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행평가와 단원평가

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6화

by 정감있는 그녀 Jan 12. 2025




초등학교에서는 중, 고등학교에서 하는 지필 평가가 없다. 평가는 수행평가가 전부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 학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국어나 수학 교과의 단원평가를 보는 편이다.



단원평가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은 수행평가 결과와 교사가 학생 수행 모습을 관찰하여 작성한 교과활동발달상황이다.



우리 반은 수학 교과 단원평가를 본다. 나선형 교육과정인 수학은 한 학년이라도 게을리할 수 없는 중요한 교과이다. 문해력이 발달되어 나중에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다른 교과에 비해 한 해 한 해 성실하게 구멍 없이 해야 하는 과목이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행평가와 더불어 객관적인 지표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단원평가도 보는 것이다.


 

단원평가를 보면 아이들이 시험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번호에 체크 표시를 하고 답을 적지 않는다던지,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거나, 기호를 적어야 하는데 숫자를 쓴다든지, 실수하는 유형은 다양하다. 문제에서 모두 고르라고 하면, 답이 여러 개임을 눈치채야 하는데 또한 알지 못한다. 모두 고르라 하지 않았는데도, 여러 개의 답을 적기도 한다.



나는 단원평가를 볼 때 엄격하게 채점한다. 보기에 체크가 되어 있어도 답 적는 칸에 답을 적지 않았다면 틀렸다고 한다. 지우개를 사용 안 하고 숫자를 겹쳐 적은 경우에도 틀린다. 기호를 적어야 하는데, 숫자를 적었을 때도 틀렸다고 표시한다.



엄격하게 채점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실수를 줄이기 위함이다. 배움은 실수와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수한 경험을 그냥 동그라미로 인정해 주면 아이는 배우지 못한다. 그리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는 단원평가는 타이트하게 채점을 한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음에는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 이 경험이 언젠가 성적에 들어가는 지필 평가를 볼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반면 생기부에 기록되는 수행평가는 좀 다르다.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는 평가로서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관찰 평가 같은 경우에도 한 시간에 평가하지 않는다. 여러 차시에 걸쳐서 아이의 학습 태도와 결과물을 보는 편이다.



수행평가 항목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아이들이 쉽게 해결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의 경우는 교사가 힌트를 주거나 교과서 페이지를 알려줘서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지도한다. 배움의 과정을 보려고 말이다.





3학년 1학기, 길이와 시간 단원을 배운 후 단원평가를 봤다. 시험지에 애매한 문제가 있었다. 1킬로미터보다 긴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보기는 버스 길이, 기차 길이, 20층 건물의 높이, 설악산 높이였다. 문제는 모두 고르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보기 중에서 확실히 1 킬로미보다 긴 것을 골라야 했다. 하지만 채점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기차 길이와 설악산 높이 두 가지를 답으로 많이 적었다.



시험을 본 후, 아이들이 많이 틀린 문제는 설명을 해 준다. 위 문제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설명을 해줬다.



"문제를 읽어보면 답을 모두 고르라고 하지 않았죠? 그래서 답은 한 가지예요. 친구들이 기차 길이를 답으로 많이 썼더라고요.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긴 기차의 길이는 1킬로미터가 훨씬 넘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기차의 길이는 1킬로미터가 넘지 않아요. 선생님이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기차가 777미터라고 해요. 그래서 정확한 답은 설악산 높이입니다. 1708m 거든요. "



다음 날, C 학부모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웬 블로그 링크였다. 링크를 열어보니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에 관한 글이었다. 그리고 이어 온 문자 내용은 "단원평가에서 아이가 틀려왔는데, 맞았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였다.



애매한 부분이라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C 어머니께서는 연락을 하셨다.

아이에게 교사가 말한 부분을 전달받지 못하신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라고 느끼신 걸까?

무엇보다 블로그 링크부터 딱 보낸 소통의 방법에서 썩 기분 좋지 않았다.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이 논리라면 손톱의 길이도 mm가 아니라 cm, m까지 볼 수 있다. 상식 수준에서 평균 범위 내에서 어림해야 하는 길이 단원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의 길이에 대한 블로그 글을 보내 답을 인정해 달라고 하신 것이다.



길게 답장을 적다가 그냥 다 지웠다.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문제 외에도 C학부모님과의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성적에 들어가지도 않는 단원평가다. 그냥 맞았다고 하면 된다. 맞았다고 한들 뭔가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단원평가의 점수만으로 아이의 성적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참고자료일 뿐이다.



"뭣이 중헌!"라는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게 중요한 걸까?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을 파악하는 연습이 더 중요할까?





이전 05화 독서와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