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 일기 8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관찰하면 참 다이내믹하다. 짧은 쉬는 시간을 참 알차게 보낸다.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리코더를 불거나 영어단어를 외우기도 한다. 학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화장실을 다녀와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놀기 위해 놀이를 시작한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놀이를 보고 있으면 참 기발할 때가 많다. 다른 반은 쉬는 시간에 주로 보드게임을 많이 하는데 우리 반은 좀 다르다. 우리 반은 보드게임이 없다. 보드게임을 비치하지 않는 이유는 규칙이 정해져 있는 보드게임 외에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규칙을 세워 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다양한 보드게임이 있긴 하지만, 보드게임은 세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고, 규칙도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놀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짧게 놀아도 충분히 놀았다는 느낌이 드는 놀이를 아이들이 찾기를 바랐다.
놀거리가 없으면 놀거리를 만들어 내는 게 아이들이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배움은 일어난다. 따분한 시간을 보내봐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 우리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놀잇감이나 장난감은 가져올 수 없다. 처음에 남학생들은 색종이를 접고 놀았다. 팽이도 만들고 미니카도 접더니 어느새 딱지치기 놀이가 유행처럼 번졌다. 쉬는 시간에 딱지 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서로의 딱지를 따고 따 먹히면서, 어떻게 해야 딱지가 넘어가지 않을까 궁리하더니 최대한 납작하게 하려고 책상다리 아래에 딱지가 끼워져 있는 남학생들이 늘어갔다.
역시 놀이에 진심인 아이들.
처음에는 경쾌하게만 들렸던 딱지 소리가 노하우가 생겼는지, 아니면 연습의 결과인지 짝짝 소리를 내며 약간의 소음으로 변질되었다. 여학생들이 불만을 쏟기 시작했다. 학급회의를 통해 딱지치기를 좋아하는 남학생들과 불편함을 겪는 여학생들 사이를 조율했다. 딱지는 2교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만 하는 것으로 했다. 다른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도 쉴 수 있게 절제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반 남학생들이 딱지를 가지고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서로의 무릎 사이로 딱지를 집어넣는 놀이였다. 던지기 전에는 무릎 사이를 벌리고 있어야 했고, 친구가 딱지를 바닥에서 밀어 던질 때 그 찰나에 무릎을 붙여 딱지를 막는 단순한 규칙의 놀이었다.
놀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짜 낸다. 상황에 맞춰 놀이를 만들고 규칙을 변형하면서 즐겁게 쉬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다.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에너지에 전염되는 것 같다. 사소한 놀이에도 흠뻑 빠져 몰입이 순간순간 일어난다.
우리 반은 보드게임은 없지만, 색종이와 블록, 공기놀이는 항상 교실에 비치해 두었다. 남학생들이 색종이로 주로 놀았다면, 여학생들은 블록으로 여러 가지 역할놀이를 하고 놀았다. 어떤 날은 용을 만들기도 하고, 블록으로 음식을 만들어 음식점 놀이도 하고, 채소 모양을 만들어 농장 놀이도 했다.
교실에 비치해 둔 공기놀이는 아이들의 관심 밖이었으나 2학기에는 갑자기 공기놀이 바람이 불었다.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기놀이에 빠져 놀았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공기놀이에 빠져 서로 어울려 놀고, 자기들끼리 토너먼트를 짜서 공기대회를 하기도 했다.
공기놀이는 소근육이 길러질 뿐만 아니라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이 길러져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놀이이다. 보통 손이 야무진 여학생들이 잘하는데 우리 반은 특이하게도 남학생들이 더 잘했다. 딱지를 야무지게 접고 야무지게 때렸던 그 손으로 공기놀이까지 하는 남학생들.
확실히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놀이에 더 진심이다.
그러다가 2학기 중반에는 클라스크라는 보드게임을 학급 운영비로 마련했다. 보드게임을 선호하지 않은데 이 게임은 참 괜찮아 보였다. 자석을 이용한 축구형 게임인데, 세팅도 간단하고 규칙도 간단해서 쉬는 시간에 후루룩 하기에 좋다. 그리고 남녀 상관없이 게임이 가능하고, 이기는 사람이 꼭 이기는 법도 없는 공게임이라 아이들의 흥미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오죽하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클라스크 사달라고 했다는 아이들이 여러 명일정도로 우리 반은 클라스크에 푹 빠졌다. 학기 말에는 클라스크 조별 리그전을 열었다. 추첨을 통해 A부터 F조로 나누었고, 한 조에 4명씩 리그전을 거쳐 승점이 가장 높은 사람이 조별 우승자가 되어 토너먼트에 나갔다. 그리고 그 조별 우승자들은 토너먼트를 했고, 우리 반 클라스크 최강자를 뽑았다.
1년을 돌아본 우리 반 교실 놀이는 딱지에서 공기놀이 그리고 클라스크로 이어졌다. 중간중간 지우개 따먹기 놀이도 있었고, 실뜨기와 윷놀이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다 추억의 옛 놀이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에게 최신 보드게임보다 추억의 놀이를 전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딱지, 공기놀이, 지우개 따먹기, 실뜨기, 윷놀이 등 옛날 어린이들이 즐겨했던 놀이들.
옛날과는 놀이 방식이 조금씩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이는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
오징어게임 2가 유행 중이다. 딱지치기도 덩달아 유행 중이라고 들었다.
이것 보라고~!
우리 반은 이미 유행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