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dd Oct 18. 2023

충동과 핑계와 현실

생존전략 ep.6

*현재 


“할머니가 그러더라. 책임감 없는 아빠 때문에 엄마가 고생이라고. 며느리 덕분에 아빠가 사는 거라고. 아빠 때문에 며느리 앞에서 기가 안 산다고.”

“개소리. 할머니는 엄마를 싫어했어.”


지훈이 아는 한 아빠는 돈을 버는 쪽이었고 엄마는 돈을 쓰는 쪽이었다. 엄마가 고생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엄마는 간헐적으로 앓는 병이 있었다. 주기는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로, 그 병은 높은 확률로 명절에 찾아왔다. 엄마는 늘 명절에 몸이 좋지 않았다. 요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명절마다 느꼈으니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할머니는 엄마의 병을 싫어했다. 시간이 흘러서는 의심도 했고 더 시간이 흘러서는 그러려니 했다. 

“요물 같은 년.” 할머니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엄마 말고.”

“.. 뭐?”

“아빠가 그때 방에 박혀 술만 안 마셨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무슨 헛소리야.”

“내 어린 기억에 엄마는 키가 작고 눈이 처져 있었거든? 말투는 상냥하고 눈물이 많아서 거의 뭐, 볼 때마다 울 정도로 여린 사람이었고, 할머니한테 우리 맡긴 게 죄송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근데 네가 보기엔 지금 엄마는 그런 사람이냐?”


지훈은 과거에 엄마의 일기장을 본 기억이 있다. 열 권의 얇은 공책이 박스 끈으로 묶여있는 낡은 일기장.

두 분이 떠나고 2주 정도 흘렀을 때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시간을 어찌어찌 보내고 현실에 다시 적응해 갈 때쯤. 아빠의 추억을 끓어 모아야 했다. 아빠가 입던 옷, 들고 다니던 가방, 신던 신발, 시계, 휴대폰, 반지, 면도기까지. 아빠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빠의 기억이고 아빠의 영혼이었다. 소중히 모셔두고 아껴두고 힘들 때면 꺼내 보며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눠야 했다. 아빠의 영혼은 과묵한 편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면서 눈물이라도 쥐어짜야 그나마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빠가 남기고 간 영상이나 녹음 파일은 없었다. 편지도 없었다. 하나라도 남기고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왜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혹시 모르잖아. 아빠가 남기고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지훈은 온 집안을 다 뒤졌다. 아빠가 남기고 간 편지 한 장을 찾기 위해, 침대를 들추고 침대 시트를 벗기고 온 서랍을 열어젖히고 소파를 들춰냈다.

편지가 있을 법한 곳은 물론이고, 설마 거기에 뒀을까 싶은 곳까지 죄다 뒤집어엎었다.

턱.

큰 방의 옷장 뒤로 무언가 떨어졌다.  소리는 편지라고 하기엔 묵직했다. 사진첩일까. 아니면 아빠의 일기?

그의 예상, 어쩌면 기대는 모두 빗나갔다. 그것은 엄마의 일기였다. 얇은 공책 열 권 정도가 붉은색 박스 끈으로 묶여있는 낡은 일기장.

일기에 앞뒤는 없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휘갈겨 쓴, 의식의 흐름대로 써재낀 글이었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고 이게 일기인지 소설인지 그냥 욕지거리를 적어 놓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지훈이 원한 건 이런 쓰레기가 아니다. 아빠의 영혼이 담긴 편지 한 장, 또는 아빠의 삶이 담긴 무언가였다.

일기장에 쓰인 이름만 엄마의 것이었지, 그게 엄마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확실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시간과 사건이 일치하지 않았다. 엄마의 일기장에 따르면 지훈이 태어날 때까지도 엄마는 서울에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훈은 일기장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

“우리가 할머니 손에서 벗어났을 때 엄마는 없었어. 아빠가 그랬잖아. 엄마는 잠시 해외여행 갔다고. 밥 세 끼 겨우 챙겨 먹는 판에 해외여행은 무슨.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도 않은 핑계잖아. 난 그때 엄마를 원망했거든. 그렇게 우리랑 같이 살고 싶다 할 때는 언제고, 우리를 두고 해외여행을 가? 아는 척도 안 하려 했어. 아빠가 엄마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나와보라고 소리쳤을 때 나가서 인사도 안 하려 했어. 아니면 울고불고 엄마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려 했다고. 근데 뭐지? 보니까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네? 해외여행 갔다 오더니 풍기는 어색함 하며, 날카로운 눈매 하며, 인상이 이렇게 더러웠나?” 

민준은 지훈의 눈을 바라봤다.

“엄마가..” 지훈의 머릿속에 열 권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욕설이 절반인 낡은 일기장. 시간과 사건이 일치하지 않던 그 일기장.

“친엄마 아니라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십몇 년간 엄마라고 불렀고, 욕먹어 가면서도 따랐다고. 아 엄마는 떠났구나, 아빠가 못되게 굴어서 떠났구나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한 마디도 안 내고 참았다. 근데 결과가 이렇네? 새엄마는 아빠 몰래 뭘 숨기고 아빠는 제 몸 하나 못 챙기고 아프더니 결국은 돌아가시고. 동생 놈은 아빠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더니, 새엄마가 돈 들고 튀었는데 그걸 합리화까지 해버리네. 와. 내가 뭘 더 어떻게 좋게 생각해 볼까. 힘든 걸 견딘 건 난데 잘 먹고 잘 사는 건 새엄마고 동생이네? 아, 인생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구나.”



*민준의 삶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서울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내린 그날, 그날의 결심이 오로지 아빠의 복수와 엄마의 행방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내 삶은 내내 우연의 연속이었고 내가 선택한 일에는 겉으로 보이는, 입 밖으로 내뱉는 이유 외에 크고 작은 수많은 이유가 내포되어 있었다. 미래의 내가 떠드는 말들은 죄다 결과론 적인 말뿐이고 합리화 과정을 거친 소설일 뿐이었다. 그때의 난 감정의 노예일 뿐이었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는 죄다 상황과 호르몬, 감정이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민준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삼촌도 있었지만 아빠가 없다. 

아빠가 없다는 것은 곧, 대학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공부할 틈도 없이, 써먹을 만한 기술도 지식도 없이 오로지 멀쩡한 몸뚱이 하나만으로 벌어먹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는 건 빈곤의 연속을 의미한다. 그렇다는 건 뭐 손써볼 것도 없이 삶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아니 열심히 일하고 지쳐 쓰러지고 겨우 삶을 지속하면서 바라보기 밖에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민준은 본인에게 처한 상황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그렇게 망가지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적어도 혼자 망가질 수는 없었다. 

길은 두 가지다. 엄마를 찾아 보험비와 연금을 어떻게 해서라도 받아내던지, 엄마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던지.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냥 문득 스치는 기억에 엄마의 고향이 서울이라는 것이 생각났을 뿐이다. 민준이 서울로 떠난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당시 민준에게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서울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돈은 있었다. 근 2년간의 군 생활 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적금 200만 원. 대대원들의 작은 도움으로 마련한 578만 원. 서울에 반지하의 작은방을 구하고 한 달간 살아남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시 행정관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민준의 경험상 그것은 20퍼센트가 진심이고 80퍼센트가 약간의 진심 덕에 한층 자연스러워진 연기였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나가서 먹고살 돈이.. 당장 먹고살 돈이 없습니다.” 

민준 또한 연기력으로 밀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대화에서 중요한 것이 말의 내용보다는 표정과 말투, 말의 속도 등, 비언어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는 것이라면 훌륭히 적용할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을 갖춘 남자였다.

“경제적 지원.. 그건 행정관 능력 밖의 일인데. 친척들은?”

“친척들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음.. 행정관님께 돈을 달라거나, 돈을 빌려달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행정관님의 영향력을 조금 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들어볼까?”

“제 이야기가 중대에, 혹은 더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민준은 본인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최대한 널리 본인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전우의 아픔에 공감하는 훌륭한 인성의 해병들에게로부터 약간의 모금을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오호라. 그건 행정관에게도 꽤나 이득이 될 만한 방법이었다. 병사의 앞날까지 걱정하는 행정관. 이미지 좋지 않은가.

비용은 a4용지와 잉크뿐. 그것 또한 사비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인맥이고 발품이고 하는 것들은 떠넘기면 될 일이니, 수지 타산이 아주 딱 떨어진다 할 수 있겠다.

“음.. 그래 그 정도면 행정관이 해줄 수 있겠어. 민준이 네가 고생한 게 있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지? 오늘 당장 진행하도록 해.”

행정관은 이 임무를 무리해서라도 잘 해내고자 했다. 프린트물이 퍼지는 반경이 본인의 영향력이 미치는 반경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곧, 행정관으로서의 자존심이자, 남자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민준이 만든 프린트물은 대대 전체에 퍼뜨려졌다. 이 아이디어로 민준의 통장에 찍힌 돈이 578만 원.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얼마나 허탈하고 기이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꼬박 일해가며 모은 돈이 고작 이 백. 프린트에 몇 자 끄적여 벌어들인 돈이 오백육십칠. 거의 세 배가 되는 돈이었다. 

돈과 땀의 양은 이토록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상관관계가 깊은 것은 사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쪽 보다, 사람을 홀리는 쪽이 더 좋은 전략이었다.


민준은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관자놀이를 검게 물들이기도 전에 서울로 떠났다. 월세 30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고시원 주방에 있는 밥과 반찬으로 끼니를 때웠다. 누런 쌀밥에 김치에  멸치조림. 가끔 장조림이나 스팸 구이,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있는 날에는 폭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반찬이 부실할 때면 민준은 고시원 주인아주머니와 당당히 싸워줄 용병을 구해야 했는데,

“반찬이 영 부실하네요.”

대개는 알아서 굴러들어 왔다.

“그렇다고 아주머니한테 대놓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건 용기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저희는.. 그냥 주는 대로 먹기나 해야죠.”

“..”

그들은 알아서 용병을 자처했다. 민준은 부탁도 강요도 하지 않았다. 민준이 한 일이라고는 자존심을 살짝 긁었을 뿐이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단순할 수 있나, 감탄하며 상황을 지켜본 것뿐이었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민준은 용병 한 명과 한 끼의 반찬을 맞바꿀 수 있었다.


“민준 학생. 학생도 반찬이 부실하다 생각해?”

“아니요.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요즘 밥값이 얼마나 비싼데..”

“어휴. 저기 저 어디야. 저기 큰방 쓰는 총각. 그 총각은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밥 사 먹을 돈이 없으면 작은방에서 살고 그 돈으로 밥을 사 먹을 것이지. 요즘 반찬값이 얼마나 비싼데. 어? 하여간 잘해주면 그게 아주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 버린 다니까.”

“정말 욕심이 끝도 없는 사람이네요. 아주머니께서 많이 힘드시겠어요.”

“으휴, 그래도 내가 이해해야지. 젊은이가 돈 없어서 고생하는데. 학생, 목살 좀 구워줘?”

민준의 공감은 아주머니의 머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내는 데에 성공했고, 그녀는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사명을 다시금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주머니를 움직이는 것 또한 공감과 인정이었던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러도 일의 진전은 없었다. 서울로 올라온 한 달 동안은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이었고 이 주는 계획을 짜는 시간이었으며, 나머지 이 주는 현실을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거의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복작대는 서울에서 한 사람을 찾는 일은 당연히 수월하지 않았다.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흥신소에 의뢰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흥신소 직원이 엄마를 찾기도 전에 경제적인 문제로 거리에 내 앉거나 포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민준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돈이 들어올 구멍도 필요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여유였다. 최대한 오래 서울에서 머물며 엄마의 소식을 수집해야 했고 그러는 동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도 해야 했고 클럽도 가야 했다. 거기다 클럽에 가기 위해서는 쇼핑도 해야 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돈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민준은 두 달간의 서울 생활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겸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아르바이트는 해본 적도 없고 해 볼 생각도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삶은 이상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고 가끔은.. 아니 거의 매번, ‘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민준은 아르바이트 경험은 없었지만 사장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경력자를 원했다. 거의 모두가 경력자를 원했다. 아르바이트 교육 시설이 생기지 않는 한, 더 이상 신규 경력자가 생길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경력자만 원했다. 아르바이트 시장은 사장을 홀리지 않는다면 땀을 흘릴 수도 없는 곳이었다.


“아르바이트 경력은 있으세요?”

“당구장에서 삼 개월, 카페에서 일 년이요. 빠릿빠릿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민준은 근처 족발집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경력자’라는 단어뿐이었고 민준이 한 거라고는 사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조금 들려준 것뿐이었다. 사장은 원하는 소리를 듣고 민준은 원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양쪽이 다 만족했으니, 이보다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족발집에서의 생활은 학교생활이나 군 생활과 별다를 게 없었다. 적당히 해야 할 일만 하고 나머지는 친목 도모에 힘쓰면 되는 것이었다. 사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 쉽게 웃어주고 이간질하고 합리화하고.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였고 족발을 썰거나 서빙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은 죄다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손해를 보는 인간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우직하게 열심히만 하는 인간들이었고 그들이 있는 한 민준의 밥그릇은 안전했다. 그들은 정직하고 우직하고 과묵하고 참을성이 강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민준이 느끼기에 그들은 참을성이라는 것이 언젠가 끝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멍청한 인간들이었고, 그런 놈들은 마음껏 부려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들은 계획도 대책도 없이 무작정 참을성을 소비하기만 했다. 그러니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을 뿐, 결국에는 터져버릴 시한폭탄이었다.

그 안 좋은 습관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에게 있어 감정적이고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며 버릇없는 잡놈으로 보일 뿐이다. 감정의 폭발은 강력했고, 이전의 이미지는 잔잔했으니, 이전의 이미지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잘잘못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필시 사건의 전말을 세세하게 파헤쳐 봐야 옳으나, 누구도 그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저 애 저렇게 안 봤는데..”

“난 저럴 줄 알았어. 눈빛 봐 눈빛.”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해야 돼?”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에게 민준은 잡놈에게 잘못 걸린 피해자였다. 살아남는 것은 항상 민준이었다.

“무슨 잘못이든 했겠지. 괜히 저러겠어?”

가끔, 아주 가끔 전말을 따지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야. 그래도 저건 아니지.”

“..”

‘그래도’라는 무논리의 마법에는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사자도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아니 민준 씨가 먼저 그러셨잖아요!”라고 소리쳐 봤자

“어.. 성환 씨 미안해요. 제가 미안해요. 진정하시고.. 어.. 정말 미안합니다.” 

민준의 상황 판단과 연기력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처세는 늘, 처세가 필요할 법한 사람에게만 발동했다. 처세가 필요 없는 인간에게 처세란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들이 겪어야 할 불합리한 일은 죄다 본인들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능력으로 생존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그저 ‘능력 부족’이었을 뿐이다. 


족발집의 월급은 딱 살만한 정도였다. 끼니는 이제 고시원뿐만 아니라 가게에서도 때울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민준이 걱정할 일이라고는 오로지 돈. 클럽에서 놀 돈, 술 마실 돈, 게임할 돈, 쇼핑할 돈이었다. 민준의 머릿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 찼다. 사고 싶은 것들은 많아지고 게임은 하고 싶고 술은 마셔야겠고 클럽도 가야 하지만 그것들을 자유롭게 할 돈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보험금을 들고 나른 엄마가 떠올랐다. 이제는 그럴 때만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를 찾기 위해 서울로 왔는지, 서울로 오기 위해 엄마를 찾았는지조차도 헷갈릴 정도로 그랬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는 목표를 버리고 당장 코앞의 자극 만을 걱정하게 되었고, 자극적인 생활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잊게 했다. 해답을 보는 시력을 잃게 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민준은 서른을 맞이했다.


서른이 된다고 해서 극적으로 바뀌는 무언가는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수년간 아르바이트로 먹고살던 민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닭갈비집 실장 정도였다. 

국가대표 계륵. 실장 박민준. 사장님은 쓸데없이 명함까지 제작해 줬다. 차라리 이 돈으로 월급을 더 줬으면. 

가게 이름이 국가대표인 이유는 사모님이 왕년에 탁구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올랐기 때문이란다. 올림픽에서 입상한  적은 없어도 헝그리 정신만큼은 여전하다고. 그래서 그런지 바쁘고 고된 일에 비해 월급은 코딱지 만했다.

하다못해 그 족발집에서 이직하지 않고 일했다면 사장이 한자리 차려줬을지도 모를 일인데. 후회해 봐야 늦은 일이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이미 답은 명확하기 때문에.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보험비를 들고 나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빠가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두 분이 싸우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엄마가 허튼짓만 않았어도.. 아니 아빠가 엄마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아니.. 아니... 아니....

부정은 번식력이 강했다.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것에서 열등감을 느꼈고 친구의 성공이나 결혼 소식을 들으면 그 감정은 더욱 심해졌다. 동생의 성공에서 그 감정은 당연히 더 폭발적이었다.


동생을 본 지가 벌써 7년이 다 됐다. 군 복무를 마치던 날,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삼촌도 마찬가지다. 가족들과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큰걸 바랐던 게 아니다. 고작 돈 천만 원. 대학 등록금에 원룸에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셈 치고 딱 천만 원. 아빠만 있었다면 당연히 누려 마땅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천만 원은 나 살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적’인 엄마를 찾기 위한 자금으로 쓰일 것이었다. 

“돈 없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할아버지는 말했다.

“엄마를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이고? 찾아서는 또 어떻게 할 거고? 네가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겠나? 그리고 엄마를 찾는 일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왜, 삼촌이 왜 돈을 보태야 되노. 많이 힘든 거 안다. 그러니까 더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헛짓거리 할 생각하지 말고.” 큰삼촌은 말했다.

헛짓거리.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었다. 알고 보니 적은 엄마가 아니라 본인이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가족 모두였다. 

그렇게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고. 민준은 그중 한 명을 봤다. 무심코 틀어 놓은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요즘 서점과 영화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람이죠. 박지훈 씨 모시겠습니다!


박지훈. 동생과 이름이 같았다. 중간이 갈라진 갈색 웨이브 펌에 선하게 처진 눈. 날카로운 콧날에 뽀얀 피부. 동생과 생김새도 같았다. 이름이 같으니 그냥 닮은 사람은 아닐 거고 생김새가 같으니 동명이인은 아닐 것이다. 근데 쟤가 왜 저기 있는 거지. 


박지훈. 작가. 출생 1996.07.05


휴대폰 작은 화면 속 초록 검색창도 동생의 이름을 알고 있다. 출생일도 알고 있다. 그런데 작가라고. 동생이 소설을 썼다고. 동생이 쓴 소설이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왜? 어떻게? 우리 인생은 망했는데? 손써볼 것도 없이 다 망가졌는데 어떻게?


-처음에 이런 소설을 써야겠다, 하는 계기가 있었을까요?

-음.. 계기는 딱히 없구요. 음.. 사실 인간도 지구에 있는 동물 중 ‘하나의 종’ 일뿐 이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행동도 모두 생존전략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우리가 선이고 악이라 부르는 것들은 죄다 문화가 만들어낸 건데, 그럼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그러니 본질적으로 생존전략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소설 속 내용 일부가 현실에 기반한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는 건.. 실제로도 어머니를 용서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그냥 엄마가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고.. 저도 제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죠. 원망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요. 그냥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면서 제가 뭘 해야 할지 생각할 뿐이죠. 상황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무슨 헛소리인지. 민준은 tv를 끄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털어 9,900원짜리 영화를 구매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영화. 동생의 머리에서 나온 소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리도 난리일까. 

...

...

민준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끝냈다. 동생의 눈에서 나온 이야기는 대단했다. 그래 대단하다. 동생은 대단한 놈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기까지 민준이 모르는 내용은 한 부분도 없었다.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생의 머리가 아니라 눈과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민준이 9,900원을 내고 결제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다큐였다. 온 국민이 돈을 내고 시청한 것은 소설이 아니라 동생의 머리에서 왜곡된 그날의 기억들이었다. 동생의 통장에 흘러 들어간 돈은, 가족의 치부를 들춰낸 것에 대한 보수였다. 

생존전략. 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온 허무맹랑한 소리. 생존전략. 그래 엄마가 아빠 몰래 돈을 빼돌리고 빚을 쌓아두고 보험비에 연금까지 들고 튄 건 생존전략이구나. 네가 가족의 치부를 까발리고 돈을 끌어모은 건 생존전략이구나.

동생은 정말 엄마를 용서하고 말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엄마와 다를 바 없는 놈이니까. 생존전략이라는 해석은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해석이다.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행동까지 이해해야 했을 뿐이다. 과거 아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좋은 해석이네. 그럼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넌 이해하겠지. 모두 생존전략일 뿐이니까. 좋고 나쁘고 하는 건 죄다 네 머리에서 만든 허상이니까. 그치?


일상적인 날들 중 하루. 그날의 경험과 경험으로 말미암아 떠오르는 생각. 또는 다짐. 그것들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날갯짓이다. 다음 날이 변하고 또 다음 날이 변하고. 변화가 반복되면서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삶은 변화한다. 각자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그날 이후 민준은 여전히 닭갈비 집에 출근했다. 여전히 닭을 손질하고 서빙을 하고 계산대 앞에 섰다. 달라진 것은 민준의 머리 속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머릿속에 떠도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는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 두 문장뿐이다. 아무리 본인 머리에 질문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다. 본인의 머리이기 때문에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의 머리도 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답은 대개 밖에서 찾아온다. 고민이 주는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찾을 수 있는 눈이었다.

“민준아. 너 그 영화 봤냐? 그.. 오직.. 뭐 어쩌고 하는 거. 요즘 난리던데.” 사장이 말했다.

“네 봤어요. 전 별로던데요.”

“야 난 진짜 깜짝 놀랐다. 그런 사람이 또 있구나 싶더라.”

“네?”

“아니 내가 딱 너만 할 때, 오렌지족 알지? 내가 오렌지족이었거든. 잘 나갔지. 그땐 진짜 돈 펑펑 쓰면서 재밌었지. 근데 그때 만난 여자가 약간 그랬단 말이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명품을 얼마나 밝히던지. 나중에는 빚이 있는데 그거 좀 갚아달라고 하는 거야. 근데 또 어떡해. 오렌지족 가오가 있지. 얼마 하지도 않는 거 갚으라고 돈 쥐여주니까 그대로 잠수 타더라.”

“그래서요? 어떻게 했어요?”

“어쩌긴 뭘 어째. 이미 일은 벌어졌고, 마음먹고 도망친 여자를 어떻게 잡아? 또 잡아서는 뭐라 할 거고. 그냥 당한 거지. 그래도 재밌었어 그때는.” 사장은 잠시 뜸 들였다. 입가에 감도는 희미한 미소가.. 그날을 상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구는 그냥 호구였다. “.. 혹시 모르지, 진짜 사정이 있었는지도. 그래도 만날 때는 진짜 없이는 못 살 것처럼 좋아 죽었거든 서로. 좋게 생각해야지 어쩌겠냐. 답이 없을 땐 그냥 좋게 생각해. 좋다고 생각하면 진짜 좋은 게 되는 거야.”

와.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사장님의 성함은 김재위였다. 모르긴 해도 아마 재능 재 자에, 위로할 위 자가 아닐까. 사장님은 자기 위로에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민준은 민첩할 민 자에 영특할 준 자다. 그는 민첩하고 영특한 두뇌를 갖추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7년 만에 겨우 제대로 작동하기는 했어도 말이다. 급격한 심리적 변화와 고민은 자극적인 생활 속에서 잃은 시력을 되돌려놨다.

이전 05화 생존의 비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