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린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며 잠깐만 사무실에 들르라 한다. 별일 아니니 잠깐이면 된단다. 내가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찜찜하다. 뭐 그래도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말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꺼다. 그러면 된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앉아야 의자가 있었다. 의자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 뒤에는 어두운 벽이다. 나는 더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옷은 입었지만 머리부터 발까지 모두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거기에 앉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그는 책상 뒤로 돌아가 앉는다. 모니터 뒤로 몸을 숨긴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름, 주민번호, 주소 따위를 묻는다. 이런 걸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하면서 내 위치를 바로 알게 되었다. 피조사자다. 잘못이 있건 없건, 참고인이건 피의자건 피조사자다. 조사자는 질문할때만 힐끗 눈동자를 보여준다. 답변을 강요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는 전혀 없다. 여전히 친절하다. 나는 답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심지어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그치지도 않는다. 법전에 나오는 임의적인 방법이다. 조사는 언뜻 자유롭고 평등해 보인다.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자 나는 바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울어진 대화다. 자유롭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나는 임의적인 방법으로 답변할 수 있지만, 조사하는 사람도 임의적으로 질문할 권한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에겐 질문을 선택하거나 조사자에게 질문할 권리가 없었다. 질문한다해도 그것을 조서에 써주지 않는다. 질문이 있으면 나는 답을 생각한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답을 하면 곧이어 키보드 소리가 적막을 가른다. 답을 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을 건가요'를 묻고 곧이어 키보드 소리가 난다. 아마 답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질문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점 위축된다.
'질문 - 적막 - 답변 - 키보드'가 반복된다. 오감이 집중된다. 어느순간 대화에도 감정이 실린다. 타이핑의 강도와 속도에 조사자의 의도와 감정이 묻어난다. 내가 말한 것이 어떻게 글자로 찍히고 있을 지 알 수 없다. 다 되었다며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프리터에서 조서가 출력된다. 조서를 꼼꼼히 읽는다. 내 답이 어떻게 쓰여질 지 불안하다. 다른 사람에게 불리하게 쓰여지지는 않을지, 혹시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얼른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 여러군데 서명을 했다. 조서를 받아들더니 조사자는 다시 밝은 표정이 된다. 고생하셨다며 친절하게 사무실 밖으로 안내해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멍하니 한 숨을 한 번 쉬었다. 키보드 소리가 생각났다.
키보드 소리가 그렇게 세심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키보드 소리만으로 사람의 감정이 읽혔던 적이 있었던가.
<조사실 분위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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