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바쿠 올드타운 - <작은 책 박물관>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활자로 책을 만든다.
나는 문학의 종말을 이렇게 상상해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활자가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서
나중에는 아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버리는 것.”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中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밀란 쿤데라 선생님.
저 글을 남기신 1986년이면 머물고 계신 프랑스에도 당연히 컴퓨터 전산 사식을 이용한 옵셋 인쇄가 흥했을 테고, 활판 인쇄에 비해 조밀하고 정교한 인쇄가 가능해져 더욱 글자를 꽉꽉 채워 넣은 페이퍼백들도 쏟아졌을 테니, 품의 자식 같은 선생님의 글들이 갈수록 깨알같이 옹졸해지는 것이 못마땅하셨을 상황은 대충 이해가 갑니다만, 혹시 환갑을 몇 년 앞두고 갈수록 심해져가는 노안이 불편하셨기에 이런 유별난 생각에 이르신 것은 아닐까요.
외람되오나 3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그러한 일은 결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려하신 바와는 정반대로 활자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까지 함께 드릴 수 없음이 송구스럽습니다. 아마도 주요 독자층이란 것이, 글자와 그림을 이제 막 구별해내기 시작한 유아동이거나, 한가롭게 책을 펼칠 시간이 남아도는 극심한 노안의 노인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은 가능합니다. 이는 주요 고객이 아이와 노인인 치과의 안내문이 특히나 큰 글씨로 쓰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물론 이것은 비단 한국의 일만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또한 책을 만드는 자와 책을 꽂아 두는 자 사이에 이해가 아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선은, 활자를 크게 키우고 여백을 늘리는 것이 책의 두께를 살찌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그리 해야 얄팍한 원고 한 묶음도 상편, 하편으로 쪼개어 팔 수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이 곳에서는 영국판 페이퍼백 <해리포터> 시리즈 7권이 반양장본 23권으로 변신했고, 최근에 제가 구입한 베트남 소설 312, 332 페이지짜리 1, 2권의 원서는 384 페이지의 단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이러한 예를 수도 없이 들어드릴 수 있으나, 말씀 올리고저 하는 본론이 아닌지라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이에 상응해서, 책을 구입하는 측에서도 이러한 분권 출판 경향은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작품 하나를 완독하고 나서, 이번 달에는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상-중-하, 1-2-3으로 이어진 인쇄본이 서가에 나열되었을 때 미관상 그것만큼 보기 좋게 정리된 그림이 없기 때문이며, 이는 서재를 방문한 지인들이 책 빌리기를 꺼리게 만드는 좋은 장치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애당초 <레 미제라블>의 원서 페이퍼백이 1,232 페이지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분명히 그 책의 모양은 정육면체에 가까울 것이니, 서가에 어느 방향으로 꽂아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을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또다시 혁명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돌멩이 대신 말 그대로 투서(投書)를 하기 위한 용도를 고려한 것은 아닐까요?
걱정 마십시오. 다행히 한국에서는 다섯 권으로 잘 쪼개져있기에 서가에 꽂았을 때, 음험한 빅토르 위고의 얼굴이 5개나 줄줄이 붙어있는 아주 보기 좋은 컬렉션이 되어준답니다.
그러한 바, 저는 선생님께 문학이 소멸하는, 아니 아예 책 자체가 소멸하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활자가 아닌 책의 크기, 판본 자체가 계속해서 작아지고 작아지다 마침내 원자화하여 사라지는 미래입니다.
이는 오직 저만의 전유한 아이디어도 아니고, 그렇다 하여 멋대로 윤색해낸 것도 아니며, 제가 몇 해 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거기서도 올드타운 안에 있는 ‘작은 책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깨닫게 된 바입니다.
박물관 이름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된 아주 조그마한 책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얼마나 작은 책들인고 하면, 선생님께서 불평하신 작은 활자는 이제 현미경으로나 들여다보아야 판독이 가능한 수준이며, 사실상 점에 가까운 그 활자들로 원본의 전체를 빠짐없이 담고도 주먹 안에 몇 권씩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시겠습니까.
장서 목록도 우스운 것이 아니라, 이곳에는 문학, 종교, 악보, 자서전, 학습서, 만화 가릴 것 없이 방대한 양의 책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어 있어서, 머나먼 곳에서 날아온 저도 제 모국어로 쓰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책을 좁쌀책이라 하여 소중히 다뤄왔습니다. 책의 미래를 본 것이지요.
초극세 볼펜도 없던 시기에 이쑤시개 따위로 글자를 그려 넣기가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그러니 저희의 조상들은 이를 소매 속에 넣고 다니는 진귀한 책이라 하여 수진본(袖珍本)이라 불렀다던데, 분명히 배달이 까다롭거나 서재에 수납해두기에 위험한 음서(淫書)따위였을 것이라 짐작되는 바, 예나 지금이나 포르노그라피의 소장 및 배포는 부단한 노력과 주의를 요하는 일이 틀림이 없겠습니다. (물론, 향후에는 독립운동과 종교에 관한 서적들이 주요했음을 부언드리고 싶습니다만.)
오늘날 이 작은 책들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며, 이것이 책이 멸종하는 방법이라 단언할 수 있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우선은 치솟는 부동산 비용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서가에 진열하는 일은 보통의 과업이 아닙니다. 지금도 전 세계 도서관에서는 매일 야음을 틈타 수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는 서적들이 재활용장이나 소각장으로 실려가고 있습니다. 읽는 자보다 쓰는 자가 많아 남서광(濫書狂)들은 늘어만 가고, 갈수록 바빠지는 제지소와 인쇄소에서 쏟아지는 출판물의 양에 비해 서가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지요.
그러니 발길이 뜸한 공공도서관의 서가를 싹 쓸어내어, 캐비닛이 가득한 방 하나로 몰아넣고, 그 자리에 열람실 책걸상을 더 많이 놓아준다면 도서관에 득실대는 고시생, 수험생들에게도 얼마나 환영받는 일이 될 것이며, 앞으로 기존의 백분의 일 크기로 건설될 도서관들도 얼마나 많은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겠습니까.
시내 번화가 빌딩 지하에 갇혀 임대료를 착복당하는 대형 서점이나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는 동네 서점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이는 프랑스 파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니 특히나 공감하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결정적으로, 오직 책이 작아지는 것만이 다시금 이 세계에 독서열을 부활시킬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인들이 책을 멀리 하는 이유 가운데 주요한 하나는 바로, 책을 들고 다니기 귀찮아한다는 것일 테지요.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는 가방을 열고 닫아가며 책을 꺼내기도, 눈앞 적절한 거리에 책을 펼칠 공간을 확보하기에도 민폐가 되는 까닭이요, 자리에 앉아 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성들의 핸드백이란 것은 국배판 서적 한 권 들어갈 자리가 애초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 시도조차 힘든 것이고, 남성들의 서류가방이라는 것도 고작 접이식 우산 하나만 달랑 운반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비가 많은 시기에는 책이 젖을까 함께 넣기에 엄두조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로 책 읽기 시도해보지만, 부지런히 레벨을 쌓아가야 하는 MMORPG나 친절한 총천연색 그림이 곁들여진 웹툰의 유혹을 이길 수 없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제 책은 스스로 작아지기를 택할 것입니다.
집채만 한 스테레오가 벽돌 크기의 워크맨이 되고, 다시 주머니 속 아이팟으로, 또다시 아이팟 나노가 되어버렸듯, 이제 책도 끝없이 작아지는 것으로 살아남으려 드는 것입니다.
1㎡의 종이를 네 번 잘라낸 독일인의 A4 판형으로는 이미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A5, A6, A7, A8, A9, A10... An. N이 ∞에 수렴하는 방식으로만 이제 책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박물관에서 깨닫고 말았습니다.
주머니 속 짤랑거리는 동전 사이에서 뒤적뒤적 찾아내어, 또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두었다가, 가려운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다가 손톱에 걸려들어서, 재채기와 함께 콧속에 보관해두었던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세계문학전집 100선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독서를 하게 되는 세상이 이제 도래할 것인데, 우습게도 그것은 곧 책의 종말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선생님의 말씀을 제가 감히 고쳐 써볼까 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판본으로 책을 만든다. 나는 책의 종말을 이렇게 상상해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책이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서 나중에는 아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