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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11화

by 정감있는 그녀 Feb 16. 2025



"어머니!"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학부모 공개수업을 보러 오시는 E 어머니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포옹을 했다.

"화면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뵈니 너무 좋네요."

E어머니께서도 반갑게 포옹해 주며 인사말을 전하셨다.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데, 익숙한 몇 분의 어머니께서 웃고 계신다. 나도 모르게 편한 웃음이 지어졌다.

나를 보고 웃고 계시는 그분들은 나와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학부모님이시다.



학부모님과 선생님 사이에 그어져 있던 선을 넘고 싶어서,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보다 더 좋은 관계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던 '빛솔반 학부모 독서모임'은 6분의 학부모님과 진한 사이로 만들어줬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며, 일상 속에서 뺏긴 집중력과 시간들을 이야기 나눴다.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 인사를 하며, 서로의 가정사도 조금씩 엿보았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질문 한 가지씩 생각해 서로에게 물어봤다.


"나만의 소소한 행복은 무엇인가요?"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관계에서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인생에 대한 책이다 보니 질문들이 다양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특히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답변할 때는 모두 연애하던 시절의 풋풋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시댁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어쩌다 보니 나이도 공유하게 되었다.



37살의 엄마부터 47살의 엄마까지.

나이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3학년 아이, 그것도 같은 반에서 만난 운명적인 공통점을 가졌다. 우리는 책과 함께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며 조금씩 친해졌다.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으며,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처럼 아이들도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들께서는 아이들 독서모임까지 만들었다.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등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사진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학부모 독서모임은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달과 6펜스>를 읽으며 무슨 소설이 이리 어렵냐며 불평불만에 공감해 주고, 주인공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솔직한 서평을 주고받았다. <대화의 힘>을 읽고 남편과 대화가 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2월의 마지막 모임은 오프라인으로 만났다. 토요일 10시, 근처 카페에서 만나 마지막 책인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의 독서모임을 가졌다. 육아서와 교육서이기도 한 이 책을 읽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요즘 하는 고민과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눴다. 아이의 학부모님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엄마, 여자의 모습으로 느껴지며 진한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3시간 가까이 만났으나 지루함 없이 즐겁고 재미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모임을 마친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오프라인의 추억은 정말 좋았다.



신기하게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학부모님에 대해 알고 나니 우리 반 아이들이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학부모님과 닮은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아이의 성격이나 취향이 잘 관찰되었다. 학교에서의 아이와 가정에서의 아이 모습이 합쳐져 그 아이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달까.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엄마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입장을 이해하고 제삼자로서 바라보는 나의 입장이 더해지면서 아이의 본모습에 더 가깝게 접근한 느낌이었다.








종업식날, 여러 분이 감사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진심이 느껴지는 분들은 역시나 독서모임 어머니들이셨다. "학부모가 아닌 사람으로 해주세요."라는 말에서 웃음이 났다. "기회가 되어 어떻게든 만나면 좋겠습니다."의 말에서 우리가 얼마나 진한 사이가 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망설이고 고민하다 시작한 독서모임은 학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들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 전에 '나'로 존재하던 사람이었다. 고유함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고 다가가니 학부모님의 자녀, 즉 우리 반 아이의 모습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2025년에도 우리 반 학부모님들과 독서모임을 할 것이다.



한 분 한 분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한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서로 도우며 지내고 싶다.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가 아니라 고맙고 든든한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학부모님과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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