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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탐구발표대회

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12화

by 정감있는 그녀 Feb 23. 2025



띠리리링



"선생님, 과학 영재부장입니다. 선생님 반 아이들이 교내 수학탐구발표대회에서 은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교육청 예선에 진출하는데 지도교사 이름으로 올려도 될까요?"


"아, 네. 선생님. 저희 반 누구일까요?"


"S와 Y입니다. 3학년인데 표현력이 너무 좋아서 언니, 오빠들을 제치고 은상을 받았어요."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수학 개념을 아이들의 언어로 설명하는 대회인 '수학탐구발표대회'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은상을 받아 교육청 예선에 진출했다. 교내 대회를 영상으로 진행했던 터라 아이들의 대회 출전을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촬영을 하고 제출했었나 보다.



S는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친구다. 나서는 성격이 아니지만 무대체질이라 역할극이나 연주회에서 단연 실력이 돋보인다. Y는 깜찍 발랄 감정이 풍부한 친구다.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좋고 표현력이 좋아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S와의 합이 좋다. 둘은 베스트프렌드로 평소에도 친하 잘 지내는 사이다.



교육청 예선도 영상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교내 대회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찍었다. 아이들도 학부모님들도 본선 진출을 욕심냈다기보다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서 마음 편하게 대회에 임했다.






"선생님, 저희 학교에서 보낸 2팀 중에서 선생님 반 아이들만 본선 진출했어요. 본선 준비하셔야겠어요."



과학영재부장님의 전화에 깜짝 놀랐다. 편한 마음으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임했던 예선을 통과했다. 세종시에서 12팀  본선에 나가게 된 것이다. 본선은 직접 가서 시연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 대본과 준비물, 본선에 사용할 PT자료 미리 대회 담당자에게 보내야 했다.



어떤 자료는 공문으로 보내고, 어떤 자료는 메일로 보내야 했다. 투 트랙이라 헷갈렸던 나는 메일로 보내야 했던 PT자료를 기한 내에 보내지 못했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내 실수를 알아챈 날 얼마나 놀랐던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새하애 졌다.



우선 대회 담당자분과 통화를 했다. 기한 내에 제출이라고 공문에 쓰여 있기에 PT자료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실물 자료를 준비해서 가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된다고 하셨다. 



이제 학부모님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자료를 보내지 못한 나의 실수에 대해서.

이런저런 변명은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나의 실수를 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를 내셔도 탓을 하셔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선생님. 어쩔 수 없죠. 사실 아이들이 어려서 PT보다는 실물자료가 낫겠다 싶어요."


두 분 모두 괜찮다고 이해해 주셨다.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는 나에게 차라리 잘 됐다고 해주셔서 어찌나 감사했던지.



수를 알아챈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졸이고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하고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렸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들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고, 차라리 잘 됐다며 내 마음까지 편하게 만들어주셨다.



 아... 역시 빛솔반 어머니들 최고.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연습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부랴부랴 실물 자료를 만들고 아이들과 맹연습을 했다. 워낙 완성형이었던 친구들이라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아이들 기를 살려주는데 신경을 썼다.


"3학년 친구들이 이 정도면 됐지.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 서로 마주 보지만 앞도 신경 써야 하니 45도 정도로 서자."

" 친구가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는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아."

" 목소리 많이 커졌다. 잘하는데!"


연습한 날은 영상을 찍어 학부모님께 보내드렸다. 내가 만든 자료를 학부모님께서 더 깔끔하게 만들어주셔서 자료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실물 자료에 딱딱 붙이면서 하는 아이들 모습이 멋다. PT를 보고 읽기만 할 때보다 훨씬 에 쏙쏙 들어왔고, 3학년 아이들 다운 귀여움과 상큼함이 있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한시름 놓았다.





본선 당일.


아이들과 떨리는 마음으로 대회장소에 도착했다. 대회 대기실에서부터 아이들과 떨어져야 했다. 아이들 스스로 자료를 챙기고 시연까지 해내야 했다. 연습한 대로 충분히 잘할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선생님, 3분 넘은 것 같아요. 어떡하죠?"

"괜찮아.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 애썼어."


발표제한 시간 3분을 넘겼다며 조금 울상이던 아이들은 이내 끝났다는 후련함에 금방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답 금방 떨쳐내고 잊어버리는 모습이었다. 대회라고 나름 신경 썼던 우리들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빵과 음료수를 사 먹었다. 뒤풀이 하듯이.



얼마 뒤, 공문이 왔다. 본선 결과에 관한 공문이었다. 이번 대회는 12팀 가운데서 6팀만 상을 받는단다.  

금상 1팀, 은상 2팀, 동상 3팀.



우리 반 아이들의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공문을 열 때 두근거리는 이 마음은 뭐지?

.

.

.

.

.

두구

두구

두구.

.

.

.

.

.


"어머어머! 동상에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이잖아?"


명단을 보고 놀랐다. 리 반 이들이 동상을 받다. 첫 출전에 어버버 하던 아이들과 나였는데, 3학년이라 상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이들도 나도 학부모님들도 너무 기뻤다. 아이들이 노력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고 보람으로 돌아와 줬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까지 받아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던 터라 나는 더 기쁘고 감사했다. 대회를 치르면서 내가 한 일은 없었다. 내 실수를 덮어주시고 자료까지 보완해 주셨던 학부모님과 바뀐 상황에서도 즐겁게 연습했던 우리 반 아이들 공이 컸다. 그럼에도 감사하다고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해주시던 두 학부모님의 넓고 따뜻한 마음에 교사로서 많이 감사하고 행했다.



관용 있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나는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도 거기에서 좋은 점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에서 겪는 여러 사건들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때로는 고민과 불안에 휩싸여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현명하게 이겨내면 담담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어른이 되나 보다.



 우리 반 S와 Y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배워 멋진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니까.  또한 그런 부모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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