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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Dec 29. 202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쓴 단편소설 《라쇼몬(羅生門, らしょうもん)》은 1915년  월간문학잡지 <제국문학(帝国文学)> 11월호에 필명 야나가와 류노스케(柳川隆之助)로 처음 발표했다. 1917년 5월 아난타서점(阿蘭陀書房)에서 발행한 단편모음집에 수록하고, 1922년 8월 해삼사(海三社)에서 사라의 꽃(沙羅の花)》으로 출간됐다. 아쿠타가와가 스물세 살 때 발표한 《라쇼몬》은 중세전래설화집 《곤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 제29권 〈라쇼몬에 올라가 죽은 사람을 보는 도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았다. 출간 초기에 비평가들은 《라쇼몬》이 범죄를 정당화하는 냉소적인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좋게 평하지 않았다. 이듬해 나쓰메 소세키가 주도한 문학모임 '목요회' 문하생이 되어 발표한 《코(鼻)》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라쇼몬》까지 재조명됐다. 미스 마플은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인 출신 남자와 가상 대담을 진행한다.




마플 어서 오세요, 아쿠타가와 작가님, 하인님. 오시는 길에 비는 안 내렸나요?

하인 소설에서처럼 장대비는 안 내렸으나 길이 안 보일 정도로 비안개가 가득하더군요

마플 작가님은 어떤 길로 오셨을까요?

아쿠타가와 안녕하세요. 출발할 때는 비가 안 내렸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옵니다. 라쇼몬에서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 뵙겠습니다

마플 그러게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바깥 활동이 줄어들어 생각이 많아지기 쉬운데, 오늘이 그런 날이군요. 자, 오늘은 두 분을 단출하게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아쿠타가와 님은 《덤불 속》도 그렇고, 여러 작품들을 설화집에서 가져와서 변용했거든요. 일본설화집에 문학 소재가 많은가 봐요?

아쿠타가와 아시다시피 저는 생후 8개월부터 외가에서 자랐습니다. 생모는 저를 낳기 전에 장녀를 잃고 정신병이 발병해서 저를 양육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오래 살지 못했어요. 일본 풍습대로 작은 이모가 아버지와 결혼해서 제 이복동생까지 낳았어요. 저는 열세 살에 도쿄부 토목과 공무원인 큰외삼촌 양자로 입적되어 모계 쪽 성을 따라 ‘아쿠타가와’로 바뀝니다. 이혼을 하고 친정집인 큰외삼촌집으로 복적 한 큰 이모와 막내 이모가 설화집을 많이 읽었고, 어린 저는 설화가 재밌어서 따라서 읽다 보니 작품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역시 원작의 아우라는 대단하죠

마플 요즘 말로 설화는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이군요. 외가 쪽은 대대로 에도에서 명망 있는 무사 집안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머니가 정신병이 발병하자 외가에 입적되었고, 생모가 돌아가신 후 다시 친가로 호적을 옮겼다고 하는데 맞나요? 작가님이 문학수업을 사사한 나쓰메 소세키님도 성장과정에서 입양과 파양을 여러 번 겪으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으로 짐작합니다만

아쿠타가와 그래서 소세키님은 《마음》에서 자신과 비슷한 성장을 거친 K를 정체성 잃은 인물로 설정했지요. 저는 큰 액운이 낀다는 1892년 3월 1일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갑진년, 갑진월, 갑진일, 진시에 출생했어요. 명리학에서 용을 뜻하는 갑진(甲辰)이 네 개나 들어가서 제 이름에 용(龍) 자가 들어갑니다. 아이를 다른 곳에 입양 보냈다가 다시 데려오는 풍습인 스테고(捨て子)를 취했지만 생부가 저를 외가에 보냈다고 해서 무심하지는 않았어요. 재력이 있던 우유 판매업자 생부는 저에게 새로 나온 음료수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나 책 등을 선물했어요

마플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셨군요. 가계가 복잡해진 것 외엔 궁핍하게 성장하지는 않았네요

아쿠타가와 그렇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은 원 없이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어설픈 문예잡지를 만들어 동화와 모험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마플 와우! 작가로서 출발을 일찍 시작했어요. 작가분들 공통점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고, 일찌감치 글을 썼더군요. 작가님도 예외는 아니네요

하인 역시 배움이 기본인 것 같군요. 저처럼 천민 출신은 글은커녕 배움이라고는 엄두를 못 낸 시대였습니다. 굶주림만 해결하면 됐지 다른 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아쿠타가와 그때는 살기 힘든 헤이안 시대였으니까요. 저는 어렸을 때 정식 교육기관을 다니진 않았고, 중학교 때부터 외가에서 고용한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한학을 배웠어요. 입양은 외삼촌 호적에 등재되었지만 작은 이모집에서 큰 이모와 다 함께 살았습니다. 두 이모가 저를 키운 거죠. 당시 여자들은 중세소설을 즐겨 읽었어요. 저도 이모나 하녀가 즐겨 읽던 설화집을 자연스럽게 읽은 겁니다

마플 작가님에게는 이모들과 함께 읽은 설화집이 소설의 질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만. 그래서 작가님은 이모집에서 성장한 시간이 소설가로서 씨앗을 뿌린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쿠타가와 어렸을 때 독서는 외로운 저에게 무한한 상상을 만들어주었어요. 창작은 기본적으로 이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 지향점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시작한 거죠

마플 정신병으로 일찍 사망한 어머니 때문에 외가에서 성장했고, 이모님들의 독서 환경이 문학의 토양이 된 것으로 봅니다

아쿠타가와 부정할 수 없죠. 작가란 자기 생애를 버리고선 작품을 쓸 수 없으니까요




마플 자, 그럼 작품 얘기를 해 볼까요? 《라쇼몬》 줄거리는 10쪽 내외 단편소설이라서 아주 단순해요. 시대 배경인 헤이안 시대 백성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립니다. 살림이 어려워진 주인집에서 나온 하인 한 명이 비 내리는 날에 폐허가 된 교토 성문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던 하인은 2층에서 젊은 여자 시신의 머리칼을 뽑아 생계를 이어가는 노파를 봅니다. 하인은 노파를 비난하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해”라는 노파의 말을 듣고 노파가 입은 옷까지 강탈해서 떠납니다

하인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제가 노파를 비난하다가 노파 옷을 빼앗아 달아났다고 비난을 받겠지요. 그러나 굶주림 앞에서 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인간은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않나요? 생계를 해결할 자본이나 기술, 인맥이 없는 최하층민인 제가 가혹한 시절을 무엇으로 연명하겠습니까?

아쿠타가와 어떤 독자는 아비규환 앞에서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이나 냉혈함을 말하더군요. 하인님과 같은 한계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의 도덕관을 말한다는 의미에선 계속 이 작품이 회자될 것 같은데요

마플 오랫동안 회자될 작품이란 작가에게 최고의 기쁨 아닐까요? 실컷 남들 논쟁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란 흠, 내가 이 작품을 잘 썼구나 이런 생각이 들까요?

아쿠타가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처럼 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용서가 되나? 나아가 나 같아도 그리 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성찰이 없다면 그게 짐승과 다르지 않겠나? 등 여러 의견이 도출됩니다

마플 절체절명 상황에서 선택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죄와 벌》에서처럼 돈이 필요한 로쟈의 도끼 살인과, 물론 로쟈의 도끼질은 은유법을 띤 것으로 문학적으로 다르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표면적으로만 볼 때 《죄와 벌》은 《라쇼몬》에서처럼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합니다. 둘 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죠.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타성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신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신에게 구원을 의탁하는 로쟈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면 죽은 전당포 노파요, 그가 비록 악랄한 인물이었어도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 당연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인님이 말씀하신 "굶주림 앞에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발언은 범죄를 정당화하는 모습 아닙니까? 인간의 상호존중과 이타적 윤리, 도덕은 정말 교과서에서 입시용으로 나열한 죽은 글자인가요? 여러 질문이 떠오르네요

하인 도덕이 현실에서 쓸모 있으려면 행위 동기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나요? 먹고 살만 했으면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마플 하인님은 결과보다 동기를 중요하게 여긴 칸트의 도덕관을 말씀하시는데요. 그건 잠시 담론을 미루고요. 먼저 헤이안 시대를 작가님이 설명해 주시면 관망하는 독자분들도 이해하는데 도움 될 것 같습니다

아쿠타가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년~1185년)는 1퍼센트 귀족 1백 명이 다수의 백성을 지배한 귀족정치 시대로 귀족문화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수도는 교토로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기까지 300여 년 동안 간무천황이 통치했으나 이후에도 교토는 천년 동안 일본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국가초기에는 천황이 통치했으나 차츰 귀족과 승려, 지방 무사 세력이 커졌다고 해요. 결국 개국 중반 이후에는 통치권을 놓고 싸움이 일어나서 무사계급이 실권을 쥐게 됩니다. 오늘날 정치군인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입법기관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것에 비유하면 이해가 될까요. 이 무사계급이 에도막부까지 이어져서 또다시 700여 년 동안 일본인의 몸과 정신을 장악한 거죠

마플 제가 알고 있기로는 현대 일본인의 정치체념은 오랜 막부시대 지배에 길들여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쿠타가와 칼을 든, 그러니까 무장 집단이 장악한 시간이 700년인데 무시할 수 없죠. 통치자가 바뀌어도 통치체제는 크게 바뀌지 않은 무사정권 상태에서 백성은 저항할 동력을 잃은 거겠지요

마플 게다가 체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정치가스라이팅도 지속되었을 것 같은데요

아쿠타가와 헤이안 시대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이름인 평안(平安)과는 반대로 치달았습니다. 헤이안 초기에는 중앙집권적으로 체제가 운영되었으나 귀족과 승려가 권력을 쥐면서 부패가 극심해졌어요. 귀족과 승려가 권력을 쥐게 된 배경에는 토지개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세수가 부족한 천황의 중앙정부가 납세 기준을 토지 소유권에 둡니다. 수도야 토지 소유와 납세 관리가 금방 정비가 되겠으나 정부에서 먼 지방은 어렵지요. 그래서 지방의 민간 유지에게 토지 경영이나 납세 관리를 일임하게 되는데 지방 토호들이 땅을 관리하는 막대한 권력을 위임받고 아무 욕망 없이 중앙정부에 복종했을까요?  

마플 이참에 나도 세력을 확장해 보자 하는 무리가 꼭 있더군요

하인 저처럼 일천한 신분이라도 옷을 훔쳤는데 더구나 땅과 세금을 관리하는 직책이라면 욕심을 내 볼만합니다

아쿠타가와 그래서 이들, 즉 토호들인 지방귀족세력은 또 다른 세력인 종교의 힘인 승려와 함께 권력을 나눠 가집니다. 중앙에선 이 다수의 세력을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중과부적이었고요

하인 하급귀족인 탐관오리가 득세하다 보니 살기에 너무 힘들었어요. 수령이 징세권 전권을 갖고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물건을 만들든 뭘 하든 밥 한 끼 먹는 일이 감지덕지했죠

아쿠타가와 게다가 가뭄, 홍수, 지진, 화재가 반복되면서 백성은 가렴주구로 허덕입니다. 백성이 죽어 가고 있는데 귀족들끼리 권력 분쟁을 합니다. 백성이 도적으로 변하고, 도적은 살인범이 되는 혼돈의 도가니인 거지요. 하인님처럼 순했던 사람이 강도로 변하는 시대였으니 백성의 간난신고한 삶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죠. 중앙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으로 무력을 이용한 교통정리에 나서고 지방에서는 군사경찰 실권을 쥔 무사계급이 급성장할 토양이 마련됩니다. 도호쿠 지방을 장악한 가마쿠라 막부가 등장하면서 헤이안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마플 말씀을 듣고 보니 당시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도적이나 강도, 살인범이 된 백성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쓰라리군요. 이 대담을 지켜보는 독자 분들에게 헤이안 시대를 먼 상고대가 아니라고 알려드려야겠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중기에 해당됩니다. 통일신라 말기에도 시대말적 현상인 민이 증가했고, 무장한 군소세력이 출몰해서 봉기가 속출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나라가 왕건의 고려인데 헤이안과는 조금 다르게 고려는 초중기에는 안정적인 정세를 유지했습니다. 자, 이제 하인님이 말씀하신 도덕에 관해 말씀을 나눠볼까요




하인 저는 배움이 없는 사람이므로 두 분처럼 고담을 나누진 못하지만 제가 경험한 그대로 평범한 하인이 도둑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아쿠타가와 하인님이 이러시면 이 작품을 쓴 작가로서 저는 조금 실망입니다. 제가 왜 이 작품에서 하인님 입을 빌려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이라는 대사를 넣었다고 보세요?

하인 이런 거 저런 거 가릴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가리고 있다가는 담벼락 아래나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뿐"이었으니까요

아쿠타가와 그러면 도둑질이나 심지어 나 살자고 살인도 가능합니까?

하인 아니 그야 소설에선 살인은 안 나오고 저는 며칠 동안 굶주렸잖아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극단적 행동도 나올 수 있다는 가정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쿠타가와 그래서 제가 극한적  에고이즘의 시험대로 도덕 기준을 제시했어요.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일본 비평가들은 도덕을 조롱한다고 질타했거든요. 이론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 통념상 하인님의 행위는 범죄입니다. 젊은 여인의 머리칼을 뽑는 노파도 범죄자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제가 독자에게 묻는 거죠. 당신 같으면 어떡하겠느냐, 그럼에도 나는 굶어 죽을지언정 노파의 옷을 뺏지 않겠다, 도둑은 안 되겠다, 차라리 죽으련다, 살기 힘들다고 너도나도 다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그게 지옥이다, 다양할 겁니다.




마플 두 분 말씀이 다 이해됩니다. 이 소설의 화두는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로 양분된다고 보는데요. "비를 만난 하인이 갈 데가 없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저는 그 문장이 생존 앞에서 방황하는 하인님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비"는 배고픈 하인님의 신체와 정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도구이고요. 이 장면은 하인님께 아직 도덕관념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거죠. 자신이 곧 강도로 돌변하게 되는 모습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어요. 비록 까마귀 똥과 여기저기 무너진 성문 틈새로 잡초가 무성한 을씨년스러운 장소이지만 2층의 발견은 소설의 전개가 극전환되는 결정적 포인트입니다. 작가님이 말씀해 주시죠?

아쿠타가와 1층은 마플님 말씀처럼 빗줄기나 피할 수 있는 곳이지 하룻밤 잠을 잘 공간은 아닙니다. 당시 교토는 지진, 회오리바람, 화제, 기근이 만연했어요. 도탄에 빠진 백성은 유민이 되거나 도둑, 강도, 살인자로 전락했습니다. 《덤불 속》에서도 산적이 나오듯이 헤이안 시대는 멀쩡한 평민이 범죄자가 된 시대입니다

마플  《덤불 속》과 《라쇼몬》을 합쳐서 영화 《라쇼몬》을 연출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7인의 사무라이》에서도 헤이안 시대 백성의 삶을 조명했잖아요. 그 영화에서도 농부였던 자가 떠도는 불한당이 되고, 사무라이 전통을 이어받은 자가 돈이 없어 남의 집 장작을 패주고 몇 푼의 돈을 받는 일까지 합니다. 게다가 남의 집 아이를 유괴해 돈을 요구하는 납치범도 등장하고요. 시대배경이 모두 헤이안인 것을 보면 백성은 굶주리고 병에 걸려 죽어 가는데 우아하고 절제된 귀족 문화인 '미야비(雅)'가 발달한 암담하고 잔인한 부조리의 헤이안 시대를 예술계에서 주시했던 것으로 짐작되는군요. 1층과 2층 얘기를 마저 할까요?

하인 네. 제가 1층에서 주춤거리다가 비바람 걱정 없고 하룻밤 무사히 잘 수 있는 곳 생각하면서 건물을 보니 폭이 넓고 붉게 칠한 누각 계단 위 2층을 발견한 건 뜻밖이었지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가 널브러진 시신 무더기들을 봅니다.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할 돈이 없어서 부서진 거룻배 같은 성문 2층 누각에 쓰레기처럼 갖다 버린 겁니다. 이러니 밤이면 그 시신을 뜯어먹으려는 여우가 드나들 수밖에요. 까마귀가 찾아온 이유도 살점을 먹으려고 온 거죠. 굶주림 앞에선 사람이나 짐승이나 구별이 안 되는 순간이었어요

아쿠타가와 제가 작품에서 가리키는 지점을 하인님이 짚어 주셨어요. 앞에서는 배움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기본 도덕관은 배움과는 무관하지 않을까요?

하인 허, 그런가요. 고매하신 나으리들은 우리 같은 천민은 판단력이 없어서 주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하던데요

마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그랬었죠. 소수의 자유인만이 이성을 갖고 있으므로 노예는 이성이 없다고 믿었어요. 당연히 노예는 주인의 판단력에 맹종하고, 사유가 허용되지 않았고요. 사유가 허용된다면 그건 불순한 반역 대상이죠

아쿠타가와 현대 사회라고 달라졌을까요? 칸트가 모든 인간에겐 이성이 평등하게 주어졌다고 주장하기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소외계층에서 통치자의 결정에 따르지 않거나, 판단에 의문을 가질 경우 핍박을 받아 왔으니까요. 이성이란 판단력과 직결되고 이 판단력은 하인님과 같은 절체절명 앞에서 도덕의 실행 여부에 따라 변용이 될 겁니다. 도덕법칙이 인간에겐 정언명령이라고 한 칸트의 도덕관은 하인님의 극한상황에서 무용이었잖습니까

마플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사회는 과거의 태생적 신분 서열이 아닌 자본과 사회적 위계신분이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나눠졌습니다. 모양은 달라졌지만 인간사회 틀은 거의 그대로인가 싶어 우울해지네요. 2층으로 올라가는 하인님 모습을 가리켜 작가님은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도마뱀처럼 발소리를 죽이며"이라고 묘사해요. 노파 묘사는 더 많습니다. "머리가 허옇게 센 원숭이 같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의 이를 잡듯이", ""닭의 다리처럼 뼈와 가죽뿐인 팔", "육식조같이 날카로운 눈", "까마귀같이 우는 듯한 음성"이라고 노파를 가리켜 인간의 형상보다는 짐승의 형상으로 비유하거든요. 이유가 궁금해요. 도덕이 관련되는 건가요?

아쿠타가와 우리가 어떤 인물을 비하할 때 동물을 소환하는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제는 다르지만 조지 오웰도 《동물농장》에서 권력과 탐욕에 쩐 인간을 동물에 비유했으니까요

하인 뚱뚱하면 돼지, 대머리면 문어, 누런 얼굴이면 황석어 젓갈, 얼굴이 못생겼다고 오랑우탄, 왜소한 남자는 노새, 조랑말, 목소리가 나쁘다고 개똥지빠귀, 입만 크다고 하마, 게으르다고 나무늘보, 아무튼 비슷하게 생긴 동물 갖다 붙여서 놀리는데 개자식은 이 가운데 가장 큰 비하예요. 개라니, 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지 원

마플 하하하. 동물 비유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비하 대상이었어요. 인간우월주의가 은연중 반영된 것 같은데요? 작가님의 동물 은유는 인간성, 즉 이성과 도덕을 상실한 추악한 범죄와 죽음의 공간에서 그런 행동을 자행하는 인물을 가리킨 것으로 봅니다. 동물이 무슨 죄의 유무를 가리겠습니까마는 본능에 충실하다는 사실에서 2층은 굶주렸던 평범한 인간인 하인님이 이성과 도덕을 버리고 마침내 노파와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범죄에 물드는 장소인 거죠. 2층으로 올라갈수록 하인님은 "고양이" 같았다가 "도마뱀"으로 묘사되잖아요. 하인님의 강도 변신은 노파의 결정적인 말에 의문을 갖지 않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완성됩니다. "이것도 안 하면 굶어 죽겠으니께 할 수 없이 한 거여". 그 "할 수 없이"라는 말은 기아에 허덕이면서도 인간으로서 지켜 온, 지켜야 할 도덕의 마지막 보루, 양심의 최종 방어막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렸어요. 마치 지진에 무너진 라쇼몬처럼. 따라서 1층과 2층은 완전히 다른 장소이며, 그 경계인 계단은 마침내 악행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라쇼몬은 구차한 목숨이나마 구제할 통로가 모두 끊어진, 소멸된, 차단된 존재악의 최종 장소라고 여깁니다. 작가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쿠타가와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썼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하인님과 노파를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과 상황을 독자에게 중계했어요. 저의 주관적 견해가 개입된 겁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썼지만 제 사고가 적극 반영된 것이므로 독자에게 이렇다 저렇다 틀에 맞춰 해설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위에서 하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인간의 도덕을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플 아, 하인님이 라쇼몬 아래서 머뭇거리면서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것 같아 나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 순간이군요. 결국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2층을 올라가기 전까지는 여전히 마음의 양심이 갈등하죠.

하인 그런 참혹한 현실 인정과는 별개로 제 도덕은 무너졌나요? 그래요. 나쁜 짓을 했으니 도덕이 망실된 짐승이 된 거죠. 작가님이 제 앞날을 예견하신 듯한 문장인 "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밖에는 그저 시커먼 동굴처럼 어두운 밤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라는 부분은 제가 죄의 어두운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마플 저는 이 작품의 주제어인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과 "시커먼 동굴처럼 어두운 밤"이 연결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꼭짓말로는 "않는다면"을 꼽습니다. 이 "않는다면" 그다음에 움직임에 따라 하인님이 예전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도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의 갈등을 소유한 평범한 인물이 되거나 도둑이라는 범죄자가 되는 분기점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한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도덕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낸 도덕성" 흔히 하는 말로 선한 의도로 도와줬다거나 선행을 베푼다는 말이 있어요. 칸트식 해석대로라면 선한 의도의 선행은 의도가 개입되었기에 선하지 않다고 해요. 마찬가지로 저는 선행을 베푼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굳이 칸트를 모셔오지 않아도, 도와주거나 물건을 주거나 금전을 주거나 일을 해결했거나 등등 줬으면 그만이지 그 행위를 '베푼다'라는 인식은 이미 선행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베푼다'라는 말은 상대보다 높거나 우월한 위치나 입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뉘앙스가 강합니다. 선한 의지가 작동했다고 해도 '베푼다'라는 말은 평등한 시선이 결여되었어요. 제 방식으로는 '베푼다' 대신 '준다', '나눈다'라는 말로 대체합니다. 마찬가지로 하인님이 "가리지만 않는다면"에서 "않는다면"은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도덕관을 가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하인님은 고민과 갈등, 즉 양심의 소리를 2층에서 완전히 버리고 맙니다. 여기선 선한 의도는 말할 필요가 없지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옷을 강탈했으므로 완전히 자신의 생존을 위한 존재악으로 돌아선 겁니다. "어두운 동굴"로 깊숙이 들어간 거죠. 그래서 폐허가 된 성문인 '라쇼몬'은 인간 존재악의 장소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하인 작가님은 아까 가정을 말씀하셨으므로 마플님께 의견을 묻겠습니다. 극한 상황요, 한계상황에서 마플님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마플 이런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어요. 흐흐. 고려시대 때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쓴 《삼국유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역사서라고는 하지만 작가님이 읽으신 중세설화와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었어요. 이 책에 '정수사구빙녀(鄭秀師求氷女)'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괴짜로 불린 정수 스님이 어느 겨울날 삼랑사(三郞寺)라는 절에 갔다가 천암사(天巖寺)로 돌아오는 문 앞에서 금방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걸인 여인을 봅니다. 변변한 옷을 입지 못한 그 여인과 신생아는 얼어 죽기 직전이었겠지요. 정수 스님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여인과 아이를 안아 줍니다. 자신의 체온으로 언 몸을 녹여준 것이지요. 여인과 아이가 깨어나자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주고 나체바람으로 절로 뛰어갔어요. 한 벌뿐인 옷을 여인에게 벗어준 스님은 그날밤에 거적을 덮고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하인 마플님은 굶어 죽을지언정 도덕을 지키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아쿠타가와 마플님이 들려준 정수사구빙녀는 따듯한 도덕을 가리키는데 반해 제 작품은 비열한 인간성을 조롱하며 계상황을 합리화하는 듯해서 대조적이군요. 그럼 마플님은 죽을지언정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의 품성을 지키고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뜻인가요?

마플 네. 저는 그렇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이 사회를 덮은 가운데 나 혼자만 살겠다고 해봤자 행복해질까요? 행복한 최후에 관해선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거예요. 행복한 삶만 집착 수준으로 생각할 경우에 행복한 죽음이 보장될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이 대담을 지켜보는 독자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도 같이요. 아쿠타가와님은 《어느 바보의 일생》에서 "행복이란 행복에 신경 쓰지 않는 때를 말한다"라고 하셨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행복은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습니다. 과정에는 정신적, 물질적 요소가 결합된 거지요. 그런데 여기 사람과 돈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돈만 보는 사람, 사람부터 보는 사람, 돈부터 봤다가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 사람, 사람을 먼저 봤지만 내적 갈등을 거쳐 돈을 보기로 결정한 사람 등 다양한 선택이 있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말에 기준을 둘 경우, 즉 살아가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는 의미를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이해하신 분은 과정이 끝나는 지점에 행복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할까요? 저는 결론을 미리 내리지 않고 '도덕이나 행복의 개념을 질문하는 삶의 과정'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킨 행복의 개념으로 유추합니다

아쿠타가와 네, 알겠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결미에 드러났습니다. 마플님이 하인님이나 노파를 동물로 묘사한 부분을 가리켜 "인간의 이성과 도덕을 버리고"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습니다. 동물 묘사는 단지 연명하는 본능만 있는 동물로 인간의 추악성을 말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동물처럼 자기 생존신경만 남은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제가 그런 인간을 조롱한 건 맞습니다. 혹자는 인간의 품위를 말하는 작품이라고도 비평합니다만 인간이 품위를 지키려면 양심이 부재할 수 없지요. 지진과 화재와 대기근이 회오리치는 아비규환에서 한 움큼의 마른 볏짚 같은 자기 안위를 지키고자 노파처럼 시신의 머리카락을 뽑는다거나 하인님처럼 남의 옷을 뺏는 행위는 사체를 뜯어먹는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시커먼 동굴', '어두운 밤'이 뜻하는 건 마플님이 여러 번 강조한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절대 도덕의 기준을 벗어났다는 겁니다.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마지막 문장을 교정했습니다만 1915년 제국신문에 실린 초고에는 "하인은 이미 비를 무릅쓰고 교토의 마을에 강도짓을 하러 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다"라고 마지막 문단을 썼습니다. 교토로 돌아간다고 해도 하인님은 그곳에서 강도로 살아갈 것입니다

마플 저는 교정한 문장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성과 도덕을 버린 인간, 즉 도둑이나 강도는 교토라는 특정 장소가 아닌 어디에나 있고 양심의 길을 잃은 동물 같은,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방황이 그려집니다

 



마플 대담이 길어졌습니다. 가벼운 대화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나생문의 원래 이름은 나성의 문(羅城門)이라고 해서 나성문이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궁이나 관공서, 지역을 둘러싼 성의 문을 일컬었다고 하는데요. 왜 나성문이 나생문으로 바뀌어 부르게 된 건가요?

아쿠타가와 이 나생문은 헤이안의 수도인 교토가 융성했던 무렵에는 당나라 사신이 드나들 정도로 화려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재해가 계속 들이닥치고 교토가 폐허로 변하면서 장례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서진 성문에 시체를 갖다 버리기 시작했어요. 사회가 혼란하면 가난한 소외계층, 여성, 장애인 등이 가장 먼저 타격 피해를 입습니다. 여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니까 성범죄도 만연 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되니까 시체를 갖다 버린 곳에 사생아도 갖다 버리게 된 거지요. 인간의 뼈와 살이 모인 곳이니 배고픈 짐승들이 찾아왔고요. 소설에서 보다시피 라쇼몬의 목재를 뜯어 땔감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12세기 무렵에는 범죄자 소굴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온갖 귀신이 몰려든 것도 부족해 일본의 유명한 귀신인 이바라키도지까지 찾아왔다고 했으니 라쇼몬은 짐승의 소굴이자, 범죄자의 소굴에서 귀신의 소굴이 된 겁니다. 나성문이 나생문이 된 이유는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악귀였다가 갱생해서 호법신이 된 나찰(羅刹)이 사는 문이라고 해서 나생문, 즉 다시 태어난다는 함의를 갖춘 겁니다

마플 그렇다면 라쇼몬은 존재악의 장소이지만 갱생의 기회가 전혀 없는 장소는 아닌가요?

아쿠타가와 하인님이 1층에서의 고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앞에서 언급한 내용 그대롭니다. 하하하

하인 저의 극한상황에서의 즉 2층에서의 결정은 저를 구제하지 못하는군요

아쿠타가와 인간은 바나나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도덕을 버린 인간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럼에도 인간의 품성을 짐승처럼 만들지 않는 가치란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조롱조로 썼지만 이타성을 가리킨 정수 스님의 일화에서 오늘날 인간이 무엇을 뽑아 가치로 삼을지는 명약관화합니다

마플 상황에 따라 도덕 가치관을 편의적으로 적용하는 인간에게 절대적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인님도 작가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가 그쳤으니 편하게 돌아가십시오. 고맙습니다

하인 네, 감사합니다

아쿠타가와 감사합니다


-마플 합장(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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