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 일기 10화
언제부터였을까?
학부모님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건.
나는 젊은 시절에 학부모님이 불편하지 않았다. 한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서로 돕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나의 교육적 의도를 학부모님께서 알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둘째를 낳기 전 2017년도에 맡았던 4학년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나와 잘 맞았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님께서도 다들 좋으신 분들이셨다. 학급에서 하는 교육 활동에 대해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셨고, 내 노력을 알아주셨기에 교사로서 보람을 많이 느꼈던 한 해였다.
그중 명주라는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던 아이.
그리고 교사를 믿어주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셨던 명주 어머니.
"이 시대에 흔히 볼 수 없는 참교사세요." 라고 조금은 민망한 칭찬을 해 주셨는데, 그 칭찬 한 마디가 힘든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나를 지탱해 주었던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을 믿지 않는 학부모님이 늘어났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감시받는 느낌이 든다. 교실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교사의 말보다 내 아이 말이 우선인 부모님이 많아졌다. 학부모님은 선생님 눈치를 본다고 하는데, 정작 교사들은 학부모님 눈치를 보고 있는 요즘, 갑은 없고 을만 있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둘 다 갑인 건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졌기에. 그리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해가 갈수록 내 아이만 생각하는 민원을 많이 받는다.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교육적 상황에서 지금 당장 오늘 내 아이 마음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핍도 좌절도 내 아이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학부모님. 아이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예쁘지만 작은 문제에도 휘청거리고 나약해졌다.
학부모님과의 소통을 즐겼던 나였다. 매주 쪽지 통신을 보내기도 했고, 학급 sns에 사진이나 영상도 자주 올렸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기본만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을 만나며 교사로서의 보람은 사라져 갔고, 교육적 의도를 오해하고 해명해야 상황에 지쳐갔다.
나는 그렇게 학부모님과 점점 멀어져 갔다.
올해는 전국 초등, 중고등, 특수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자기경영노트'라는 모임에 참여했다. 줄여서 '자경노'라고 부르는 이 모임은 한 달에 2번, 독서모임과 성장모임을 새벽 6시에 온라인으로 만난다.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교사로서의 열정이 사라져 가는 나를 다시 일깨우고 싶어서였다. 다양한 선생님들에게 영감을 받아 젊은 시절 열심히 가르쳤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6월의 독서모임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선생님께서 현재 반 학부모님들과 독서모임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엥? 지금 반 아이들 학부모님들과요?"
난 상당히 놀랐다.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운영 방식을 여쭤보니 한 달에 한 권을 정해 같이 읽고, 선생님께서 책과 관련된 활동지를 학부모님께 드리면 그 활동지를 작성하는 형식이라고 하셨다.
학부모님과 책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딱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엥?"이었던 반응이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책을 통해 학부모님과 소통하다 보면 예전과 같은 협력적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그어져 있던 교사와 학부모님과의 선을 넘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학급 알림장에 <빛솔반 독서모임> 모집글을 올렸다. 나는 우리 반 학부모님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에 도전한 것이다.
6명의 학부모님께서 신청하셨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신청하신 학부모님 자녀들이 평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독서에 대한 관심이 아이들에게 이어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반 독서모임은 조금 힘들다. 운영 방식을 왜 이렇게 했을까 가끔 후회했는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의에 넘쳐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픈 채팅방에 인증 글을 올리고, 매 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아침 7시에 온라인 만남을 갖는다.
즉, 주 1회 인증, 월 1회 만남으로 큰 틀을 짰다.
채팅방에서 인사를 나누고, 같이 읽을 책을 선정했다.
7월은 학부모님과 읽고 싶은 책이 있어 내가 미리 정했고, 8~12월까지 5권의 책을 정해야 했다. 읽고 싶은 책을 편안하게 채팅방에 올리고 5권씩 투표를 했다.
그렇게 정해진 총 6권의 책.
< 도둑맞은 집중력>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공부머리 독서법>
<달과 6펜스>
<대화의 힘>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6권 책과 함께 6분 학부모님과의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