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dd Oct 18. 2023

생존의 비용

생존전략 ep.5

*현재


“그럼 내가 거기서 뭘 어떻게 할까. 아빠 멱살이라도 잡아끌고 병원에 데려갈까? 그렇게 하면 아빠가 행복해져? 그렇게 하면 엄마 아빠가 갑자기 화해라도 해?” 지훈은 잠시 뜸 들이다 말을 이었다.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지. 아빠는 퇴원 후에도 하루도 안 빼먹고 술을 입에 댔거든? 근데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술이 아빠를 죽이고 있는 건지, 살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허접한 핑계는 됐고. 그때 네가 말렸으면, 병원에 억지로라도 끌고 갔으면 아빠는 지금도 살아계실지도 모르지. 행복이야 뭐, 언제나 그럴 수는 없는 거고. 그렇잖아. 어떤 선택이든 결국 어느 정도 행복하고 어느 정도 불행할 뿐인데, 그럴 거면 아빠를 병원에 데려가는 쪽이 당연히 옳은 선택이지.”

“그게 아빠를 위한 생각은 맞고?”

“뭐?”

“그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데. 아빠가 얼마나 지옥 속에서 살았는지 몰라? 평생을 일만 하셨어. 우리 먹여 살리느라 평생을 일만 하면서 살았다고. 근데 그 결과가 어때. 엄마는 따박따박 벌어오는 돈으로 자기 배나 불리지, 상황이 틀어졌는데도 바로잡을 방법은 없지,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지. 결국에는 스스로도 가망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최악까지 왔어. 그다음은 뭐가 있을까? 몇 달 며칠을 병실에 박혀 살아야 돼. 중환자실 환경 봤어? 거기는 사람일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며칠만 있어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곳에서, 온몸에는 굵다란 주삿바늘이 몇 개나 꽂혀있지, 움직이지도 못하지. 정상적인 사람도 거기에 눕혀서 못 움직 이게 하면 정신이 나갈 판이야. 근데 아빠가 정상이었어? 거기가 얼마나 더 고통스럽겠냐고. 그게 진짜 사는 거야? 그냥 숨만 붙어있으면 돼? 도대체 누굴 위해서? 아빠 의견은 싹 다 무시하고 입원시키는 게 맞는 거야? 제발 감정 같은 건 집어치우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그게 진짜 아빠를 위한 일인지, 아니면 본인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인지.”

 “너한테는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었다는 거네. 그래 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너만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잖아, 그지? 아빠나 너나 참.. 책임감 없다.”




*용수의 삶


용수의 꿈은 배우였다. 살면서 연기를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그랬다. tv 드라마 주인공들의 삶은 매혹 그 자체였으니까. 집안 형편은 궁핍하지는 않은 정도였다. 위로는 형이 둘 있었고 둘은 모두 자기 앞가림을 잘했다. 거기서 용수 하나 빠진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사실문제가 된다 해도 용수는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있었고, 일이 잘 풀린다면 주변의 어떤 친구들보다도, 두 명의 형보다도 효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용수는 군대를 전역하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서울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시작부터 순조로운 게, 느낌이 좋았다. 통장에는 꼬박꼬박 돈이 쌓여가고 서울로 떠날 날짜는 가까워져 갔다. 그동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자친구도 만들었다. 이름은 한여름. 부모님께서 이름을 참 잘 지으셨다. 정말 한여름처럼 뜨거운 여자였다. 용수는 여름 씨에게 진심이었고 여름 씨도 용수에게 진심이었다. 하지만 용수에게는 배우가 더 진심이었다.


둘의 만남은 길어봐야 반년을 넘을 수 없었다. 그전에 용수는 이별을 고하고 서울로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용수가 지켜야 할 건 애인과의 사랑뿐만이 아니니까. 

그래서 만나는 동안에라도 진심을 다 쏟았다. 매 순간 진심이었다. 진심, 진심, 진심. 

진심에는 힘이 있었다. 

용수가 서울로 떠나기 한 달 전, 용수는 어려워도 말을 전해야 한다,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그래도 그동안 정말 진심이었다고. 용수는 여름 씨와의 연애를 그만 끝낼 생각이었다. 근데 이 생각은 여름 씨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나.. 임신.. 했어.”

“...”

둘은 연애를 끝내고 가족이 되었다. 진심에는 힘이 있었다.

용수는 할 말을 잃었고 여름 씨는 그런 용수에게 실망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로 눈물을 쏟았다. 눈물의 힘은 진심의 힘만큼이나 강력했다. 

“아.. 아니, 여름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어? 울지 말고. “

“아니. 표정이 아니야.”

“여름아. 내 진짜 진심이다. 사랑한다고.” 

용수는 여름 씨를 꼭 껴안았다. 그 순간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숨을 푹푹 내쉬고 괜히 깡통을 걷어차고 후회를 반복하고 갈등을 느끼긴 했지만. 

이제는 선택지가 하나뿐이다. 생명은 소중하다 배웠고, 말은 이미 입 밖을 떠났고, 무엇보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다. 배우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모든 것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꿈에 한해서 용수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아주 그럴싸한 핑계가 만들어졌다. 배우의 꿈은 긁지 않은 복권이 된 것이다.

양가의 부모님은 난리 쳤지만 결국 상황을 받아들였다. 상황이 나쁜 건 나쁜 거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경제적 지원은 일절 없을 거라는 단언이 있었고, 양가의 부모님은 그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둘의 결혼생활은 늘 빠듯했다. 공장의 월급은 둘의 생활비를 딱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더 이상의 저축은 불가능했다. 둘이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얼른 여름 씨의 뱃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생명이 세상에 발을 디뎌, 그녀의 걸음을 한층 가볍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럼 맞벌이가 가능할 것이고 상황은 조금 나아질 터였다. 

1994년. 민준이 여름 씨의 뱃속을 탈출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두 달간은 엄마의 손에 길러졌고 그다음부터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는 자라면서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를 더 많이 봤고 할머니를 더 많이 불렀다. 용수와 여름은 살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 둘은 다시 아이를 가졌다. 계획한 임신은 아니었고 이번에도 하늘의 뜻이었다. 그래도 민준을 가졌을 때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맞벌이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돈을 모아 놓았기 때문이다. 

1996년. 지훈이 태어났다. 지훈도 민준과 마찬가지로 엄마 곁에서 두 달간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이제는 다시 금전적인 여유를 찾을 시기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용수는 속으로 안심했다. 결혼 후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금전적인 문제뿐이었다. 

그렇게 1997년. 세상은 용수의 계획과 반대로 흘러갔다. 짬 내어 들여다보는 tv 속에서는 국가 부도니, IMF 구제금융 신청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나라가 돈이 없단다. 나라가 돈이 없는데 뭐? 

용수에게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경제 호황기도 별다를 거 없었는데 불황기라고 뭐 영향이 있을까.

그래. 있다. 영향은 있을 뿐만 아니라 굉장했다. 용수는 공장에서 월급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내 공장 일을 그만둬야 했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야 했다. 그러나 진정한 시련은 그것마저도 할 수 없게 했다. 진정한 시련이란, 노력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삶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더, 더. 


시련. 그것은 거세게 휘몰아치는 태풍보다는, 잔잔하게 공기 중에 섞인 불순물 같은 것이었다. 훅- 하고 불어오기보다는 은근히 공기 중에 떠돌며, 숨을 들이켤 때마다 속 깊숙이 밀고 들어와 내부부터 천천히 갉아먹는, 싸울 의지부터 갉아먹는. 

용수의 시련도 그러했다. 시련에 잠식되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간 용수에게 보이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숨을 들이켜지 않는 것. 그러면 눈앞에 펼쳐진 이 지옥 같은 시련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리라. 

다른 하나는 세상을 달리 보는 것. 그러면 아무리 독한 시련이 주변을 머문다 해도 모른 척할 수 있으리라. 

용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방법이었다. 

동네 마트에 파는 초록색 병. 그것은 용수의 눈앞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였다.


삶이 진정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용수의 선택은 단기적으로나마, 퍽 옳은 선택이었다. 술은 지옥 같은 현실을 잊게 해 줬고 술 없이는 잠을 잘 수도, 하루를 버틸 수도 없었으니까. 

용수는 매일같이 방안에 콕 박혀 소주병이나 쪽쪽 빨다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얼른 소주병부터 찾았다. 안주는 필요 없다. 여태 쌓아온 경험상, 원망보다 술이 잘 드는 안주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 

원망은 원한다면 언제든 함께해 주는 편리한 친구로 기능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서울로 떠났어야 했다. 어차피 망할 거라면 뭐라도 시도해 봤어야 했다. 아니 그때 서울로 떠났다면 지금처럼 불행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긁지 않은 복권은 분명 1등이었을 거다. 

화살은 가족에게 향했다. 그때 서울로 떠났다면. 그때 여름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꿈은 배우였다.” 고통스러운 삶에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용수는 걸쭉하게 술에 취해 말했다. 이때 술이 준 것은 ‘실수’가 아닌 ‘용기’였다. 그동안 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용기. 술은 참 다양한 것을 제공해 줬다.

여름 씨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받쳤다. “그래서?”

“서울로 갔어야 했어. 그때.”

“내가 가지 말랬니? 그게 나 때문이야? 내가 민준이를 가진 게 나 때문이야?”

용수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소주병에 입술을 박고 벌컥벌컥.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별거 아니었다. 용수는 이제 술만 마시면 술의 용기를 빌려 말을 내뱉었다. 삶의 고통을 버텨내기에 그만한 약은 없었다. 모든 것은 여름이 때문이다. 지독한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타깝게도 주변을 갉아먹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는’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그랬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다. 끝내 용수는 살아남았다. 생존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알코올과 작별한 날도 멀어져 갔다. 

마찬가지로, 여름 씨와 작별한 날도 멀어져 갔다.

이제 용수의 가족 구성원은 셋이다. 용수, 민준, 지훈. 시린 고통의 시간은 회사뿐만 아니라 용수의 가정에도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여름 씨는 시련의 날이 길어지고, 용수가 알코올과 바람을 피운 지 세 달 조금 더 됐을 때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밤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조용히. 용수가 술에 찌들어 뒤척이던 침대 옆에서 조용히. 

세상은 보통, 사람들의 죽음에 납득이 갈만한 이유 하나쯤은 붙여 준다. 천재지변이든, 전쟁이든, 질병이든, 교통사고든, 뭐든.

그러나 여름 씨에게는 없었다. 세상은 여름 씨를 조금의 성의도 없이 그냥 내쫓았다.


여름 씨가 떠난 그날. 용수는 바싹 타들어 가는 목에 알코올을 채워 넣기 위해 잠에서 깼다. 웬일로 아내가 여전히 누워있다. 발로 툭 건드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체라도 되는 양 축 처져 있었다. 용수는 몇 번을 건드려도 일어나지 않자, 자리에 앉아 아내의 어깨를 짚었다. 처음에는 약하게, 갈수록 세게 여름 씨의 어깨를 흔들었다. 역시 여름 씨는 깨어나지 않았다. 흔드는 강도가 올라갈수록 불안감도 함께 커져갔고, 그렇게 용수는 여름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아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오열하고 세상을 원망해야 마땅할 텐데.. 막상 그렇지는 않았다. 용수는 의외로 덤덤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는 했지만 감정의 동요는 그리 크지 않았다.

용수는 무미건조한 한숨을 깊게 내뱉고 초록색 병을 집었다. 몇 초간 왼손에 쥐어져 발발 떨리는 소주병을 바라보다 다시 내려놓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태 잘 못해준 것에 대해, 생고생만 시키고 떠나게 한 것에 대해, 혼자 시련을 견뎌내게 한 것에 대해, 힘이 돼주지 못한 것에 대해, 남자로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떠넘긴 것에 대해,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 마음속 한편으로는 어떻게 할지 앞날의 계획을 짜고 있는 것에 대해, 내뱉는 한숨의 절반은 안도감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언제 끝날지 모를 시린 겨울을 버텨내는데 입 하나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였다.

여태 이곳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진짜 바닥은 따로 있었다. 끝없이 추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하다 끝내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여름 씨로 인해 달궈진 뜨거운 바닥이 용수를 뛰어오르게 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늦게나마 두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어떻게든 발버둥 쳐서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 그것만이 용수가 여름 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본인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도 유일한 방법이었다. 부모님께 짊어지게 한 두 아들을 이제는 데려와야 했다. 

용수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탈탈 털어 과메기 장사를 시작했다. 나중에는 와플도 구웠다. 술도 끊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것.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한다는 것. 그것은 이미 시련이 지나갔다는 증거다. 시린 겨울밤은 그렇게  서서히 밀려날 것이다. 용수에게 있어 여름 씨는 뜨거운 태양이었다.


이전 04화 배려의 알맹이와 오해의 껍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