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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https://blog.naver.com/pyowa/223797226041
마시는 중에 얼마큼 취했는지 알기 어렵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술은 깨고 나면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고, 그만큼 취했던 거 같다. 삶이야 끝나고 나면 그뿐, 기억할 내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건, 어떻게 살았건 죽으면 끝난다.
기억할 내가 없어도 남아 떠도는 기억이 있을까. 그럴 것도 같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똥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역광, 권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