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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d Oct 18. 2023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

생존전략 ep.3

생존전략 ep.3

* 현재


“형이랑 대화가 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래. 그럼 찾아오지 말았어야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현주가 환자라서? 환자라서 불쌍해?” 민준은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허, 참. 재밌다 그치. 도대체 넌 얼마나, 어디까지 오만해질 생각이야? 네가 남의 삶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고서야... 그런 발언은 말이 안 되잖아.”

“괜히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 형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등쳐먹는 짓이야. 형도 모르지 않을걸. 모른 척하고 싶은 거겠지. 복수니 뭐니 상황 탓, 남 탓 다 해가면서 시간 허비하다 보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겠지. 이제 나이도 먹었겠다, 밥그릇 걱정은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근데 막상 돌이켜 보니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거야. 형이 그렇게 혐오했던 엄마처럼 살면 그만이거든. 어차피 합리화에 핑곗거리는 충분하겠다, 그래 완벽한 계획이었네. 대단하다 정말.”

민준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물었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의 양쪽 관자놀이에 선명하게 그어진 핏줄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가 맞네. 재밌는 이야기가 또 하나 나왔네. 근데 정말 그게 다일까. 우리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잖아. 그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잖아. 그지? 넌 네가 얼마나 많은 걸 고려했다고 생각해?”

“살을 덕지덕지 붙인다 해서 뼈대가 변할까. 가려진다 해서 그 속이 변하는 건 아니야.”

“그래. 살을 아무리 덕지덕지 붙인다 해도 속은 안 변하지. 너도 알고 있으면서 잘도 그런 짓을 했구나.”

“뭐?”

“아빠. 네가 죽였잖아. 네가 아무리 이상뿐인 헛소리를 갖다 붙여도 결국은 네가 한 짓이라는 걸 너도 모르지 않을걸. 아니야?”

민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훈은 답답한 와중에도 그의 눈빛만큼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과 전혀 맞지 않지만 지훈은 머릿속으로 그의 매력적인 외관과 뚜렷한 언변을 인정하고 있었다.



*민준의 기억


민준이 잠시 사회를 떠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 둘의 아버지 용수는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점진적인 병이었다. 

입대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들려오던 두 분의 이혼 소리. 잦은 다툼. 

“뭐가 문젠데?” 민준은 모든 소식을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장소에서 수화기 너머로 들어야 했다.

“모르겠어. 얼마 전에 크게 한번 싸우셨는데.”

“그러니까 왜?”

“몰라 나도. 재테크니 뭐니 하면서 싸웠어.”

“재테크? 무슨 재테크. 아빠가?”

“아니 엄마가. 엄마가 재테크라 소리 지르고 아빠는.. 거의 욕까지 나올 뻔했어. 두 분의 일이야. 그냥 말해 줘야 될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거고.”

재테크? 엄마가 재테크?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러니까 엄마가 돈으로 장난을 좀 쳤다는 얘기네?”

“몰라. 정확한 건 아니야.”


사실 민준에게 있어, 두 분의 다툼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뭐 사람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매일 같이 붙어 지내다 보면 별별 문제로 다투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엄마와 아빠의 성격이 그리 잘 맞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견디고자 했던 아빠의 인내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억지로 유지되었을 뿐이다. 근데 뭐 이제 두 아들도 자랄 만큼 자랐겠다, 아빠도 이제는 본인의 성격대로 살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두 사람의 다툼이 돈 때문이다?

그건 좀 다른 문제였다. 민준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다. 돈이 관련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다.

감히 우리 돈을 건드려?

민준의 머릿속에서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착착 자리를 찾아갔다. 아빠의 월급이 이렇게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우리 집은 왜 이런가.

다 이유가 있었다. 팀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팀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돈은 이미 엄마한테 있고.. 아니 아직 있기는 할까?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직 돈이 있다면 다시 가져오면 그만이다. 근데 그게 아니라면?

민준은 이마를 짚었다. 지금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주도권은 엄마한테 있다.’

이미 돈이 넘어간 이상 질질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다. 그 돈이 아빠가 힘든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일지라도 뭐, 그 사실이 뭘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아줌마.’

민준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동생 놈은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여전히 쫑알대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민준은 군대 안에서 머리를 싸잡고 생각해 봐야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동생 놈에게 제한적으로 전해 듣는 이야기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동생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의 정직하고 도덕적인 껍데기로 포장된 멍청함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써야 했다. 며칠 뒤에 있을 신병 위로 휴가 만으로는 부족하다. 

긴 군 생활에 이른 휴가 이기는 하지만 뭐, 짬이 차서 군 생활이 편할 때 쓰는 것보다는, 가장 힘든 시기에 쓰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니겠는가?

선임들이 그의 휴가를 달가워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선임의 입장일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는 별 힘이 없었다. 선임 위에 간부가 있는 게 군대 아니겠는가. 물론 선임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말이다.


민준이 목격한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아빠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엄마. 소리를 질러대고 욕을 내뱉는 아빠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엄마. 결국 혼잣말로 한탄하는 아빠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엄마.

그리고 그 불똥이 본인에게 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생 놈까지.

민준이 보기에 그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아빠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뿐이었고, 동생은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따져가면서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당연히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었다. 이미 칼은 그녀가 쥐고 있었고, 지금 집안의 문제는 그녀에게 전혀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굳건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올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협박은 물론이고, 회유조차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이성적인 선택만 내놓겠다는 다짐을 한 프로선수 같았다. 민준은 엄마와 아빠의 싸움에서 프로와 일반인의 싸움을 목격했다. 가능성이 없는 싸움이었다.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리도 단단하게 만들었나. 애초에 가족이라고 생각하긴 했나. 


민준은 일을 해결하겠다며 호기롭게 선언하고 나온 첫날 만에 희망을 잃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러하듯,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집을 떠난 두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휴가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첫 휴가에서 멈췄어야 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해결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주기적으로 긴 휴가를 나왔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집안 사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집안 사정을 해결하겠다는 건 포기했으면서, 오로지 훌륭한 핑계로 이용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뭐든 뜻대로 할 수 없는 후임 생활을 편하게 보내는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 마음이 공존했던 것은 사실이다. 생활반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아빠가 걱정되고 마음속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 그는 참았어야 했다. 아무리 걱정된다 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불안 때문에 감정적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세상이 준비한 불행이 어디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말한다.

“자, 특훈이다. 견뎌라. 어떻게든 견뎌라.”

익숙해지면 또 말한다.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세상은 마치 어떻게든 민준을 망가뜨리려고 작정하기라도 한 듯,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빠가 아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민준이 상병 5호봉쯤 되었을 때였다. 한동안 별일 없이 흘러간다 했다. 뭐 상황이 나아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현상 유지 정도는 되었다.

두 분은 이제 싸우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아빠도 지쳐버린 것이다. 이혼하자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상황에 익숙해졌으니, 어느 정도는 전쟁 속에서 자신들만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생활해 갔다.

민준 또한 그랬다. 어떻게 사람이 늘 주의를 기울이고 살겠는가. 조금 괜찮아졌다 싶으면 본인의 다른 요구도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민준은 마지막 휴가 5일을 오로지 친구들을 만나는 데에 써버렸다.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기 불과 일주일 전에 말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휴가는 단 하루도 없었다. 전역하게 되는 날까지 그는 군대 안에서 수화기를 통해서만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봐서 잘 몰랐는데 오늘 확 느껴지더라.”

“병원은?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야 될 거 아니야, 등신 새끼야!”

그는 마치 바늘에 찔린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가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이토록 감정적으로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오랜 전쟁 속에서 감각이 예민해진 걸까. 

그는 동생이 전하는 소식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이번만큼은 아무런 해결책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 외에는 말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을 민준은 그날 처음 느꼈다.

“소리 지르지 마. 내가 권유 안 해봤겠어?”

“권유가 아니라 끌고 가라고!”

“아빠가 안 가겠다는데 내가 뭘 어떡해? 내가 억지로 뭘 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고.”

동생이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다. ‘본인의 삶은 본인의 것이니 선택도 책임도 본인의 것.’ 동생은 그 말을 거의 달고 산다.  

“아.. 동생아. 제발. 이 등신 같은 새끼야, 제발!! 아빠가 지금 무슨 정신이 있겠어, 어? 형 말 한 번만 들어라. 제발 한 번만 들어!!”

“나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나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아.. 이런 씹..”

“이런 식이면 앞으로 전화 안 하는 게 좋겠어.”

“뭐? 야, 야!”

뚝.


동생 지훈은 한다면 하는 놈이었다. 정말 그 후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에 세 통씩 전화를 걸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방법은 휴가뿐이었지만 그에게 남은 휴가는 이제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전역날을 기다리고만 있겠는가.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휴가를 받아내는 일에 집중했고, 그 결과로 총 3박 4일의 휴가를 겨우 받아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민준이 휴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동생의 권유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아빠도 스스로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고집은 꺾지 못해, 대학병원 대신 동네에서 그나마 크다는 병원에 입원했다. 

하얀색 환자복에 앙상한 몰골. 안 그래도 작은 덩치였던 아빠는 이제 거의 쪼그라들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조차도 힘들어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을 호소했다. 그 와중에도 휴가 나온 아들의 손에는 용돈을 쥐여줬다.


그의 휴가 패턴은 단조로웠다. 낮에는 아빠 옆에서 수발을 들고, 여태껏 하지 않았던 부자간의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아빠와 아들은 서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적절한 주제를 민준은 알고 있었다. 

민준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빠와의 추억, 에피소드를 쉴 틈 없이 꺼냈고, 그 속에 가벼운 농담도 녹여냈다.

효과는 만족스러웠다. 앙상한 몰골에 삶의 의욕이 보이지 않는 아빠를 상대로 미소를 뽑아냈으니 말이다.

“좋네.. 좋..아. 민준아. 사랑한다이.”

아빠는 잘 나오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내뱉었다. 


민준은 3박 4일의 휴가를 통해,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느끼고 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서도, 그 시기가 너무 빨라서, 그 시기가 적절하지 않아서, 아빠의 삶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눈물이 났다.


‘제발. 제발 전역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민준은 오랜만에 기도를 올렸다. 저번과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민준은 병장이 되었다. 이제는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빠는 아픈 몸으로도 꾸역꾸역 삶을 살아나갔다. 이제 민준은 아빠에 대한 걱정을 줄였다. 세상이 처음으로 소원을 들어줬구나, 했다.

그렇게 민준은 세상에게 빈틈을 보여줬다. 그것이 세상이 시도 때도 없이 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병장 박민준. 상황실 보고.”

새벽 근무를 마치고 막 생활 반에 돌아오던 참이었다. 근무상 문제는 없었다.

“필승.”

“어 민준아. 전화 좀 받아봐라. 네 동생인 거 같은데.”

동생의 전화 자체가 낯설기도 했고, 이 시간에 올 전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고작 오전 8시. 민준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나가서 받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필승.”

민준은 상황실을 나가 소초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전화를 받았다.

“어.”

“형..”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갔던 아빠의 죽음에 대한 걱정은, 단 한순간도 지워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폭발해 버렸다.

“씨.. 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불안한 느낌은 대체로 확률이 좋은 편이니까.

“아빠가.. 암 이래..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래.”

“그전에 병원은. 병원은 안 데려갔어?”

“아빠가 절대 안 가신댔어. 자기 아니면 돈은 누가 벌어오냐고.”

“돈이 문제야 지금?”

“나도 그렇게 말했어. 가만히 지켜만 본 게 아니라고. 그래도..”

“아빠의 삶은 아빠가 선택하는 거라고?”

“...”

“미친.. 새끼.”

“아빠도 다 생각이 있을 거라..”

뚝.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다. 개소리다. 핑계뿐인 헛소리다. 현실성 전혀 없는, 이상뿐인 잡소리다.

민준은 전화를 끊고 상황실로 돌아갔다. 

“저. 휴가 좀 써도 되겠습니까. 오늘 바로 나가야 될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민준은 끝내 아버지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이라도 좋았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라도 좋았다. 살아계실 때 손 한번 잡아보고 눈물 한번 쏟아보는 것. 그렇게 아빠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민준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끝난 상태였다. 그가 아빠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를 기다려야 했고, 하루를 기다린다 해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삼촌들에게도 동생 놈에게도 아빠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모두가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고 여차하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 속에서 군대 휴가는 아무런 혜택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때 오히려 혜택을 제공한 것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아빠를 지켜보며 인사하고 눈물을 쏟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빠의 별세였다. 아빠는 누가 먼저 들어가고 누가 누구랑 들어가고 몇 분이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민준의 중환자실 첫 면회가 오기 전에 그의 아빠 용수는..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어휴, 독한 놈. 그 상황에서 그게 할 짓이냐고.”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였다.

“뭐가요?”

“네 동생 말이다.” 삼촌이 막으려는 걸 뿌리치고 할머니가 말했다. “정신이 나간 거지 그건. 어? 어떤 짓을 해서라도 아빠를 살리려고 해야 할 판에, 뭐 퇴원? 말이 되는 소리가 그게?”

“퇴원이요? 무슨 소리예요?”

“지훈이가 그랬다. 의사한테 아빠 퇴원시켜 달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 병원에 있어도 겨우 살까 말까 한 상황에서.”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좋은 핑곗거리야. 

동생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책을 좋아하고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싶어 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아빠는 두 아들놈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러한 탓에 동생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 중,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국어 시간에 국어책에 실려있는 지문들을 감상하고 독후감을 쓰는 일뿐이었다.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이제 가능해진 것이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니. 본인도 아빠의 의견을 존중해 줬으니 본인의 의견도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 되는 것이라 여기는 거다.

 동생은 이제 아무 반대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됐다. 본인 삶을 본인이 선택하고 싶어서 아빠한테까지 그 논리를  쑤셔 박은 결과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상이 아닌 아빠의 삶을 아빠의 손에 맡긴 결과다. 설마 아빠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선택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지? 

아빠를 죽인 건 동생이다. 민준은 말없이 자리를 떴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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