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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신 케이 Mar 06. 2024

물건을 못 버려요

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94 - 물건을 못 버려요


Yashica T4 Safari, Fuji C200 / Miyakejima, Tokyo, Japan - Sep


나는 물건을 한번 사면 굉장히 오래 사용하고 또 가지고 있는 편이다. 

어느 날 ‘엇 그러고 보니 이걸 벌써 8년이나 쓰고 있네’하고 깨닫는 식인데, 양말(? 전부는 아니지만 오래된 게 있긴 있다.)부터 시작해서 신발, 가방, 옷 등 꽤나 많다. 책은 뭐 당연히 안 버리고~ 아! 음- 처음 사귄 여자친구의 증명사진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남의 얼굴 사진이라.. 아무래도 버리기가 좀 찝찝하다. 파쇄할 수도 없고 하다 보니 그냥 뭐냥.. 가지고 있게 되었다.

여하튼 간! 도저히 못쓰겠는 정도만 아니면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봤더니 물건 하나하나에 다~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그렇더라. 이를테면, 대학생 때 샀던 민트색 후드티가 있다. 매년 겨울옷 박스에서 꺼낼 때마다 ‘참나 어릴 때는 이런 색의 옷을 잘도 입고 돌아다녔었네…’하고 즐거운 웃음이 나오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지금 2024년이니까 14년째 가지고 있다. 와우. 지금은 집에서만 입는데 가끔 화상회의할 때 입고 있으면 색깔 이쁘다고 칭찬받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여행에서 얻은 물건은 그 여행의 향기마저 남아있어서 더더욱 버리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나의 모든 여행을 함께 했던 노스페이스 테라 백팩과 B 마크가 새겨진 캡모자. 완전 만화 원피스의 동료 같은 느낌이라 언제까지고 함께한다. 

하지만 역시 9-14년의 긴 세월만큼 위기가 있었던 적도 있다.

.

"고마웠어요미군 형"

경기도 평택의 송탄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군 생활을 했었다. 나름대로 간부 신분이어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그래서 퇴근하면 동료들과 부대 앞의 국제거리에서 맥주도 많이 마셨다. 이따금씩은 미국 사람들과도 어울리기도 했는데, 이날도 자주 가던 펍에서 어떤 미군 아저씨를 만났다. 모두들 어느 정도 취해있었던 터라 금방 친해졌다. 서로 군인 신분임을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훨씬 더 친해져서 완전 브로~형제가 되어버렸다. ‘한국과 미국의 역사와 관계 / 6.25 전쟁의 동맹 /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같이 싸울 운명 등등 위대한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가 아무튼 완전 우린 혈맹!이었다. 이때 이 아저씨가 제안을 하나 했다. 오! 뭐지? 두근두근-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우리 오늘을 기념해서 서로의 모자를 교환하지 않을래?”

그 얘기를 듣고 5초 정도 멍- 그때 솔직한 나의 심정은- 내 마음속의 어딘가의 어딘가에서 ‘응? 6년을 여행을 함께한 나의 이 모자를?’하고 아깝다고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대하고 멋진 대화의 끝에 '우리는 하나다! 혈맹!'의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후배들이 보고 있던 상황에서 ‘아.. 이 모자는 쫌... 곤란한데요…;;’라고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모자를 교환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우울했다. 마치 이유도 모르고 환승 이별 당한 거랑 똑같은 느낌이었다. (농담)

“술 마시지 말아야 돼 정말.. 휴..”

그런데 일주일 뒤! 그 펍에 다시 갔더니, 점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내 모자를 돌려주었다. 그 미군 아저씨가 다음 날 다시 와서는 그날 내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돌려줘야겠다고 했단다.

"야호!! 하하하."

사실 그 순간 너무 날아갈 듯이 기뻤다. (이런 거 보면 사람 마음이란 어지간히 단순한 것 같다.)

그때 받은 그 미군 아저씨의 모자는 나도 언젠간 돌려줄 생각으로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이 녀석이랑도 벌써 6년이 넘었다. 하하. 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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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재밌는 이야기 하나 더 해도 될까요. 다른 오래된 물건으로 7년 된 부츠가 있다.

“우리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은 서로 하지 말자~”라고 하는 연인이 있었던가 하면,

“우리 벌써 한 달이나 되었네! 크리스마스 선물 어떤 거 받고 싶어~?”라고 하는 정반대의 연인도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또 이런 식으로 세상이 균형 있게 돌아가는 거구나 싶었다. (동시에는 아니었으니까 오해 없으시길! 뭐 별로 관심은 없으시겠지만.. 하하.) 

여하튼. 어느 크리스마스 때 받은 그 부츠를 볼 때마다, 이 생각이 떠올라 재밌어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 튼튼하기도 하고. 


@ 근데 나중에 할아버지 됐을 때, 여기저기 모든 물건에 추억거리가 많으면 하나도 안 심심할 것 같지 않나요? 여러 가지 이유로 물건을 잘 못 버리겠습니다~ 차암~ =)



어쩌다가 남의 집 서재나 창고 같은 곳을 보게 되면 물건들이나 분위기에서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류의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울 메이트까지는 아니어도 소울 친구정도? 아무튼 희한한 느낌이다. 일상에서 미소를 지어주는 존재를 발견했을 땐 사진으로도 한 장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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