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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d Oct 18. 2023

배려의 알맹이와 오해의 껍데기

생존전략 ep.4

*현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그런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다고? 미쳤어? 그걸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삼촌 말로는 아빠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했다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냐.”

“그럼 형이라면. 형이 아빠 옆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건데? 아빠가 야위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형은 어떻게 했을까? 아빠가 더 이상 살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집에 가고 싶다 하면 형은 어떻게 했을 거냐고.”

“내가 있었으면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도 없었을걸. 당연한 거야. 가족이 아프면 병원에 억지로 라도 끌고 가는 건. 아빠도 자기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거야. 그래서 병원에 가기가 무서웠던 거고. 그렇잖아. 다들 일이 틀어지면 바로잡기보다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 하잖아. 제발 아니어라, 하면서 기도나 하고 있었던 거지. 그때 그걸 바로잡아주는 건 옆에 있는 사람, 가족이 해야 할 일이야.”

“아니 절대. 형은 또 탓이나 하고 있었을걸. 내가 이렇게 힘든 건 엄마 아빠가 싸우기 때문이야, 내가 시험을 망친 건 엄마 아빠가 싸우기 때문이야, 내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눈치나 보면서 사는 건 엄마 아빠가 싸우기 때문이야. 그러다 아빠가 야위어 가는 게 보이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아빠가 아픈 건 엄마 때문이야.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나도 그냥 피해자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집을 나갔겠지. 내가 아는 형은 딱 그럴 거 같은데.”

“그래 뭐. 탓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있는 거니까. 근데 그렇게 치면 네가 나랑 다른 게 뭔데? 아빠의 삶은 아빠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거야, 아빠가 선택한 게 설령 죽음 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왜냐, 그건 아빠가 선택한 거니까. 허. 미친 소리지.”



*지훈의 기억.


시련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툭’ 하고 나타나 징하게 자리 잡다 결국에는 기권을 외치게 하는. 시련은 강하게 휘몰아치는 것이 아닌, 천천히 안에서 갉아먹는, 싸울 의지부터 꺾어버리는 영리하고 부지런한 놈이었다.

지훈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형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 삶은 지훈을 시련으로 이끌었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였다. 시련은 언제나 ‘나 간다!!’ 하고 찾아오는 법이 없으니.

그날 지훈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집 문 앞에 섰을 때 시간은 오후 11시로, 보통은 부모님 두 분께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었다. 지훈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열쇠 뭉치를 꺼내 조용히 열쇠 구멍에 넣고 또 조용히 열쇠를 비틀었다. 손에 힘을 꼭 주고 조심조심. 

문고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 돌렸다. 소음에 민감한 엄마가 잠에서 깨는 일은 없게 해야 했다. 

문은 열렸고 소음은 없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해? 제. 테. 크. 라. 니. 까.” 

...

대신 굉음은 있었다.

안방 너머로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요란한 와중에도 참, 발음이 좋은 편이었다.

지훈은 거실 신발장 앞에 그대로 서서 귀를 기울였다. 

“재테크는 무슨, 씹..” 

씹..? 

“뭐? 씹? 방금 씹이라 했어? 조금만 더하면 한 대 치겠다? 어? 쳐. 쳐봐. 어? 쳐보라고!” 엄마가 소리쳤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1초. 2초. 3초.


철컥. 쾅.


문고리가 과격하게 돌아가는 소리. 벽에 부딪히는 소리. 씩씩대며 거실로 나서는 아빠. 

지훈은 딱히 무슨 반응을 할 것도 없이 가만히 찡그려진 아빠의 미간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두 남자는 잠깐 동안 서로를 쳐다보며 혼란스러운 뇌를 빠르게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 

먼저 눈을 피한 건 지훈이었다. 지훈은 말없이 눈을 깔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빠는 집 밖을 나섰고 엄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날은 온 집안이 침묵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고 그만큼 두 분의 싸움은 장기화되었다. 그날의 다툼은 전쟁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의 그 시간은 오로지 지훈과 민준 각자의 싸움이었다. 지훈은 학교와 집안 문제에서, 민준은 군 생활과 집안 문제에서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도 각자의 문제와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날 후로 아빠는 그렇게 질색하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엄마는 집에 있는 시간을 점점 줄여갔고,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기라도 하면 두 분은 목청껏 싸우기를 반복했다.

아니. 목청껏 싸우는 쪽은 오로지 아빠 쪽이었다. 엄마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아빠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아빠가 누구에게 소리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무시했다.


“이럴 거면 그냥 따로 살자.” 

어느 날 아빠는 새벽 한 시에 걸쭉하게 취한 채로 집에 들어와서는,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 중인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왜? 네가 집 해줄 거야?” 엄마가 응수했다.

“미친년. 니 같은 년을 만난 내가 잘못이지.”

술에 걸쭉하게 취한 아빠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그래.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책임지는 거야.” 

그러나 엄마는 강했다.

지훈이 생각하기에 아빠는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무엇도 아빠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아빠는 엄마와 이혼도 할 수 없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아빠는 노골적으로 엄마에게 이혼을 청했다. 처음엔 그렇게 자극적이고 큰일인 듯했던 이혼도 계속 듣다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혼란에 적응해 갔다. 그는 두 가지 길에 대해 생각했다. 두 분이 이혼했을 때와 끝내 이혼하지 않았을 때. 두 상황은 그리 다를 게 없다. 둘 다 안 좋은 상황이긴 한데 무엇이 더 안 좋은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자주 놓이곤 하는 평범한 선택의 기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두 분의 대립은 더 더 장기화되어 갔고, 해결의 기미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싸움이 장기화될수록 중요한 것은 체력과 자기 관리다.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쪽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점에서도 아빠는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순전히 아빠 쪽인 듯했으니까. 

엄마의 삶은 어떤 점에서는 전보다 더 평화로웠다. 이전엔 본업이었던 집안일을 일절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빠는 매일같이 술에 찌들어 힘들어했고 엄마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즐겼다. 강한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지훈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빠는 눈에 띌 정도로 핼쑥 해졌다. 매일 같이 보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다 어느 순간 과거와 비교해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던 것이다. 하루가 쌓여 갈수록 건강과 멀어져 가더니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날도 많아졌다. 

코앞에 놓인 대학과 아빠의 건강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지훈에게 중요한 것은 아빠의 건강이었다. 대학에 관심이 있는 건 지훈이 아니라 아빠 용수였고, 지훈이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아빠의 건강과 행복과 가족의 화목이었다.

“아빠. 저랑 병원 한번 가요.”

이전에도 지훈은 몇 번씩이나 병원 방문을 권유했으나 아빠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만큼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괜찮다. 아무 이상 없다.”

“아무 이상 없는 게 아니에요 지금. 아들 말 한 번만 듣고 딱 한 번만 같이 가요, 네?”

“..”

몇 번의 설득 끝에 아빠는 처음으로 지훈의 말에 따랐다. 

“요 앞에 잠깐 가보지 뭐.”

“아니요, 아빠. 큰 병원으로 가요. 검사받을 때 확실히 받아야죠.”

“작은 병원 의사는 의사도 아니냐? 다 같은 의사인데 크고 작은 게 뭐가 문제야. 큰 병원은 돈만 더 비싸지. 번거롭게 하지 말고 그냥 요 앞에 가.”

아빠의 고집 덕에 동네병원에 그쳐야 했지만 안 가는 것보다는 동네병원이라도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지훈도 아빠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병원에는 세 개의 병실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아빠의 상태가 겉으로 보아 꽤나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판단했고,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니 며칠간 세 개의 병실 중 한 곳에서 생활하기를 권했다. 

“아니요 아니요. 제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아빠는 회사 일을 염려했지만 “며칠 더 벌어보겠다고 검사를 미뤘다가는 그 며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손쓸 방법도 없이 입원을 선택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입원을 하기는 했지만, 아빠는 병실 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술이 없는 밤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술 없이는 잠에 들지 못했다. 병원 불은 너무 이른 시간에 꺼졌고, 또 너무 이른 시간에 켜졌다. 시간에 맞춰 세 번 제공되는 식사는 간이 전혀 입에 맞지 않아서 차라리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는 편을 더 좋아했다. 몸에 바늘을 꽂는 일이 잦았고,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바늘을 꽂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간호사의 연습용 더미가 되어야 했다. 매일같이 하던 출근을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두려움과 혹시라도 병실 생활이 더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병원에서의 통제는 아빠의 숨통을 조이기에 충분했다.


온갖 통제와 불편을 모두 견뎌내고 약속된 시간이 되었을 때, 아빠는 드디어 퇴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술 끊고 건강에 신경 좀 많이 쓰셔야겠어요. 이미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이러다가는 얼마 못 가서 큰일 납니다. 정말이에요.” 의사는 본인의 말을 각인시키기라도 하는 듯 아빠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일단 오늘은 퇴원하시고요. 밑에 약국에서 약 몇 개 지어드릴 거예요. 약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술은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통제 없는 자유 속에서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빠는 병원을 나온 직후 집으로 향했다.

“아빠, 약국 들러야죠.” 지훈이 말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약은 무슨. 됐다. 봐라, 아빠가 아무 문제없다 했잖아. 의사 저것들 다 돈 벌려고 상술 부리는 거야. 괜히 시간 날리고 돈 날리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짜증 섞인 원망이었다.

아빠는 그날로 다시 술을 입에 댔고, 겨우 살겠다는 듯 평소보다 과하게 들이켰다. 다음날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일으키면서도 술은 끊지 못했다. 아빠가 병실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은 ‘병원은 쓸데없는 검사를 명목으로 사람을 귀찮게 하고 돈만 빼앗아 가는 곳’이라는 것뿐인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병실 생활을 하기 전보다 더 망가진 아빠의 생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야위었던 아빠의 몸은 마치, 자신이 더 야위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쪼그라들었다. 거무잡잡하던 아빠의 피부에 누런빛이 돌기 시작했고 앙상한 팔에는 숟가락을 들 정도의 힘도 없었다.


“아빠.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살도 너무 많이 빠졌고..” 지훈이 다시 말을 꺼낸 것은 퇴원 후 몇 개월이 지나고 난 뒤였다.

“됐다. 아빠 병원 가면 일은 누가 하노.”

“아빠가 아프면 일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만.”

아빠는 단호했다. 아빠의 표정은 마치 ‘예전에도 네 말을 들었다가 시간과 돈만 날리지 않았느냐’는 듯했다.


물론 그것은 지훈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훈이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듯, 용수는 아들의 대학을 걱정했다. 아빠로서 해준 것이 얼마 없다고 느꼈다. 항상 부족한 아빠였는데, 또 이렇게 또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어버리는 쪽이 훨씬 더 편할 것이다. 그의 몸에 자리 잡은 생명체는 죽고 싶은 그의 마음의 병이, 몸에서 실현화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기에, 두 아들놈에게 대학 등록비 정도는 남겨줘야 했기에  술의 힘을 빌려 간간이 살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이 무슨 소용인가. 그는 치료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 안에 갇혀서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오로지 벌어야 했다. 하루라도 더 벌어서 두 아들놈에게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만이라도 떳떳해지고 싶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병원은 갈 수 없었다.


거기다 대고 지훈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지훈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는 그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기도할 뿐이었다. 그의 기도가 횟수를 거듭하는 동안 시간은 멈추지 않고 달렸고 아빠의 몸에 자리 잡은 생명체도 열심히 덩치를 불려 갔다.


이제 지훈은 대학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다.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곧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의 도피를 의미한다. 모든 책임을 피해 갈 수 있는 수단이고 원망의 대상에서 한 걸음 멀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훗날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는 변명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훈은 대학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이 최악의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헤쳐나가는 것 만이 정수라는 것을 안다. 본인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 아빠의 선택을 막을 수는 없어도 최대한 본인 의견을 피력하고 옆에서 기도하고 응원하고 힘이 돼주는 것 만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다른 어떤 가족보다 지훈은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를 생각했기 때문에 아빠의 음주를 막을 수 없었고 병원 방문을 강제할 수 없었다. 

아빠의 음주는 지옥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취제이고 병원은 아빠의 삶을 더 깊은 지옥으로 끌고 가는 직행열차였다. 비록 이 두 가지로 인해 아빠의 삶이 근본적으로 망가져 가더라도, 그것들이 비록 삶에서의 도피라고 할지라도 아빠에게 그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행복과 안정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짜 행복 가짜 안정이라 할지라도 아빠가 유일한 길이라 믿는 한, 그것들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훈은 아빠가 누리고자 하는 유일한 행복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이가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길을 막아서겠는가.

지훈이 그 선택이 불러올 파장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훗날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아빠의 옆에서 유일하게 깊게 생각하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본인은, 유일한 죄인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빠의 옆에 붙어있는 사람이 지훈뿐이라는 사실은 그가 얼마만큼 아빠를 신경 썼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이 결과에 의해 해석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언제나 그렇듯 선택지는 안 좋은 것과 더 안 좋은 것밖에 없는데. 

그는 단지 훗날의 두려움 때문에 현재 해야 할 일을 모른 채 하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렇게 아빠와 아들은 서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배려했다. 아빠는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아들은 아빠를 위해 대학을 포기했고, 아들은 아빠가 오로지 살아있기만을 원했지만 아빠는 열심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로지 아들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마음, 적어도 피해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훈이 우려한 일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는 대학에 입학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빠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빠에게는 대학에 붙었다는 사실을, 그것도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쁜 표정으로 전해드려야 했다.

당연하게도 아빠는 기뻐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뭐랄까..

몸에 힘이 쫙 빠진 채로 미소 짓는 동시에 일그러진 표정은 뭐랄까..

그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뭐랄까..

이제 됐다, 여한이 없다, 다 끝났다, 뭐 그런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아빠는 야위었다는 느낌에 더해 피부색이 더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못해서는 다른 신호마저 보내왔다.

어느 날부터 아빠는 말수가 줄었고 수면 시간은 늘어나고 가끔은 밥을 먹다가도 꾸벅꾸벅 졸았으며 본인이 뭘 먹었는지, 지금이 몇 시이고 어디인지도 까먹곤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불안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모습을 3일간 지켜보던 지훈은 결국 다시 말을 꺼냈다. 

“아빠, 병원..”

“그만.”

“..”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아빠의 삶은 아빠의 것으로,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본인이 자유를 원한다면 당연히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 줘야 한다. 지훈은 아무것도 강제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정 아빠가 원하는 삶이라면,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할머니가 있었더라면, 형이라도 있었더라면 상황은 바뀌었을까.

그러나 지훈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빠를 위해 기도하고, 아빠의 생활에서 불편함을 걷어내고, 아빠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아빠 앞에서만큼은 모르는 채 하며 혼자 방 안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일뿐이었다. 진정 아빠를 위한다면 그래야만 했다. 성질내고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선택을 그대로 존중하고 아무 문제없다는 듯, 원하는 것을 실컷 누리게 두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빠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지훈이 아빠의 방에 들어갔을 때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있다기보다는 축 늘어져 있었고 하체 주변으로 누런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아빠가 더 이상 의견을 주장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지훈은 본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119에 전화해 아빠를 병원으로 날랐다. 아빠는 들것에 실려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온 팔에 주삿바늘이 박혔다. 여러 개의 기다란 줄이 아빠의 몸과 하나가 되었다. 

지훈은 할머니에게 삼촌에게 형에게 전화를 돌렸고, 모든 원망의 소리를 감당해야 했다. 

아빠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냐, 왜 말 안 했냐. 

말 안 했을 리가 없지 않나. 수도 없이 말했다. 처음에야 다들 놀랐지만 점차 본인들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고 그들은 말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인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일뿐이다. 

누구도 미래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평소에 잘하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지훈은 그들을 이해했다.

‘가까이 있었으면 잘 챙겼어야지’라고 그들은 말했지만 지훈은 알고 있었다. 모든 원망의 소리가 사실은 본인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단지 외면할 뿐이다. 본인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과거가 후회스러워서 비판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은 것뿐이다.

그걸 알기에 지훈은 원망 섞인 모든 말을 혼자 감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 또한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지훈은 그저 들어줌으로써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오직 지훈뿐이었다. 비판의 소리를 들을 사람도 오직 지훈뿐이었다.


엄마는 어디 있냐고? 모른다. 지훈도 몰랐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엄마가 지금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삼촌이 묻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언제부터 없었던 걸까. 

“엄마는? 엄마는 어딨어?”

“몰라요.”

지훈의 모른다는 대답은 한 번 더 가족을 실망하게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의사 선생님이 다가왔다.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빠가 암일 수도 있단다. 췌장암일 확률이 거의 90%이고 이미 진행 상태가 말기에 가까울 것 같단다. 암. 그거 드라마에서나 봤던 건데. 

...

삶은 때론 드라마처럼 흘러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빠의 몸은 수술이 불가능하고 조직 검사조차도 무의미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지금은 수술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일단 살아남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써는 그마저도 힘들 것 같단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무거웠고 그 표정에서 지훈은 아빠와의 긴 작별을 읽었다.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면회 시간은 총 30분이지만 둘씩 짝지어 교대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랬다.

“아빠..” 지훈은 아빠의 손을 엄지로 문지르며 속삭였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보는 마지막 모습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아빠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믿음을 줘야 했다.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말이다. 

“어으..어..으아..” 아빠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입으로 최선을 다해 말했다. 

“네?” 

지훈은 알아듣지 못했다. 맞은편에 서 있는 삼촌 또한 그랬다. 

“어..”

“...”

“이..입..” 

아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통을 감수해 가면서도 소리를 냈다.

“집?” 지훈이 말했다.

끄덕. 한 번 더 끄덕.

“집에 가자고요?”

“어..”크게 끄덕. 

지훈이 문지르던 아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세하게 그랬다.


중환자실에 누워 바늘과 하나가 된 용수 씨. 이미 죽음의 향이 코 안으로 깊이 스며든 용수 씨. 용수 씨는 마지막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삶을 마감해야 한다면 친숙한 곳에서, 항상 지내왔던 곳에서, 삶이 담겨있던 곳에서 마감하고 싶었다. 이 향내 나는 곳에서, 고통의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아니. 이렇게 목숨을 연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만 끝내는 것이 더 좋겠다. 조금 더 살아보자고 발버둥 치는 건 더 고통스러워지자고 발버둥 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삶은 어땠는가.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은 이제 지쳤다. 행복한 날도 있지 않았냐, 그래 있었다. 지쳐 쓰러질 만하면 코앞까지 다가와 희망의 냄새를 들이밀던 행복. 그래, 세상은 나에게 행복을 줘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더 깊은 고통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만 하늘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하늘 위로 가면 뜨거운 태양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지훈은 아빠의 손을 침대 위에 조심스레 놓았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희 아빠 퇴원하게 해주세요.” 

지훈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말했다. 그 뒤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큰삼촌이 서 있었다. 

지훈의 말이 입 밖을 떠나고 1초. 2초.

“에이, 개자슥아!” 

지훈의 머리채를 부여잡은 할머니. 할머니를 말리는 삼촌. 뒤통수를 잡힌 채로 질질 끌려나가는 지훈. 

“그만해라!!” 가만히 서서 호통치는 할아버지. 

인간관계에 있어 믿음과 정이 중요한 가치라면, 이날 지훈이 잃은 사람은 아빠뿐만이 아니었다. 아빠는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마음이 떠났다. 그리고 엄마는 포항을 떠났다.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엄마의 완벽한 승리로.




*둘의 공통된 기억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지훈과 민준은 얼마 전까지 ‘우리 집’이라 불렀던 곳에서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아빠의 재정적 상황은 생각했던 만큼 보다 더 좋지 않았다. 집은 물론이고 차에 대한 부채도 아직 상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은행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준과 지훈은 재산을 양도받기를 포기했다. 그 덕에 적어도 빚은 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은행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도대체 엄마는 아빠의 월급으로 뭘 한 걸까. 언제부터 계획되었던 걸까. 민준과 지훈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집에서 쫓겨나면서도 꽤나 덤덤했다.


용수는 세상을 떠나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남겨주었다. 민준에게는 획기적인 생존전략과 복수의 불씨를, 지훈에게는 정신적 성숙과 진정한 자유를,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분노와 절망적인 기억을, 옥자에게는 보험금과 국민연금을.

옥자의 승리가 더 완벽해지는 순간이다. 그녀는 전리품마저 확실하게 챙겨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세상은 공평이나 평등을 신경 쓰지 않는다. 옳고 그름 따위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은, 각자가 가진 능력으로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야생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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