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군지가 있다면 이 아이 옆자리

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화

by 정감있는 그녀


2022년, 4학년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학급 1인 1역을 직업활동으로 운영해서 월급을 주고, 보너스와 벌금을 받는 식으로 학급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통장에 월급을 모아 간식 쿠폰을 사기도 하고, 저축이나 기부활동을 하며 학급 생활 속에서 경제에 대해 조금씩 배웠다.



평소 제비뽑기를 통해 자리를 바꿨으나 2학기에는 아이들 통장에 쌓인 돈을 활용해 경매 형식으로 진행했다.



아이들은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돈을 계속 올렸다. 칠판과 화면이 잘 보이는 자리가 비쌀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우리 반 최고 값의 자리는 D 친구 옆자리였다.






D는 독서와 글쓰기로 반짝이는 아이였다.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아 여유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독서와 자신의 몰입 과제로 채우는 친구였다. 예를 들면 전염병의 종류를 조사한다던지,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를 세계 지도에 표시하면서 자신이 탐구하고 싶은 주제로 여가 시간을 보냈다.



읽기 유창성도 매우 뛰어났다. 의미 단위로 띄어 읽기를 잘했고, 소리 내어 읽을 때 실수 없이 매끄럽게 읽었다. 독서를 좋아했고, 또래 아이들보다 높은 수준의 책을 읽었다.



수많은 교육 영상에서 나오는 문해력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D에게서 관찰되었다. 책을 좋아하니 문해력이 상승하고, 높은 문해력으로 수준 높은 책을 읽으며 아이의 문해력은 더 거대해지고 튼튼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D 부모님은 학원을 보내지 않았지만, 한 가지를 꾸준히 시키셨다. 바로 일기 쓰기였다. 아이는 4학년이 돼서도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고 했다. 독서로 충만해진 배경지식과 생활 속에서 느낀 감정을 아이는 글에서 마음껏 풀어 내고 정리했다. 그 꾸준한 시간은 아이의 논리력과 사고력으로 자리 잡았고, 4학년에 와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저학년 때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탐구하고 독서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약간의 너드 성향이 있어 아이들 세계에서 독특한 친구라는 인상이 더 강했을 것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기보다는 워낙 지식이 풍부하고 탐구력이 강한 친구여서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빠져 지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이 아이의 평판은 전혀 달라졌다. 어려운 학습 활동을 척척 해내고, 아니 오히려 즐기는 D의 모습에 아이들은 D를 똑똑하다고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탐구하는 과정을 많이 했던 터라 모둠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고, 좋은 아이디어와 효율적인 방법으로 모둠을 잘 이끌었다. 무엇보다 D와 짝을 했을 때 공부에 도움이 되는 걸 느낀 후로는 이 친구와 다들 짝을 하고 싶어 했다.



독서와 글쓰기로 반짝였던 D가 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자신보다 못한 친구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흔히 공부를 좀 한다는 친구들은 잘난 체를 하거나 이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친구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한다.



하지만 D는 달랐다. 잘 모르는 친구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친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타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알려준 것에 대해 생색도 내지 않았다.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쿨하게 자신의 할 일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편하게 D에게 물어봤고, D에게 배우면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그런 D의 모습에 교사로서 나도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이러니 우리 반 최고의 자리는 D 옆자리가 될 수밖에...

학군지가 있다면 바로 D 옆자리가 아니었을까?

학군지가 왜 그렇게 비싼지 새삼스레 그 이유를 알겠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