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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ug 03. 2021

악당 릴레이

(공무원 생태학-fiction)

병철이가 세종시로 전입왔다. 오랜만에 동기들 몇몇이 점심을 먹었다. 벅차올라 같이 연수를 받은 때도 벌써 15년 전이다. 그때 같이 잘 붙어 다녔는데 벌써 50을 바라본다. 참 나. 세종에 근무하면서도 부처가 다르니 볼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누구가 전출가고 전입오면 그 핑계로 한 번씩 본다. 2층에서 산 아이스커피 한 잔씩 들고 옥상에 올라왔다. 옥상정원 꽃도 가득 피어있고, 길도 예쁘다. 언제봐도 멋지다. 높은 산에 천왕봉 같은 조망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청사를 빙두른 호수공원, 주상복합, 아파트 조망은 볼만하다. 건강, 아이들, 아파트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금새 시큰둥해졌다.



그러다, ‘나는 이런 분도 모셔봤다’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하드코어 받고 하드코어 베팅이다. 악당이 하나씩 탄생하고 악당을 견뎌낸 스스로를 자랑했다. 존재했던 악당에 흉터도 붙이고, 눈썹도 치켜올리고, 뿔도 달며 우리끼리 낄낄거렸다.



"뭐 그런 인간이 다 있냐"

"인제 그런 인간은 없잖어"

"또 몰라 어디 있을꺼야"



나도 예전에 모셨던 지청장님을 소환해서 뿔도 붙이고, 송곳니도 달고, 발톱도 붙이고 해서 그럴싸한 악당을 만들어냈다. 모두 재밌어하며 낄낄댔다. 퇴직하신 지청장님은 이러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 분도 우리처럼 무용담을 늘어놓으시며 공무원생활을 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벼라별 상사를 다 모셨다. 그때는 위축되어 말도 잘 못했다. 정말 무서운 분을 모실때면 불만스런 감정마저 사라진다. 그저 이 시절이 빨리 돌파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받을 수 없는 부메랑을 던지는 사람은 바보다. 가끔 그런 바보가 있지만, 나는 최소한 그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나는 부메랑이 될 수 없는 이야기만 한다. ‘라떼는 말이야’하면서. 살아 돌아온 나를 축복하면서 무용담을 전한다. 모두가 낄낄댈 수 있도록 알맞은 과장과 허구를 섞는다.



‘무용담’은 지나간 일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에 돌아갈 수 없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다. 아쉬움 보다는 돌파해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이 섞여 있다. 지금과 상관없는 추억의 일이 되기까지는 무용담이 될 수 없다. 언제든지 내 삶에 끼어들어올 수 있다면 무용담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용담은 ‘라떼’와 한 세트다. 무용담에는 그때의 용기만 있을 뿐 지금의 용기가 필요없다. 지금의 누구와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서 누구에게도 이롭거나 해롭지 않다. 그래서 무용담은 재밌다. 낄낄거릴 수 있다. 말년 병장이, 복학생이, 퇴역군인이 무용담을 하는 이유다. 국장님이, 본부장님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이유다.



'왜 당시에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왜 신고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하지 말라. 바보같은 질문이다. 혹시나 모를 위험은 피해야한다. 의사를 정확히 표시한다는 것은 쉬운일도 아니고, 굳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무용담은 지금의 나와 상관없을 때에야 비로소 낄낄거리며 아무일 아닌 듯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참 웃던 병철이가 나를 본다.

"길동아. 그 분 지금같으면 징계받았겠다. 근데 엄청 재밌다.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었냐."



뭔가 더 센이야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떤 분을 소환해서 어떤 무용담을 만들어낼까 머리속 파일을 넘겨 본다.





https://blog.naver.com/pyowa/22245518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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