진 하나의 세계(한 채의 집)를 자기화하기 위해 모여든 인간들로 인해 집 안은 난리가 난다. 이 와중에서도 제니퍼 로렌스는 아이를 낳는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을, 광신자 무리를 피해 미래를 출산한다. 미래에 대한 열망은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는다. (제니퍼 로렌스라는 어머니는 인간의 마음을 대표한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미래를 개척한다. 하지만, 각각의 인간은 단 하나뿐인 이 세상을 독차지하려는 수많은 인간들을 극복할 수가 없다.)
출산 소식을 듣게 된 인간들은 마치 록스타의 앵콜 곡을 기다리는 관중처럼 그녀의 아이를 원한다. 남편은 무정하게도 그녀가 잠든 틈에 아기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인간들은 아기를 나눠 먹는다. (인간들은 그녀의 남편인 시인이 무엇이든 나누라고 했다면서 집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가져가려 한다. 심지어는 수도꼭지 같은 것들도 뜯어간다.)
마지막 미래인 자식까지 인간들에게 무참하게 살육 당한 것을 본 그녀는 절망하여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계 전체(집)를 불태워버린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아기는 다시 낳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큰 절망에 빠지면, 자기가 속한 무리 전체를 파괴하려 한다. 한때 ‘다 죽어버려’라는 댓글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행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만 가능하다. 단 하나의 세상을 독차지, 아니 일부라도 차지하려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같은 세상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인간들을 극복할 수가 없다. 결국, 절망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어쩌면, 자연은 절망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 사라지도록 하고, 가능성 있는 인간들만 살아남아 효율적으로 번성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동물의 왕국’에서였던가. 사자들에게 습격을 당한 코끼리 가족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사자에게 잡혀가 죽은 줄만 알았던 아기 코끼리는 코와 꼬리가 잘린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기 코끼리는 이제 어떻게 먹을 것을 자기 입으로 가져갈 것인가. 어떻게 파리와 모기를 쫓을 것인가. 하지만, 코끼리는 스스로를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이런 점에서도 다른 동물과 큰 차이가 있다.)
온 세상이 잿더미가 되지만, 창조주인 남편은 당연히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다. 남편은 애처로운 (그다지 슬픈 표정은 아니다.) 표정으로 죽기 직전의 제니퍼 로렌스를 눕혀 놓고 그녀의 가슴 속에서 심장을 꺼낸다. 그리고는 심장에서 쥐어짜 낸 보석을 장식장에 다시 놓아둔다. 그러자 영화의 첫 장면처럼 똑같은 세계(집)가 다시 생겨나고, 새로운 여인이 제니퍼 로렌스가 영화 초반에 처음 등장했을 때와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
창조주에게 있어 세상의 의미
예술가인 창조주에게는 창조와 감상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고, 판사가 아니고, 행정가가 아니다. 창조주는 이 세상을 예술 작품으로서 창조한다.
이 세계, 우주, 자연은 다양한 것들이 발생시키는 무수히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인간은 시간의 압박 속에서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비교하고, 차이를 발견하고, 미래를 위해, 온 세상의 자기화를 위해 보다 우월한 것을 선택하고 쟁취하려 한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인정 받지 못한 자가 세계를 자기화 했다고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창조주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다양한 차이가 발생하는 무대와 열망 가득한 인간들.
열망의 성격
창조주는 감상을 위해 창조한다. 인간의 정수인 사랑이라는 보석을 제니퍼 로렌스의 심장에서 꺼내 장식장에 놓을 때, 창조주는 무척이나 기뻐한다. 그는 선악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사랑에만 관심이 있다.
인간의 사랑, 즉 미래에 대한 열망이야말로 창조주의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든다. 창조주가 기뻐하는 것은, 열망으로 가득한 인간 군상의 활동이다. 창조주는 이러한 열망의 정수인 보석을 제니퍼 로렌스의 심장에서 쥐어짜 낸 다음, 장식장에 고이 모셔놓고, 감상한다. 신은 인간에게 자식을 내어 줄 정도로 자비롭지만, 인간(애드 해리스 부부)이 보석을 깨뜨린 것에 대해서는 불같이 화를 낸다. 너무나도 분노한 나머지, 깨진 보석을 손에 쥔 채로 있는 힘껏 주먹을 쥐는 바람에 피가 줄줄 흐르기도 한다. 보석은 창조주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보석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바로 미래에 대한 열망이다. 미래는 젊음이 만든다. 인간은 미래를 개척할 젊음의 유지를 위해 자식을 낳는다. 제니퍼 로렌스처럼, 출산 직전에 느끼는 엄청난 통증에도 불구하고, 부른 배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과 광신자 무리를 헤치고 나와 아기를 낳는다.
사실 장식장에 놓아 둔 감상용 보석이 깨져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에 타 죽을 새로운 여인의 심장 속에서 새로운 보석을 꺼내 다시 같은 자리에 놓아 두면 되니까. 이런 면에서, 세계 창조(불에 탄 집을 원상 복구하는 것) 이후의 보석은 순전히 감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표현된 창조주는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이자, 미래에 대한 인간의 열망에서 비롯된 젊음의 발산을 감상하는 예술 작품 애호가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한 활동은 젊음에서 비롯된다. 젊음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은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며,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식을 낳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은 인류 전체의 번영도 기도한다. 자기 외의 모든 인간은 자기화의 대상이지만, 그들은 가장 큰 개념에서의 연합이기도 하다. (가장 큰 개념인 만큼 결속력은 가장 약하다. 외계인의 침공이 있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모든 여성이 불임이 된 시대를 다루고 있다. 생기 넘치는 아이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류는 멸종하게 된다. 이때 임신한 소녀가 나타나게 되고, 주인공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인류의 영속은 모든 인간 활동의 대전제다. 인간은 개인적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나 젊음을 유지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이 젊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열망, 사랑이 없으면 인류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창조주는 이를 원하지 않는다. 창조주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집, 생기가 없는 집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창조주는 인류의 활동, 즉 젊음의 발산을 창조, 감상하려 한다. 창조주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이란 젊음이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젊음이라는 아름다움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