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태학-fiction)
민방위복을 입고 조금 일찍 당직실에 내려왔다. 목요일 당직이니 금요일은 당직휴무다. 흐믓하다. 3일 연휴구나. 티비 좀 보고, 인터넷 좀 하다가 순찰 돌면 끝이다. 당직근무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청장님이 퇴청하시면 마음이 편해진다.
여러 청과 지청에 근무해봤지만 당직실은 언제와도 왠지 눅눅하고 후줄근하다. 여느 당직실처럼 책상, 컴퓨터, 전화기, 에어컨, 티비가 있다. 참 CCTV 모니터도 있다. 침대마저 있으면 좋겠지만, 당직실에 침대를 놓아줄 수는 없었을테고, 의자가 뒤로 많이 제껴진다. 뭐 이정도면 충분하다. 오늘은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민원전화와 모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청장님이 퇴청하셨다. 이제야말로 나의 근무시간이자 나만의 시간이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네이버에 자극적인 기사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똑똑똑’
문이 열리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 두 명이 들어온다. 모르는 얼굴인데 딱 봐도 공무원이다. ‘당직실’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져 있는데 들어올 사람은 몇 없다.
‘아! 공직기강 점검이구나’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어떤 일이신가요?”
“감사실에서 공직기강 점검 나왔습니다.”
점검반은 그렇게 말하더니 신분증과 공문을 보여준다.
“일단 조직도와 직원 연락처 출력부탁드립니다.”고 지시와 같은 부탁을 한다.
“잠시만요”하며 당직실을 나와 과장님께 카톡을 보낸다.
‘감사실에서 공직점검 나왔습니다.’ ‘ㅠㅠ’
청장님 퇴청하시고 찾아든 잠시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이 긴장으로 바뀌어버렸다. 공직점검 기간이긴하지만 하필 우리 지청이며, 하필 내가 당직인 날에 오다니 억세게 운도 없다. 전 직원에게 비상소집 점검 문자를 보내보라 한다. 그러고는 나를 앞장세우며 사무실마다 들르기 시작했다. 개인정보가 방치되어 있는지 책상을 둘러보고, 서랍도 당겨본다. 여기저기 적발되는 건이 쌓여간다. 적발 확인문서에는 당직인 내가 서명해야 한다. 이것 참 억센 당직이다. 점검반과 함께 둘러보는데 과장님이 오셨다. 점검반과 안면이 있으신 듯 반갑게 인사하시더니 한쪽으로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비상응소는 어찌어찌 전직원이 회신했다. 다행이다. 점검반과 한참을 돌다 10시쯤 당직실에 돌아왔다. ‘고생하셨다’는 덕담인지 아닌지 알기도 어려운 말을 하더니 점검반은 떠났다.
나 참 어이없다. 황금의 목요일 당직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다 쓸 수도, 빈손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제 확인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제 밤에 찾아왔던 사무관은 예전에 같은 청에 근무했던 친구다. 여전히 열심히 근무하고 있구나. 안면이 있으니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고 난처하다. 아침부터 우리를 안내한다며 미행하고 있다. 휴가명단, 출장명단, 재택근무자명단을 들고 사무실을 같이 돈다. 업무메신저 응소율도 보고, 착신전화도 확인해본다. 사무관은 초롱초롱 내 눈을 보며 연신 끄덕끄덕한다. 잘 써달라는 눈치다. 열심히 근무하고 있구나. 왜 모르겠는가. 나도 그랬었는데.
감사실 단톡방에 카톡이 떴다. 본부는 본부대로 국무조정실에서 감사가 내려왔다고 한다. 아마도 서류가방을 든 얼굴이 당당히 들어와 ‘공직기강 점검 나왔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명함을 주더니 공문을 보여주고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실 것이다. 안내인지 미행일지 모르는 우리 직원과 함께 사무실을 돌 것이다. 훤히 보인다.
다 쓸 수도, 빈손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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