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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Nov 28. 2023

문익점 재 발견

2019 콜마 윤동한 회장의 강의에서

 지난 여름 제주에서 콜마 윤동한 회장의 '4차 혁명과 문익점' 강의를 들었다. 문익점. 오랜만에 떠올리는 이름이다. 문익점은 시대에 어떤 의미였나? 붓뚜껑 목화씨앗의 산업 스파이정도로 알고 있지는 않았는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문익점을 깊이 연구한다. 강의를 들으며 차분하고 진지하게 역사를 연구하는 기업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문익점은 이색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세종 때에는 영의정과 부민후(백성을 부유하게 한 제후)에 추증되기도 한 인물이었다. 1368년 원명(元明) 교체기 당시 기황후 세력과 사찰세력이 흥하던 시절, 혁명을 넘어 왕조교체의 시기였다. 정도전, 정몽주가 적극적 혁신주의자라면 소극적 혁신주의자로서 이색과 문익점을 들 수 있다. 정치인 문익점으로서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1388년 위화도 회군. 우왕, 창왕은 왕 씨 아닌 신돈의 신 씨인가?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 론으로 소란한 고려말. 왕조에 충성할 것인가? 백성에 충성할 것인가? 문익점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비단과 모피를 입는 부유층에 비하여 삼베사이에 갈댓잎을 넣어 입던 민초들은 엄동설한에는 얼어 죽는 일도 많았다. 문익점은 면화를 통한 백성의 삶의 부흥을 선택한다. 그리고 실행을 위해 원나라에 가는 사신단에 합류한다. 문익점은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완성한 것이다. 문익점의 헌신적인 노력과 농사기술의 발달은 평균수명을 39세로부터 조선초기 50세까지 연장시켰다.

 목화씨와 재배기술을 얻었다. 지식인 창업가 삼우당(三優堂) 문익점에게 목면을 통한 부흥이 백성을 위한 혁신적인 사업이었다. 귀국즉시 다섯 아들 및 친구처럼 지낸 장인과 재배에 성공한다. 유독 문 씨 문중이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것은 목화씨앗을 나누며 흩어져 재배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유력한 5개 가문에 목화재배법을 무상으로 전수했고 보부상을 통해 10년 만에 전국에 확산되었다. 국가세금은 면포로 납부될 정도였다. 일본에서도 면수입이 중요했는데 화승총에는 솜이 필요했다. 도요타자동차도 원래 직조기회사로부터 출발했다. 육지면(대륙면이라고도 하며 실이 길게 뽑혔다)을 목포 고하도에서 재배하고 물레와 활을 개량하여 성공하였다고 한다. 

  '나누면 시장이 커진다'는 한국콜마 회장의 철학은 문익점을 연구하며 강한 신념이 된 것 같다. 한국콜마의 비비크림은 '콜타르'같이 끈적한 독일산 화장품을 대체하며 성공하였다. 윤 회장은 직원들에게 1년에 6권씩 책을 읽게 한다. 약간의 강요도 필요하니 인센티브도 있을 것이고 반대자도 있었을 것이다. 직원 중에는 책 읽기를 통해 작가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책 읽기는 '마음이 편하게 하려고' 주변에 권한다고 했다. 억울하면 이순신을 만나 보라고도 말한다. 이순신만큼 억울한 사람이 또 있겠느냐며 재단을 설립하고 이순신을 연구한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천천히 그러나 결승점에는 먼저 가자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라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다. .


 뉴스에서 윤동한 회장과 한국콜마는 창사이래 최대의 난관을 맞았다. 엊그제 회사 정례조회에서 최근 정부비난 유튜브를 강제방영했다는 구설에 휘말렸다. 곧 사과발표도 있었지만, 회사는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윤 회장의 '애국하는 신념과 철학'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까? 신랄한 보수 성향인 '리섭의 유튜브' 부작용을 예상치 못한 것이다. 내부자의 제보로 그저 언론에서는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신상 털기와 일본콜마와의 지분 숫자만 보도하고 있다. 반일감정의 프레임 속에서 뭇매대상 뉴스감으로 단연 1위였다. 윤 회장의 사퇴만이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한 기업가가 문익점 같은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던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저것 안 좋은 사실만 까발려져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사의 의도대로 각색되고 프레임이 씌워지는 게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문익점뿐만 아니라 여해재단을 세워 이순신의 애국충정과 혁신을 추구하던 기업가로서 그의 노력을 보도하는 언론매체는 없어 보인다. 그나마 유튜브에서나 변호와 항변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공영방송의 보도는 기대할 게 없다. 수많은 기업인이 자괴감에 빠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간다. 2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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