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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May 27. 2021

운수가 좋더니만

그날도 어김없이 최 대리님의 짜증스러운 미간으로 상쾌한 아침인사를 대신했다.

사무실이 너무 적막하다는 이유로 대표님의 지시하에 시작된 과연 누가 듣기나 하는지 모를 <사무실 음악 틀어 놓기 규칙>이 생긴 이후로 유튜브에 신나는 아이돌 음악을 검색해 애매한 사운드로 틀어놓은 채 오전 업무를 시작했다.


과연 회사 일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돌아가도 괜찮은 걸까.

이 회사는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나는 여기서 얼마간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그즈음 나는 쫓기듯이 상세페이지와 섬네일을 제작하고 뒤집고 파일을 공유하고 지우는 그런 ‘일’을 하며 의심의 눈을 키워가고 있었다.


오늘도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12시 50분이 되어서야 저-멀리서 김 실장님이 신경질적인 톤으로 '짜장면이나 시켜요’가  들려오겠지 하며 짐작하고 있었다.

몽쉘이나 먹고 있어야겠다.

그런데 회사 내에 신경질이라고는 절대 빠지지 않는 최 대리님이 12시 10분이 되자.

김 실장님에게 다가가, “실장님, 저희 밥 안 먹어요?” 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당시 회사에서 먹는 것 외에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심장이 기분 좋게 뛰기 시작했다.

“애들 데리고 나가서 먼저 먹어요.”

공기 반 소리반의 다 죽어가는 김 실장님의 목소리에 최 대리님은 나와 동기를 불러 같이 나가기를 권했다.


오늘은 중국집이 아닌가 보다. 더하다가는 몸에서 춘장이 자생할뻔했는데 기쁨이 꿈틀꿈틀했다.

그렇게 최 대리님의 리드 하에 찾아간 곳은 바로 서브웨이.

아, 너무 행복하다.

야채 듬뿍, 짭짜름한 소스에 마무리로 달달한 쿠키까지 먹을 수 있는 서브웨이라니.

아보카도를 추가해서 먹을 생각에 가는 내내 업된 텐션을 숨길 수가 없었다.


평범한 '안녕하세요'에도 '예, 안녕하시겠어요'로 돌려주는 대리님 화법에 꼭 필요한 업무상의 대화만 이어갔지만, 이날만큼은 너무 들뜬 나머지 ‘대리님은 서브웨이 가면 어떤 거 드세요?’하며 별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는 주책을 떨었다.


“오이, 피클은 빼주시고요, 할라피뇨 많이, 아보카도 추가해 주세요!”

부실한 탁상을 두고 앉아 성대를 톡 쏘는 탄산을 들이키며 요즘 사무실 분위기 거지 같지 않냐는 등 같이 회사 욕도 하며 맛나게 샌드위치를 해치우는데, 이 15분 동안 셋이서 이렇게  단합이 잘 되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너무나 평화로웠다.

직장 생활이 오늘만 같다면 거지 같은 상세페이지, 섬네일 매일 뒤엎고 다시 만들어도 할만하겠다 싶은 생각이 잠시 동안 머물렀다.


다시 들어온 사무실.


마치 그 공간만이 이상한 수맥이 흐르는 것처럼 공기가 무거웠다.

아니, 실제로 공기가 무거웠다.

공동 대표 두 명이 실내에서 줄담배를 주야장천 피고 있던 것이었다.


하.


할 말은 많지만, 실내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공동 ‘대표였던’ 그 두 사람의 그 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것까지만 말하겠다.

+

서브웨이 샌드위치 정도로 운수가 좋다고 해야 하나요.

그 이후로 직장 생활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줄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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