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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력도 능력인 것을

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2화

by 정감있는 그녀



학기 초, 내가 아이들에게 한 달 내내 열심히 지도하는 게 있다.

바로 정리하는 습관이다.



수업 시작 전에 책상 위 정리, 아침에 오면 시간표 보고 서랍 정리, 사물함 물건 정리, 학습 활동 후 쓰레기 정리 등 학교 생활 속에서 정리는 정말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해가 갈수록 정리를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

우리 반만 그런 건가? 예전에는 한 달이면 잡혔던 습관이 요즘에는 한 학기 내내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



언제 적 작품인지 모를 색종이 더미가 책가방 아래에 쌓여 있고, 사물함은 뒤죽박죽 문을 열면 쏟아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물건이 놓여 있다. 책상 서랍은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는데 교과서를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교과서 표지가 찢어지기 일쑤이다. 수업에 필요 없는 풀과 가위는 왜 항상 책상 위에 놓여있는지. 그것을 만지느라 수업 시간에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쓰레기는 바로 버리세요."

"오늘 공부하지 않는 교과서는 사물함에 넣으세요."

"풀과 가위는 필통 안에 넣으세요."


똑같이 반복되는 내 잔소리에 내가 숨이 막힌다.






2007년 신규시절, 우리 반 J는 정리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정리하는 습관과 더불어 요령을 피우지 않는 책임감도 강했다. 청소 시간에 친구와 이야기하며 대충 쓰는 척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쓰레기통을 들어 뒤편까지 꼼꼼하게 청소하는 친구였다. 시키지 않아도 정리가 필요한 곳을 찾아 스스로 정리했다. 우리 반 서고 정리, 선생님 책상 정리 등 J가 다녀갔다 하면 그곳을 깔끔해지고 보기 좋아졌다.



분리배출은 얼마나 야무지게 했는지 모른다. 하루는 J와 친구들이 재활용품을 버리러 갔는데 한참 동안 안 왔다. 점심시간이 다 끝날 무렵 헐레벌떡 뛰어와서 한다는 말이

"선생님, J 때문에 늦었어요"

"쓰레기장에 떨어진 거 J가 줍자고 해서 저희가 다 줍고 오느라 늦었어요."

J와 함께 간 아이들은 분리배출장에 막 버리고 간 쓰레기까지 정리하느라 늦게 들어온 것이었다.

얼마나 기특하고 예쁜 모습인가.



그 당시 나는 칭찬보다는 그냥 덤덤하게 그랬냐고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그 귀한 능력을 알아보고 칭찬을 듬뿍 해주었을 텐데 말이다. 신규 교사였던 나는 정리력이라는 큰 장점을 알아봐 주지 못했다. 오히려 공부할 때 이해가 조금 늦은 J의 학습을 신경 썼지, J의 빛나는 모습을 격려해 주고 지지해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J 생각이 많이 났다. 정리를 못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답답함과 피로함을 느낄 때면 J가 떠올랐다. J의 빛나는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력하게 내 안에서 빛났다. 참 멋진 친구였는데 그 친구에게 칭찬을 듬뿍 못해준 게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다.



신규시절이니 이름도 잊어버릴 만한데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나고 그 친구의 주근깨가 있던 얼굴과 수줍게 웃던 모습까지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칭찬을 못해준 아쉬움과 장점을 알아봐 주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깔끔하고 정돈된 우리 반을 만들어준 고마움이 뒤섞여 J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학생이 되었다.



정리력도 엄청난 능력인 것을.

미숙했던 초보 선생님은 몰라봤어.

J야, 미안해.

그리고 우리 반을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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