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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반드시 미아가 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올드타운에서

by 후안

바쿠의 올드타운은 바닷가 봉곳한 언덕을 두르고 있는 성벽의 길이가 1.8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다.

이게 대충 어느 정도의 크기냐고 물으신다면, 마을의 모습이 대충 원형이라고 상정하고, 둘레 1.8km를 2π로 나누어 마을의 반지름을 먼저 구한 다음, 다시 반지름의 제곱에 π의 곱을 계산하는 초등수학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기처럼 일반의 성인이라면 마땅히 잃어버린 능력에 속하는 일이며 굳이 덤벼들어 우울감을 겪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으므로, ‘점심 식사와 카페에서의 휴식, 기념품 구입까지 더해도 한나절이면 구석구석 모두 둘러보기에 충분한 크기’ 정도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자. (참고로 서울 한양도성의 길이는 그 열 배인 18.6km나 된다.)



12세기 쌓아 올려진 성벽 안에 갇힌 자그마한 공간. 이 방벽이 수백 년 동안 가로막고자 한 외적은 아마도 도래하는 근대의 여명이었거나 또는 시간 그 자체였을까. 오일 머니로 세련되게 리모델링한 시내 번화가와 공원들을 지나 이 폐곡선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마치 차원의 문이 열린 듯 고스란히 간직된 중세의 시간 속을 거닐게 된다.


아제르바이잔 건축의 진주라고 불리는 쉬르반샤 궁전, 서글픈 근친애의 전설을 전하는 메이든 타워, 지금은 식당으로 성업 중인 낙타 대상들의 숙소, 모스크, 목욕탕 유적 등이 모두 이 안에 있다.

덤으로 친절하고 맛있는 식당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골동품상, 카펫 상점, ‘맨발의 예술가’라는 별명을 가진 알리 샴시의 스튜디오, 그리고 걷는 길 구석구석 마주치게 되는 고질고질한 고양이들까지.



주요한 볼거리가 영역의 테두리를 따라 자리 잡고 있어서 성벽을 따라 크게 한 바퀴 순회하는 편안한 동선을 제공하지만, 아내와 나는 굳이 마을을 가로질러 수백 년 묵은 동네의 내밀한 안뜰에 제 발로 뛰어든다. 그리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고목의 뿌리처럼 어지럽게 펼쳐진 길 안에서 아찔한 어지러움을 만끽한다.


중세의 골목은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그어 댄 미로와 같아서 공감할 만한 규칙성도, 친절한 실마리도 없이 비뚤배뚤 그려져 이어진다. 당연히 마주쳐야 할 이 길과 저 길이 점점 멀어져 방향을 상실하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길이 막혀 뒤돌아서면서, 우리는 서서히 미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방의 풍경 속에 마음 편히 발 디딜 곳이 없어지고, 이내 시간마저도 뒤죽박죽 뒤집혀 이제 미아는 완전히 제자리를 잃어버린다.

이 곳을 헤매면서 나는, 고려인삼을 품속에 은밀히 숨기고 실크로드를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던 밀수꾼이기도 하고, 사막의 모래를 털어내며 땀을 훔치는 카라반에게 걸쭉한 아이란 한 잔을 담아내는 여관 주인의 복혼 아내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며, 대상의 지친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배설물을 쓸어 모아 하수구에 몰래 쏟아 넣는 마구간의 급사 꼬마이자, 이역의 소식을 주워 모으기 위해 쉬르반샤 궁에서 급하게 파견 나온 사관이고, 함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사막을 건너온 차를 홀짝이는 궁전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건너뛰어, 성벽 계단에 앉아 선이 많은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 되었다가, 시커먼 맨발로 방문객과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예술가도 되고, 이제 와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는 낡은 놋쇠 그릇에서 구경꾼의 손자국을 닦아내는 골동품상이 되고, 카페에 앉아 물담배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대며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네 청년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나를 부르는 아내의 낯선 모국어에 번쩍 정신이 들기도 하면서, 이 출구 없는 미로의 모퉁이를 또 돌고 돌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잠시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을 더듬어 나간다.


골목에서 길을 잃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여행자는 길에 속박되고 그래서 자유롭고 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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