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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18. 2023

20달러면 통 랍스터 먹을 수 있는 나라  

벨리즈, 랍스터 



중미에서 유일하게 영어 쓰는 나라, 벨리즈 


멕시코에서 처음 국경을 넘은 곳은 벨리즈(Beliz)란 국가이다. 많은 이들에게 낯선 국가명이지만, 중미의 유일한 영국 식민지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영국 연방 국가로 중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공식 언어로 쓰는 곳이다. 벨리즈 지폐를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새겨져 있는 게 흥미롭다. 바닷속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그레이트 블루홀'로 유명한 곳이며 각종 산호초 군락 등이 가득해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버들의 천국으로 불린다.

그레이트 블루홀 

멕시코에서 선만 넘었을 뿐인데 주요 인종이 달라졌다. 멕시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아프리카계 흑인 비중이 많아졌고 멕시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캐리비안 연안 국가를 가보진 않았지만, 쿠바 같은 바이브가 있는 곳이 벨리즈이다. 영어를 쓰는 국가이고,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기 때문에 미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은 곳이기도 하다. 


벨리즈 흔한 길거리 음식, 랍스터 


벨리즈 키코섬(Caye Caulker)은 매우 작은 섬이다. 약 2천 명의 도민이 살고 있는데, 섬 자체는 기다랗게 뻗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섬 북에서 남쪽 끝까지 도보로 20분이면 도달한다. 원래는 섬이 더 길었는데 엄청난 허리케인으로 무려 섬이 쪼개졌다. 그곳은 '쪼개짐(Split)'이라고 불리며 약 50M 떨어진 나머지 반쪽자리 섬엔 보통 배를 타고 이동한다. 

허리케인으로 섬이 두 쪽으로 갈라질 수 있다. 저 맞은편 섬을 바라볼 수 있는 비치 체어 


 이 반쪽 짜리 섬을 걷다 보면 점심시간 무렵부터 여기저기 그릴이 길거리에 등장한다. 랍스터부터 각종 스테이크, 자메이카식 저크 치킨 등을 굽는 연기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간이 테이블에서 랍스터나 저크 치킨, 스테이크 등을 대낮부터 즐겨 먹는다. 아침 일찍부터 스노클링 투어를 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이만한 영양 보충은 없다. 호화 음식으로 분류되는 랍스터를 플라스틱 간이 접시에 담아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식당 메뉴판엔 랍스터는 기본이다. 랍스터 안 파는 식당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만큼 벨리즈엔 랍스터가 흔하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마다 랍스터를 잡으러 가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고 규모가 조금 있는 식당은 바로 앞바다에 양식장처럼 바닷 가재 잡는 공간을 거대하게 조성해 놨다. 랍스터의 가격은 대부분 비슷한데 최저 30 벨리즈 달러부터 50 벨리즈 달러 등 다양하다. 벨리즈는 미국 1달러 = 2 벨리즈 달러로 고정 환율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가격을 1/2로 나누면 미국 달러 가격이며, 미국 달러와 벨리즈 달러 둘 다 받는다. 


즉, 최저 15달러부터 25달러 정도면 통 랍스터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나 역시 처음엔 일몰을 보며 간단하게 칵테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주인장이 "오늘 정말 신선하고 큰 바닷 가재들을 잔뜩 잡아서, 특별 메뉴로 추천한다"라고 살짝 꼬시는 바람에 원랜 계획에도 없던 랍스터 요리를 주문했다. 

반으로 갈라져 나온 랍스터는 상당히 거대했다. 랍스터 위엔 아보카도, 망고, 당근 등이 들어간 토마토소스가 잔뜩 얹어져 있었는데 소스를 살짝 걷어내니 살이 아주 통통하게 꽉 차게 들어있다. 랍스터와 함께 코코넛 라이스, 구운 플라타뇨(바나나 과이지만 살짝 다름. 구워 먹으면 살짝 새콤한 맛이 인상적)가 사이드로 곁들여 나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나온 것이 마음에 들었다. 중미 여행에서 한 끼에 2만 원을 넘어가는 식사를 하는 경우는 손가락에 꼽는데, 오늘은 그중 하루였다. 아니, 한화로 2만 원 내외에 오늘 잡은 랍스터를 즐길 수 있다는데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득, 벨리즈 사람들에겐 랍스터는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우리에겐 나름 기분내고 싶을 때 먹는, 나름 고급 음식에 속하는 랍스터는 이들에겐 그저 손만 넣으면 잡히는 재료로 만든 흔한 서민 음식에 불가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랍스터와 관련된 재미난 역사적 사실이 떠올랐다. 


빵 대신 랍스터를 주었더니 파업한 사람들 

 20세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랍스터는 죄수나 노예, 가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었다. 당시 미국 동부 해안가엔 이 랍스터가 넘쳤는데 사람들은"바다의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경멸했다고 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랍스터의 외관만 보면 징그러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특히 영국에서 미국 등으로 가난한 노동자들, 죄수들이 대거 이민했던 17세기, 한 농장 하인들은 "빵 대신 매일 랍스터를 준다"는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고 한다. 이들은 이후 랍스터는 일주일에 3번만 올리는 걸로 협상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그저 웃픈 에피소드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이 랍스터는 19세기 후반, 통조림과 철도가 개발되면서 내륙 지방에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며 귀한 신분이 되었다. 랍스터의 몸값이 상승한 이유엔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1) 랍스터는 양식이 어려운 것은 물론, 알 부화 역시 상당 시간 소요되는 것 2) 살아 있는 상태에서 유통해야 하는데 유통 과정이 까다롭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다. 


당시 바닷가 사람들에겐 랍스터는 줘도 안 먹는 음식에 불가했지만, 랍스터 맛의 진가를 알아버린 내륙 사람들의 수요 폭증으로, 신분이 급상승해 오늘날까지 그 높은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흥미롭다. 오늘날 사내 식당에서 빵 대신 랍스터를 준다면 파업은커녕,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복지라며 화제가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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