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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13. 2019

절대 만만하지 않은 '엄마표' 공부

엄마표 공부를 성공한 엄마들은 아이 다루기의 귀재들이었어

첫째는 여섯 살, 빠른 생일이라 또래보다 뭐든 조금씩 빨랐던 것 같다.

휴직을 최대로 쓰면 내년 하반기까지 쉴 수 있는데, 어차피 학교에 입학하는 내후년에는 쉴 수 없으므로 일곱 살에 조기입학을 시켜볼까 생각했다. 

워킹맘의 두 번째 무덤이라 불리기도 하는 초등 입학을 치르고 복직하면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올해 초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이집에서 7세 반으로 월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한 학기 마무리를 준비하는 6월에 와서 판단해보니 그냥 제 나이에 입학시키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냈다. 

만약 내년에 학교를 간다면 한글 쓰기, 영어 기초, 연산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이 급해진 내가 저녁마다 둘째를 재우고 '엄마표' 공부를 시키겠다고 나섰다가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조기입학이 별로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학습지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존재 


어릴 적 연산 학습지를 풀다가 반복되는 문제들이 너무너무 싫어서 학습지를 끊는 날 정말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성실하게 풀면 기초가 탄탄해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 뭘 하든지 끈기와 인내심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드문 예지만 내 사촌동생은 방학 때 우리 집에 며칠 놀러 올 때면 꼭 학습지를 챙겨 왔고, 하루만 더 놀다 가라고 붙잡으면 "구몬 해야 해서 안돼" 하며 가차 없이 집에 가자던 아이였다. (지금은 끈기와 인내가 정말 대단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반복되는 학습을 싫어할 뿐 아니라, 하루에 몇 장 씩 꾸준하게 푸는 습관 들이기를 어려워하는데 학습지 선생님은 비록 짧은 시간 머물다 가더라도 고정적인 방문을 통해 학습을 확인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꾸준히 학습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비용은 교재 포함 월 3~4만 원 정도.


휴직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충분하니, 내가 학습지 선생님을 자처하기로 했다. 

학습지 1~2개월 비용이면 문제집 두 세트를 사서 6개월 이상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연산 문제집을 구입해서 아이와 함께 저녁마다 책상에 앉았다. 

물론 비용 문제도 있지만 "선생님 오시는 공부 할래?" 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세차게 젓는 아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어떤 교재가 좋을까 찾아보니 5세부터 할 수 있는 기초 연산 문제집, 요즘 유행하는 사고력 수학 문제집이 단계별로 다양하게 나와있었다. 연산과 사고력 수학 두 세트를 구입했다. 


작년 말부터 6개월 정도 해보니 매일, 꾸준히 공부를 한다는 것은 보통 노력을 들여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고 얼르기도 해 보고, 엄하게 꾸중을 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파트부터 풀게 해주기도 했지만 내가 진이 빠졌다. 구입한 문제집 두 세트 중 한 세트는 겨우겨우 끝냈지만 다른 한 세트는 아직도 7권이나 남았다. 반복적인 문제를 푸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데다 억지로 하게 하면 문제집에 마구 낙서를 하는 등 학습할 의지가 없었다. 급기야 어느 날은 하기 싫다고 화를 내다 문제집을 찢었다.

아차 싶어 그 날로 연산 문제집 푸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년에 학교를 보낸다면 기초 연산은 알고 가야 할 텐데 하는 노파심에 시작한 공부였는데 이렇게나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붙잡고 해서는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다른 워킹맘들도 초등 1학년 때 안 쉬는 경우가 더 많은데 어떻게든 될 테니 그냥 제 나이에 보내자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마다 문제집 대신 좋아하는 보드게임이나 오목 같은 것을 하면서 아이도 훨씬 좋아했다. 

나의 야심 찬 엄마표 공부는 1보 후퇴했다.  


연산 공부가 필요하다면 학교에 입학해서 학습지를 구독하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방법 역시 꾸준히 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에도 있던 학습지 선생님이 왜 지금까지도 계시는지 이번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역할은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


그렇다고 아예 엄마표 학습을 놓았냐면, 그건 아니다. 

복직하면 여유가 더 없을 것이 뻔하므로, 꼭 연산이 아니라도 다른 학습 습관을 길러주거나 동기부여 또는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는 중이다. 

연산 공부는 일단 후퇴했지만 영어는 알게 모르게 꾸준히 들이밀고 있다.

 

사실 엄마표 공부 중 대표적인 것이 '영어'가 아닐까. 시중에 넘쳐나는 관련 책과, 블로그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 무궁무진한 엄마표 영어 사례들이 많다. 

첫째가 아기였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정보를 수집했지만 영어 역시 무수히 많은 방법 중에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한글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자 영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유명한 DVD를 구해서 틀어주면 재미없다고 했으며 영어 동요를 틀어주면 끄라고 했다. 그나마 온라인 영어동화 프로그램에는 제 구미에 맞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것은 꾸준히 보길래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게 mp3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아이패드에 넣어주니 잠자리에서도 들으면서 잔다. 


얼마 전에는 내가 이용하고 있는 중국어 학습 앱을 켜더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길래 하게 해 주었다.

중국어 문장을 보여주고 그것을 주어진 영어 단어로 어순에 맞게 배열을 하는 문제였는데 중국어도 모르지만 영어도 모르니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엄마, 나 이거 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 하길래 어순에 맞게 영어 단어를 불러주었다.

영어 단어를 읽지 못하니 불러줘도 풀 수가 있나, 답답했던지 "아니, 그 단어가 뭔지를 알려줘야지!" 하길래

손으로 짚어가며 알려주고, "너 이거 읽고 싶으면, 엄마랑 저녁마다 영어단어 읽는 법 공부해야 하는데 할래? 아니면 선생님 오시라고 할까?" 물었더니 "선생님 싫어! 엄마랑 할래."라고 한다. 


언젠가 구입해 둔 파닉스 교재를 펼쳐서 단모음부터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교재를 막 사서 하자고 했을 때는 싫다고 도망가더니, 영어 단어를 몰라서 못 읽는다는 것을 깨닫자 호기심이 생겼던지 그래도 제법 따라오고 읽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영역을 다 끼고 가르쳐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학습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 있게 적당히 자극을 주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여섯 살인데 굳이 학습을? 취학 전에 괜히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의 약간의 선행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고, 뒤늦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보다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엄마가(혹은 아빠가) 학습의 시작을 이끌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 혼자 충분히 고민하고 해결하는 편이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어릴 적 일하는 엄마 대신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학교 입학을 앞두고 받아쓰기를 시키시고, 간단한 셈을 하거나 구구단을 외우게 하셨던 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결코 쉽지 않은 '엄마표' 공부는 휴직 기간 동안에는 끈을 놓지 않고 신경을 쓸 예정인데 아이의 반응을 살펴가며 속도조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엄마인 내가 지치지 않는 것이다.

책을 낼 정도로 엄마표 학습에 성공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아이 다루기를 정말 잘하고, 대단한 열정과 끈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깊은 찬사를 보내며, 오늘도 빠지지 않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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