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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가르쳐서 영광이었어!

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3화

by 정감있는 그녀



2017년,

그때 만난 4학년 친구들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나는 아이들이다.



나도 열정이 넘쳐 열심히 가르쳤고, 아이들 또한 배움에 진심이라 학급 활동 하나하나마다 만족도가 높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처음부터 우리 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귀찮아하고 대충 하는 아이가 있었고, 놀고만 싶어 하는 장난꾸러기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L 덕분에 우리 반은 점점 최선을 다하는 열심히 하는 반으로 변했다.



L은 사회성이 정말 뛰어났다. 하지 않으려는 친구를 구슬리는 대화 기술을 가졌고, 모든 친구들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였다. 친구들 기분이 상하지 않게 모둠을 이끌어가는 중재의 달인이었다. 교사인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모둠활동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역할이 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면 L은 나서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소하고 별로인 역할도 멋들어지게 해낸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친구가 L이였다.



L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친구들이 덩달아 열심히 하다 보니 발표 퀄리티는 저절로 올라갔다. 그래서 L이 있는 모둠은 항상 발표 수준이 높았다. 짧은 연습 시간에도 작품이 그럴듯하게 나왔다. 역할극도 춤도 악기 연주도 L이 있는 모둠은 연습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활동 결과물도 우수했다.



저 모둠이 저렇게 발표했어?

우리도 질 수 없지.



다음 발표 때는 다른 모둠도 더 열심히 연습했다.

그렇게 우리 반은 점점 더 열심히 참여하고 배우는 반이 되어갔다.





사회 시간, 지역 문제에 대해 조사하는 공부를 할 때였다. 우리 지역 문제점을 조사해 오는 활동에 L과 모둠친구들은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1시간 넘게 앉아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1시간 동안 몇 번의 사고가 날 뻔했는지 관찰했다. 정확하게 세보자고 했던 L의 아이디어에 방과 후에 약속을 잡아 관찰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 수치를 바탕으로 신호등 설치에 대한 글을 쓰고 시청 홈페이지에 올렸다. 우리 반 글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뒤에 그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생겼다. L과 친구들은 "우리가 해냈나 봐." 하며 자축했다.



국어 시간에도 L은 빛났다.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간단하게 자신의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소개했다. 하지만 L은 달랐다. 나는 L의 발표를 들으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아~! 이 주제로 조사해 온 아이가 있다니...!'


L의 조사 주제는 5.18 민주화 운동이었다. 5.18이 어떤 사건인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여러 사진 자료와 함께 정성껏 자료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발표했다.



조사 숙제를 내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읽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L은 조사에서 끝이 아니라 의미와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까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이러니 아이들이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또래와는 다른 주제, 그리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야기해 주는 L의 발표 시간은 정말 빛이 났다.

그 모습을 나도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경험은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변화시켰다.

우리 반은 L을 닮아갔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더 잘할 수 있을까 의논했고, 수업 활동에 진심으로 임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점점 가르칠 맛이 나는 순간이 많아졌다. 수업 시간이 즐거웠다. 주말에도 아이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같이 탁구를 치고 햄버거를 먹으며 추억을 쌓았다. 둘째가 생긴 2학기에도 태교보다는 아이들과의 활동에 더 빠져 살았다. 아이들과 장구를 치며 학예회를 준비했고, 학기 말에는 '인생은 아름다워.' 연극 프로젝트를 했다.



어떤 활동을 해도 즐겁게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교사로서 참 행복했다. 시간이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을 선물해 준 사람은 L이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기특한 아이.

배움에 진심인 아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아이.

L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그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낼 거라는 것.

그 시간은 L 안에 차곡차곡 쌓여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떤 곳에서도 빛나고 있을 L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널 가르쳐서 영광이었어.

나에게 행복한 1년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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