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하다.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 해도, 타고나는 재능 만큼은 확실히 불공평하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감내해야 할 세상은 분명히 불공평하다.
엄마는 귀여운 아기를 사랑한다. 아기가 귀엽게 생긴 건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어떤 아기는 특별히 더 귀엽고, 어떤 아기는 덜 귀여울까. 왜 어떤 아기는, 심지어는 장애를 안고 태어날까. 왜 어떤 아기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지능이 어린 아이 같아서, 늙어가는 엄마의 가슴을 찢어지게 할까.
세상은 답답한 일들로 가득하며, 그런 세상은 무거운 우리 마음을 조금씩 밀어내 어딘가로 움직이게 한다.
스무 살 무렵,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던 나에게는 예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uglybaby라고 지었다. 못생긴 아기는 어쩌란 말인가. 그런 생각에서였다. 필생의 화두로 삼겠다는 의지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단지, 그저, 그런 생각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기는 귀엽게 생겼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받는다. 그럼 못생긴 아기는 어쩌란 말인가.
나이를 좀더 먹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차지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예명은 그대로였고, 가끔은, 그러나 꾸준히 그 의문에 대해 생각해 왔던 듯하다.
좀더 오랜 세월이 지나자, 나의 야심은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한 얼굴은 점점 더 못생겨졌고, 마음 또한 못생겨져만 갔다.
그런데, 그러면서 의문이 천천히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건 진리를 발견한 게 아니라, 마음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애써 하나의 해결책을 찾아낸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넋두리는 아니다. 일관된 관점으로 인간의 동력, 본성과 관련된 우리 일상을 설명하려 한다. 안다고 느끼면 마음이 진정된다. 생각은 진전된다.
어쩌면, 개인적인 세계관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려는 내 자신감에는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근거가 없다. 다만, 민감한 통찰에 특화된 머릿속의 세월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글로 나의 세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이 글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보다 효율적인 확장을 위한 구인광고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