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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May 25. 2021

진탕 술이나 마실걸

칼슘은 안 먹니, 밀크시슬 먹어야 한다, 종합 비타민은 도대체 왜 안 먹는 거니, 운동도 해야 한다. 건강을 염려하는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가 늘었을 때 나의 앞자리 수가 바뀌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먹으면 먹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지내던 나의 인생 패턴이 별거 아닌 서른이란 숫자와 훌륭한 잔소리꾼들 덕분에 꼬박꼬박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을 시작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 인공 파도와 같은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의 위험성보다는 누군가에게 배우는 일이 부담스러워 오후 7시마다 실내 자전거로 시작된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30분에서 50분, 1시간으로 늘려가며 6개월 뒤에는 식단 조절까지 병행하게 되었다.


식단 조절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을까.

닭 가슴살을 먹고부터 자기 전 유튜브로 각종 홈트 브이로그를 찾아보며 잠드는 것이 자극제가 되어 다음날이면 오전 6시에 일어나 공복에 유산소 운동 50분과 근육 운동 30분을 하고 단백질 음료 섭취. 저녁에는 50분 유산소 운동과 30분 근육 운동.

점점 과해지는 운동 열기에 가족들의 만류가 보이자 방문을 닫고 몰래 운동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30년간 최단거리에서 지켜본 언니가 말하길 너는 중도는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다.

맛밤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맛밤만 먹고,

오렌지 주스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오렌지 주스만 먹고,

쫀득이에 빠지면 턱이 삐뚤어질 때까지 쫀득이만 먹는 질리는 스타일이라고.

어쨌거나 무릎에 파스를 뿌려가며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쉬지 않고 했다.

하루는 B형 감염 예방 접종을 맞는 날이었다.


“선생님, 오늘 운동하면 안 되나요?”

“격한 운동은 하지 마시고 가벼운 운동은 괜찮습니다.”


단언컨대 내가 하는 운동이 격한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격한 운동이란 이종격투기나 미식축구, 레슬링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마음에 집에 가서 자전거 50분을 타고 버피 테스트 100개, 복근 운동 50세트, 플랭크를 하는 도중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이 정도면 격한 운동이구나. 홈트의 위험성을 그날 깨달았다. 이와 같이 운동을 하면 안 되는 날을 제외하곤 365일 중 360일을 운동했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방에 들어가 신나게 닌텐도 링피트를 1시간 하고 개운한 표정으로 거실로 나오자 부모님과 언니가 소파에 모여 앉아 가족 건강검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얼핏 들어서는 부모님 건강 검진할 때 나도 같이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이건 놓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분명했다. 당장 합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분명 종합 건강검진이지만 이미 나에겐 바디 프로필과 같은 기대감을 주고 있었다.


얼마나 좋게 나올까.

거의 운동선수처럼 나오겠지.

신체 나이가 과연 몇 살로 나올까.


수학여행 전날 밤 잠 못 이루는 중학생처럼 학수고대하던 건강검진 일이 다가오자 예약한 병원에 도착해 서늘한 실내 온도에 가운을 한 번 더 꽁꽁 둘러 묶어가며 기다란 벤치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검진 반 기다림 반. 치킨 먹고 싶다.

기초적인 시력, 청력검사부터 대장 내시경 기타 등 기대감은 내시경 검사 전에 날아가고 허기짐에 쓰러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며칠 후 종합적인 검진 결과가 나왔다.

초음파 검사 결과.

경미한 지방간입니다. 과음을 하는 경우 잘 발생하므로 운동하시고, 금주 및 체중 감량하시면 좋아질 수 있으며 특별한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정상 소견은 관심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일 아침 테라 한 캔씩 따고 저녁마다 피자 한 판씩 먹었지.

무릎에 파스 뿌려가며 하루에 3시간씩 운동을 왜 했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결과지에 집 앞 편의점까지 곧장 걸어가 1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사 왔다.


+

요즘은 저녁 운동 1시간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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