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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떼의 공격

하늘은 나의 편, 엄마는 나의 편

by 레옹

2022년 9월의 첫날이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아침 공기는 하루 중 가장 상쾌한 시간이다. 그날의 행선지는 가평군이었고, 동생과는 물리적 거리도 멀었거니와 충남의 어느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해서 함께하지 못했던 날이었다. 가평으로 향하는 길, 경춘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자연경관은 서서히 가을빛을 띠고 있었고, 그 풍경은 드라이브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음악을 크게 틀고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8시 30분경 가평군 모 아파트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에 들러 일지를 작성하고, 현관 마스터키와 옥상 열쇠를 넘겨받아 작업 준비에 들어갔다. 그 시각 아파트는 어린이집 차량들과 출근 차량들로 북적였고, 나는 서둘러 장비와 자재들을 챙겼다.

그 아파트는 옥상이 양철기와로 덧씌워진 구조였는데, 이런 구조는 초가을 한낮 땡볕에 노출되면 금세 고기 불판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작업자들에게는 기피하고 싶은 환경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업을 일찍 시작할 수도 없다. 공동주택의 특성상, 관리소의 허가를 받아 입주민들이 출근하고 난 9시부터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옥상으로 로프를 올려 제자리를 잡아 아래로 내리고 체결을 마친 뒤, "오늘도 무사히"를 마음속에 다짐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보통 작업을 시작하면 점심을 따로 먹지 않는다. 로프 작업은 중간 흐름이 중요한 데다 매달려 있는 특성상, 식후 바로 작업에 들어가면 여러모로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그렇게 9시가 되자마자 매달려, 선선한 시간에 최대한 작업량을 줄이려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후 2시경, 두 줄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로프를 옆으로 이동시켜 새로이 체결하고, 양철기와지붕을 밟고 작업 위치로 복귀하는 순간, 허공에서 들려온 공포의 소리!

"윙~~~~"

일단 달렸다. 하지만 녀석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양 군단병력이 출동했다.




순식간에 뒷목을 비롯해 등, 어깨, 팔 등 여기저기 달라붙는 말벌과의 사투에 빠졌다. 분명 아침에 위험요소를 점검할 땐 어디에도 없던 말벌들이었다. 다행히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던 터라 머리에는 쏘이지 않았지만, 뒷목을 포함한 여러 부위를 쏘였고, 얼굴에는 금세 열감이 올라왔다. 나는 급히 건물을 내려와 관리소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119에 신고했다. 보통 말벌 퇴치는 의용소방대에서 처리하지만, 이날은 젊은 소방관들이 여럿 출동했다. 신고를 마친 나는 주변 병원을 찾아갔다. 뒷목의 부기와 얼굴의 열감을 느끼며,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어 약간 대기한 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쏘인 부위를 본 의사는 혀를 차며 말했다.

"뒷목은 중요 신경기관이 많이 지나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급소는 피한 것 같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주사랑 약 처방받아 가세요."

그날 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남양주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이 뒷목으로 갔다. 부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기도방에서 기도를 하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나오신다.

"열은 내렸니? 어제는 잘 때 보니까 열이 많이 나던데..."

"네~ 괜찮아요."

욕실에서 씻고 나와 아침 식탁에 앉아 뒷목을 만지며 어깨와 팔을 움직여 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엄마, 나 몸이 왜 이렇게 가볍지?"

"응?... 봉침 제대로 맞았나 보다 ㅎㅎ"

"뭐야? 독침이 아니라 봉침이었던 거야? ㅎㅎㅎ"

사실 그랬다. 늘 뭉쳐 있던 승모근 주위가 말랑말랑해졌고, 어깨가 너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인가?

그로부터 사흘 후, 9월 4일. 그날도 혼자 분당구에 위치한 오래된 15층짜리 아파트에서 로프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루틴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후면 주방 쪽 작업을 마치고, 정오 무렵이었다. 로프를 내리고 무사히 착지한 뒤 한 층을 더 내려서려던 순간, 발밑 창틀 한 귀퉁이에 시커먼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저게 뭐야?' 싶었다.


비상사태였다. 말벌집이었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시커먼 벌들이 벌집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14층에서 바닥까지 전속력으로 하강해도 대략 3초. 그 시간 동안 공격당한다면 속수무책이다. 공중에 매달려 벌떼의 습격을 받는다면 생존은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그 벌집은 15층이 아니라 14층 창틀에 있었다. 만약 발로 건드렸다면, 추락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안전벨트와 코브라(추락 방지 장치)가 있었지만, 공중에 매달린 채 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나는 벌집이 있는 15층 창 앞에 가만히 머물렀다. 벌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나는 코브라를 해체했다. 언제든지 최대 속도로 탈출할 수 있도록 말이다.

10분쯤 지났을까. 최대한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천천히 하강을 시작했다. 벌집 앞을 지나는 순간, 땀이 비처럼 흘렀다.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많은 벌들이 뭉쳐 꿈틀거리면서도, 단 한 마리도 나를 향해 날아오르지 않았다.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날 때까지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줄을 타고 내려왔다.

아래층에 무사히 도착한 후, 119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말벌집이 있는 후면(주방) 쪽은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개천 방향이라, 14층 세대의 협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14층은 부재중이었고, 결국 작업을 의뢰한 10층 세대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로프를 걷어 올리는 동안에도 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긴 시간을 들여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도 기도했어요?"

"그럼~ 너희들 위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지.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오늘 로프 타고 내려가다가 말벌집이랑 마주쳤지 뭐야. 정말 암담했거든. 근데 이놈들이 벌집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미동도 안 하더라고. 오늘도 엄마 기도로 살아서 복귀합니다~"

"어머나, 오늘 아침에 기도가 잘 되더라 했더니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나 보다.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다. 아들, 조심히 운전하고~ 사랑해~"

"네, 저도 사랑해요~"

엄마는 언제나 나의 편이다.


한 낱 땡볕에 출동해 준 소방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이 자리를 빌려 전합니다.


아파트 작업을 하다 보면 내 집 바깥에 너무 무신경한 세대들이 간혹 있습니다.

저도 한때 의용소방대원으로 몸담기도 했었는데요.

벌집과 더불어 에어컨 실외기에 새집(큰 건 농구공 크기의 새집도 보았음)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한여름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갈 때 혹 화재가 발생한다면 누구의 손해일까요?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는데 벌들의 공격이 이뤄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집 바깥에도 가끔 관심 있게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레옹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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