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14화
다른 친구와도 놀고 싶은데 A가 자꾸 막아요.
A가 자기 마음대로만 해서 불편해요.
P의 고민으로 시작했던 쪽지상담 결과, 이 그룹 내의 다른 여학생들도 A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P만 힘든 게 아니었다. 겉으로는 A와 친해 보이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지만, 여자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문제가 생겨나고 있었다.
A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고, A의 눈치를 자주 보게 되는 상황이 늘어가면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쪽지 상담을 통해 글로 적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따로 개인 상담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물어봤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 같은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친구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해."
"친구가 하자는 대로만 하게 되면 너 생각은 점점 사라질 거야."
"친구 감정이 상할까 걱정되겠지만, 불편한 너의 마음을 네가 더 알아줘야 해. 그리고 말할 줄 알아야 해. 싫다고. 불편하다고. "
P가 속한 그룹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준 말이다.
A와도 진지한 상담을 했다. 쪽지 상담을 쓸 때 A를 조심스레 관찰했다. 떳떳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쓸 때 표정부터 다르다. A는 불안한 눈동자로 주위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쪽지상담할 때 마음이 어땠니?"
이게 나의 첫 질문이었다.
좋지 않았다는 A의 대답에, 왜 좋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자신의 마음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3학년 아이답게,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보니까 쪽지상담을 할 때 조금 불안해 보였는데, 뭐 걱정되는 거 있니?"
답이 없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제 이름이 나올까 봐 걱정되었어요."
기특하게도 A는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걱정되었다는 것을 보니, 평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본 것 같았다.
"A이름이 있긴 있었지."
A는 고개를 더 숙인다.
"어떤 부분에서 A가 친구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짐작 가는 거 있니?"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으나 평소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않았는지 억울한 표정은 아니었다.
"A가 너무 재밌고 좋은데, 친구들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 불편했대."
"......."
"나쁜 의도를 가지고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저 A가 아직은 어리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실수한 것이지. 중요한 것은 배워서 다음에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네."
제가 언제요? 하면서 억울해하는 아이에게는 구체적인 사례로 증거를 대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아이에게는 꼬치꼬치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 말할 필요가 없다. 실수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고, 믿어주는 어른의 모습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잘잘못을 따져 사과하는 것은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이다. 교육현장에서 바라본 아이들은 자연의 정화작용처럼 자연스럽게 관계를 회복한다. 잘못을 저지른 친구는 행동을 수정할 기회를 얻고, 피해를 본 친구들은 친구를 용서하고 기회를 주면서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된다.
A는 그다음부터 행동을 조심했다. 다른 친구들도 A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A가 친구들의 눈치를 더 보는 반전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면서 관계의 균형이 맞춰졌다.
누구 한 명의 눈치를 보기보다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는 말투로 지내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P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학교에서 이제 A가 잘 대해준다고, 마음이 좀 나아졌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크게 한 것은 없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행동을 고쳤다. 탓하지 않고, 잘못을 따지기보다 실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줬다.
고학년에 올라가면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상처받고 고민할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주먹다짐으로 싸운다면 여자 아이들은 그런 사회적 관계로 싸우니까. 우리 반 아이들이 좀 더 자신을 생각해 주고,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처를 받더라도 단단하게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아이들 싸움이 학부모 싸움이 되는 게 요즘 현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실수하는 미성숙한 존재이고 관계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의 관계를 무 자르듯이 딱 잘라 해결하려는 어른들의 관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믿는 만큼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고쳐가고 해결해가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P학부모님의 현명한 대처와 교사를 믿어주셨던 그 마음에 큰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