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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Jun 04. 2021

죽음을 연장할 수 있다면 또 넷플릭스처럼 흘려보내겠지

항공편 이벤트로 왓챠 10일 무료 이용권이 생겼다. 고정수입이 있던 시절에는 유튜브 프리미엄이며 넷플릭스, 왓챠, 멜론, 플로까지 정말 다양한 월정액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유튜브 프리미엄만 남겨둔 채 모든 월정액 서비스를 해지했다. 즉, 왓챠 10일 무료 이용권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럭키박스를 풀어 볼순 없다. 여유로운 대낮에도 아끼고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에도 아이쇼핑으로 마음을 달랬다. 너무 성급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마음의 준비부터 시작된 10일간의 질주.

오늘이다. 드디어 왓챠 무료 10일 이용권 QR 코드를 스캔.

약 1년 만에 들어간 왓챠는 별세계였다. 세상에 이런 걸 무료도 봐도 된다고? 현생이 가능할까? 이용 가능한 10일 중 하루를 [보고 싶어요] 곳간에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을 정신없이 채우는 것으로 흘려보냈다.


다음날 저녁.

시즌 행사 기간 디너타임에 샐러드바에 온 기분이다. '시작은 신선한 샐러드부터 먹는 게 좋겠는데, 아니지 속이 상할 수 있으니 위를 보호하기 위해 따뜻한 수프부터 먹어야 돼. 그러다 배라도 부르면? 먹고 싶은 거 먼저 먹는 게 장땡이야.'

[보고 싶어요]에서 패트와 매트를 봐야 할지 중경삼림을 봐야 할지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1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만 하다 결국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날 옛적에 에피소드 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보다 잠이 들었다. 


굉장히 후회스러운 아침이다.

귀한 둘째 날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흘려보내다니. 여행에서도 둘째 날이 가장 하이라이트인 것을. 추억 소환도 좋지만 명작 영화 혹은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를 보는 게 낫겠어. [보고 싶어요]에서 배추도사 무도사는 지워야겠다.

그날 저녁 [보고 싶어요]를 재정비했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어린이 명작 만화는 제외하고 영상미 카테고리에서 다시 볼만한 영화들을 훑어봤다. ‘빅 아이즈, 이건 봤지만 나중에 다시 볼 수도 있으니깐 일단 킵, 미드나잇 인 파리?  유명하니깐 일단 킵, 빌리 엘리엇, 포스터가 예뻤으니 일단 킵.’ 이것저것 카테고리를 둘러보고 정리하다 보니 벌써 새벽 2시. 결국 영화 한 편 보지 못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는 단 하루도 낭비할 수 없다. 정말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하루에 한편은 봐야 한다. '드라마 시리즈도 아쉽긴 한데. 섹스 앤 더 시티도 언제 다시 볼 수 있겠어? 일단 오늘 시즌 1의 1편이라도 시도해보자.'

이전과는 달리 목표를 가지고 이부자리에 든 첫날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원래 이렇게 재미없나? 앞으로 볼게 많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영 집중도 안 되고 빨리빨리 내용이 진행되었으면 하는데, 패션도 기대한 것만큼 화려하지도 않아 하품만 나왔다. 간신히 1편을 다 보고, 2편을 이어서 볼까 말까 고민하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얼른 패트와 매트로 갈아탔다. ‘이건 좀 재밌네. 바보 같고. 집을 망쳐라 아주. 그래도 자가라 다행이지.’




결론적으로 10일 동안 전 시즌을 완벽하게 본 영상은 패트와 매트뿐이다. 내 취향이 이럴 줄 알았으면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도 끝까지 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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