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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아이들의 세계

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9화

by 정감있는 그녀 Feb 02. 2025




저학년 아이들은 친구보다 놀이가 우선이다. 즉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논다기보다 그 놀이가 하고 싶으면 같이 껴서 논다. 하지만 중학년부터는 놀이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놀이보다 어떤 친구와 함께하느냐가 점점 중요해진다.



남학생들은 아직까지는 고루고루 섞여서 논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룹을 짓고 친구를 가리는 양상이 뚜렷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그룹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꺼려한다. 친구들 성격이나 캐릭터 파악도 빠르고, 괜찮은 친구를 판단하는 눈도 생긴다.



3학년부터는 성격이 좋고,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친구에 대신뢰가 쌓인다. 공부를 잘하고 아이디어가 좋은 친구, 갈등을 잘 조율하는 친구, 재미있고 유쾌한 친구 등 인기 있는 아이가 조금씩 눈에 보인다.



반면 친구에게 피해를 주는 친구의 모습이 잘못됨을 알고, 눈치를 주고 말리기도 한다. 사회성이 길러지면서 관계를 맺을 때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 사회성이 미숙하게 발달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친구 같은 경우 교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같이 놀다 보면 불편함을 느껴 친구들이 피하는 것이다.






우리 반 남학생 L은 승부욕이 엄청 엄청 강한 친구이다. 성격까지 급해 친구들을 다그칠 때가 많았다. 말투도 톡톡 쏘는 편이라 여학생들이 L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어른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하려고 노력했고, 교사의 지도를 잘 받아들였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는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훨씬 신중하고 부드러워졌다. 친구의 잘못으로 우리 모둠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전과 다르게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잘못했을 때는 따끔한 지도지만, 노력하는 모습에서는 듬뿍 칭찬해줘야 한다.



"이야. 우리 L이 성장했는걸. 전이라면 친구랑 다투었을 것 같은데 감정 조절이 많이 좋아졌네."

" 잘 참았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분 좋게 끝내는 것도 중요해."(어깨를 토닥이며)



L의 모습을 1년 가까이 지켜보니, 넘치는 승부욕만 있는 게 아니라 섬세하고 좋은 관찰력을 가진 아이였다. 툭툭 던지는 말투 속에 마음은 여렸고,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교사의 지도와 칭찬을 받으며 아이는 점점 좋아졌다. 친구 관계에서 확실히 갈등이 줄어들고, 아이들도 L을 편안하게 대했다.



사실, 우리 반에서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따로 있다. 여학생 D다. 밝고 쾌활한 성격에 집중력이 약하고 자기 욕구가 먼저인 아이다. 친구의 스탑 신호에도 장난을 계속 치고, 규칙을 자주 어겼다.



수업 시간에 기지개를 수없이 하며 옆에 친구를 친다던지, 줄을 설 때 친구에게 바짝 붙어 서서 친구를 불편하게 했다. 친구가 뒤로 조금만 가달라고 요청을 해도 웃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좋게 이야기하다 지쳐버린 친구가 폭발하면 그때부터 싸움이 일어났다. 우리 반 갈등 상황은 대부분 D와 함께일 때가 많았다.



급식실에서도 밥 먹다 말고 다른 반 먹는 곳에 가서 친구와 논다던지, 친구가 귀엽다고 뺨을 꼬집고 때리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자주 했다. 그래서 다른 반에서도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



"선생님, D가 저희 반 아이 뺨을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귀엽다고 쳤다는데, 그 강도가 너무 세서 아이가 놀랐다고 합니다. 지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D가 저 치고 갔어요. 사과하랬는데 그냥 쳐다만 보고 갔어요."

"선생님, D가 카톡으로 저희 반 아이 욕을 했나 보더라고요."



문제는 지도를 해도 개선이 잘 되지 않았다. D는 집중력이 약해서 교사가 말하는 걸 귀담아듣지 못했다. 칭찬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자신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여학생들의 사이에서 D는 조금씩 멀리하는 친구가 되었다.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교사가 알려주고 감싸줘도 아이의 행동이 변하지 않기에 한계가 있었다. 아이들 세계에 교사가 개입할 수 있지만 그때뿐이다. 같이 모둠활동을 하고 쉬는 시간에 같이 놀도록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친구와 더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이들참고 이해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좋게 말을 하고 수없이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D는 잘 들어주지 않았다. D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 그렇게 맞춰주다가 이해해 주다가 결국 아이들도 조금씩 피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도 더 이상 피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D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애들이 저희 D를 따돌리는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다고 그러네요."



D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D도 조금씩 느껴졌나 보다. 친구들이 자신을 꺼리는 상황을. 모두 다 잘 지내면 좋은데,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되어 교사로서 착잡했다.



친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까지 교사가 정할 수는 없다. 그건 아이들의 마음이다. 다만, 싫다고 대놓고 표현하거나 다른 친구들까지 선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도했다. D어머니께도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교사가 D를 칭찬해 주고, 긍정적인 모습을 더 끌어낼 수는 있다. 하지만 D의 행동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교사가 아무리 애써도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란 어렵다. 결국 D도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더 미묘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그 속에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 걸까?

날 불편하게 하는 친구를 피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 걸까?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속적으로 지도할 수밖에 없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그렇다고 그걸 표현하고, 상처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우리 반 모든 친구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존중하며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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