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재생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왜 누군가를 만나고,
왜 그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릴까.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무심한 제스처에 마음이 묘하게 반응할 때,
그건 단순한 호감이나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칼 융은 말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이성의 이미지를 품고 살아간다고.
남성은 여성적 무의식의 상(像)인 ‘아니마’를,
여성은 남성적 무의식의 상인 ‘아니무스’를.
그리고 그 이미지는
우리가 만나는 ‘특정한 누군가’를 통해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를 흔든다.
나는 너를 처음 보았을 때,
그게 그저 ‘끌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는 내 안의 감정, 상상, 돌봄, 감수성~
그 모든 것의 목소리였고, 얼굴이었고, 향기였다.
말없이 웃던 네 모습이
내가 잊고 지낸 나를 불러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법조차 잊고 살던 나에게
너는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 너의 감정이야.”
그렇게 내 안의 아니마가 깨어났다.
반대로, 네가 내게 기대고 웃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안정되었다.
흔들리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었고
흩어지던 말들 속에서
한 문장이 탄생했다.
그건 내 안의 아니무스,
논리와 언어, 결단과 지향의 이미지였다.
사랑이란 어쩌면,
너의 안에서 내 안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
그리고 나는 그 거울을 통해
비로소 나를 다시 읽게 되는 것이다.
[레옹의 시]
♡내가 너를 처음으로 본 날 ♡
당신, 말이 없었지.
그 침묵이 어쩐지
내 안에서 오래 울리더라.
무슨 뜻인지 몰랐어.
그런데
내 안의 그녀가
아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일어났어.
그 순간,
네 안의 그가
눈빛 하나로 나를 건드렸지.
말없이,
설명 없이
그저
기억처럼.
가슴이 먼저 알아봤어.
이건 시작이 아니야.
이건
아주 오래된…
재생이었단 걸.
오늘 너를 다시 봤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나는 너를 알고 있었던 거야.
[레옹의 연구노트]
사랑은 처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재생이고,
무의식의 눈 맞춤입니다.
그(그녀)가 나를 사랑했을 때,
사실은 나도 나를
처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