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녀석, 수학 다음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영어라는 과목을 시작해야만 했다.
딸은 한글을 8살 올라가는 무렵에 겨우 읽었다. 한글이 먼저였기에 영어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글을 배우더라도 영어를 지속적으로 접해줘야 했는데 그것도 잘 못했다.
똑같이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웠어도 딸과 둘째 아들은 전혀 달랐다. 아들은 배운 내용을 기억하고, 6살인데도 17 하면 "세븐틴"하고 이야기할 정도로 영어를 좋아하고 잘했다. 하지만 딸은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인풋이 있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하게 하기보다 한글처럼 때가 되면 시작하자 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기다렸다는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미룬 게 맞다. 영어를 시작하면 하루 공부량이 늘어나니까. 영어가 시작되면 글쓰기는 뒤로 밀릴게 뻔하니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 2학년 겨울이 다가올 때쯤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 딸은 알파벳도, 2학년이면 대부분 아는 "프렌드"라는 뜻도 몰랐다.
2학년 11월부터 영어 알파벳 영상을 보여줬다. 알파벳과 소릿값을 연결하고 단어까지 나오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1주일 정도 보았을 때 영어 공책에 알파벳 쓰기를 가르쳤다. 알파벳을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파닉스를 배울 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파닉스는 12월부터 겨울방학이 끝나는 2월까지 세 달 동안 공부했다. 파닉스 교재에 있는 모든 활동을 성실하게 했다. 단어뿐만 아니라 단어가 포함된 읽기 자료를 듣고 따라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공부했다. 초반에 알파벳을 쓰고 익힌 덕분에 파닉스 공부할 때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파닉스를 공부하고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알파벳부터 가르친다. 자신이 아는 내용이니 딸은 자신감이 넘쳤고, 영어 수업에도 잘 따라갔다. 하지만 영어는 그 수준이 확확 올라간다. 지금 잘 따라간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 부지런히 해야 했다.
사실 초등 교사로서 17년 차의 경력을 가졌지만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은 2년 미만이다. 교과 전담 선생님께서 영어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영어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아이 영어 공부를 시키기 전에 영어 교육 관련 책을 많이 봤다. 그리고 여러 방법 중에서 지금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무리 좋아도 무리하게 되는 길은 과감히 포기했다.
내가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 스카이쌤의 <영어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였다. 한글 독서를 강조하신 부분이 나와 결이 맞았고, 영어를 늦게 시작했다는 점도 우리 집과 비슷했다. 영어 인풋을 하루 3시간씩 하라는 책과 다르게, 이 책은 교재를 활용해 현실적으로 영어 실력을 올릴 수 있게 로드맵을 제시한 점이 좋았다.
하지만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점은 "영어 인풋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였다. 부담 없이 1~2학년 시기에 영어 관련 영상이나 영어 그림책을 보여줄 걸 후회가 많이 되었다. 그리고 언어로서의 영어를 배우길 바랐는데, 배우는 시기가 늦다 보니 자꾸 학습으로서의 영어가 되어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 보다는 앞으로 나가는 게 중요했다. 아이 인생에서 지금 1~2년 늦은 게 큰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꾸준히 집중해서 영어집공부를 해 나가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