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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호랑 Jan 12. 2019

[시스템] 시스템과 비기는 법

분노하면 지는 거다

모르는 번호가 떴다. 이제나저제나 혹시나 투고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나는, 안 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 바로 뚝 끊어버리는 휴대폰 판매 전화일 위험을 감수하고 전화를 받았다.

보통 그런 전화를 한 사람은 상대방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래도 워낙 불특정 다수한테 전화를 돌리다보니, 전화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사람도 있을 테니까, 최대한 목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는 거겠지.

전화를 건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나도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으니까 할 수 없이 그쪽에서 먼저 말을 한다.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 익숙한 문장이 들려왔다.
고객님이 성실히 요금을 납부해 오셨기 때문에, 로 시작하는 말이었다. 나는 출판사에서 걸려 온 전화가 아니라서, 하다못해 친구한테서 온 전화도 아닌지라 맥이 빠졌지만, 이제 헛수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언니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그리고 최대한 마음 상하지 않도록, 효율적이고 예의 바르게 의사를 전달했다.
"저기 제가 얼마 전에 휴대폰을 샀어가지구..." "딸깍. 뚜뚜뚜뚜..."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 전화는 바로 끊겼고, 분노가 치받쳐 올라왔다. 아주 잔인한 만화의 가장 잔인한 장면이 떠올랐다. 언니는, 작은 기대에 젖어 있던 나를 광고 전화로 실망시킨 것은 물론이고,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예의를 지킨 내 마음을 뭉개 버렸다.

사람은 그렇다. 사소한 예의, 작은 배려 하나하나까지, 그것들은 모두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에 공감하고 동의하며, 적합한 태도로 응대하는 사람과는 같은 세계를 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최소한 그 사람은 나의 세계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일한 가치관으로 연합한 사람과 힘을 합쳐 우리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언니처럼 나를 무시하면, 나의 세계는 그만큼 줄어든다. 언니에게 나의 세계는 아무 의미도 없기에 실제로 무시할 수 있고, 그렇게 무시함으로써 나의 세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나의 세계를 무시했다는 것은 그가 나와 연합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연합할 사람이 하나 줄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절망을 더해준다. (내가 요청한 적도 없는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평가하면 불쾌해진다. 내가 온 세상을 자기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는 연합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도 없음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기에, 일방적인 평가를 받는 데서 오는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평가는 상대방에 대한 연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무시는 완전히 배제한다.)

그래서 연합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인간은 제거하고 싶어진다. 또한 절망이 내 마음을 휩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시 그를 제거하고 싶어진다. 인간은 이렇듯 효율적이다. 확장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자기 세계 확장에 확실한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켜 나를 무시한 사람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이처럼 인간은 극단적인 감정을 통해 즉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함께 설렁설렁 사이좋게 살아가지를 못한다. 무언가를 위해서 주먹을 불끈쥐고 눈을 부릅뜨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이건 좀 과장인가, 어쨌든 무언가를 견디며 어딘가로 달려간다.

이러한 힘에는 분명 어떠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저 인간은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하며, 천성이 ‘매우’ 과격해서, 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얼핏 보면 우리들은 마구잡이로 엉망진창 여기저기로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듯하지만, 거기에는 공통된 동력과 동일한 지향점이 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남긴 역사가 어떤 일관된 흐름이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에게는 지상 과제가 주어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들 어쩜 그렇게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물론 제각각 구체적인 목표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재물을,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산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순한 사람이라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평생의 신념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디며 다듬어 온 신념을 갑자기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이제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인간은, 시간을 견디며 과거를 켜켜이 쌓아 온 인간은, 굳건한 신념의 소유자가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굳건한 자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팽창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스스로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발산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자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움직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념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른다. 모든 행동은 지금까지 쌓아 온 나의 과거인 나의 신념, 나의 습관, 나의 취향으로부터 나온다. 살아 있으면, 언제나 반드시 자기 세계를 확장하려는 상태를 유지한다.

나는 이제 완전한 절망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다 해도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해도 삶을 유지하려는 우리, 살아있는 세계의 우리와는 이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자기 영향력의 확대, 즉 자기 세계의 확장을 지상 과제로 삼은 채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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