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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May 08. 2019

12. 나는 누가 보면 못해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과 소심함 그리고 자존심이 만났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잘하던 것도 갑자기 잘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을 할 때 누군가가 "OO야, 엑셀 잘하지? 이거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아?" 라고 해서 물어보면 갑자기 잘하던 것도 생각이 안난다. 그 사람 보는 앞에서 마우스를 이것저것 클릭해보다가 30초만에 해결이 안되면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항상 "어, 이거. 어떻게 하더라. 제 자리에서 해보고 알려줄게요"  라고 대답하고 내 자리로 돌아가서 어떻게 알려줄지 순서에 대한 로직을 짠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꽤 잘하는 축에 속하는데, 그래서 헬프 요청을 한 누군가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으면, 혹은 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을 때 이것저것 클릭하면서 문제가 빨리 해결이 안되면 괜히 내가 속이 초조해진다. 상대방은 내가 이걸 응당 빨리 해결할 줄 알았는데 내가 이것저것 마구 클릭하면서 자신이 이미 밟았던 절차를 그대로 되풀이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잘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하면 되는데 그러기엔 또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일단 내 자리로 돌아가서 해보면 또 빠르게 답이 나온다. 만약 스스로 하다가 안되면 구글링을 열심히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그 사람에게 답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학교 다닐 때 팀플을 할 때도 그랬다. 

피피티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나는 항상 피피티와 발표를 도맡아했는데 팀원들이 함께 모여 피피티를 함께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나는 유독 속도도 느려지고, 아이디어도 잘 안날 뿐 더러 다들 내 컴퓨터 화면에 집중해있는 것이 싫어서 "일단 간략하게 장표 내용만 짜고 피피티 전체 디자인은 제가 집에서 해올게요!" 하고 빨리 회의를 끝내버린다. (팀원들은 항상 환호한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열심히 그 작업을 하는 거다. 또 피피티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디테일 하나하나 완벽하게 잡느라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곤 한다. 실제로 한 12시간 소요됐다고 치면, 그네들 앞에는 "한 3시간동안 했어요" 하고 괜히 너스레를 떤다. 

정리하자면, 누군가가 내가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느리게 보일까봐 혹은 틀릴까봐 나는 불안하고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소심한 성격과 못한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함께 얽힌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누가 보면 못해" 

최근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는데 내 생각을 대변하는 한 친구가 한 말이다. 그 친구도 꽤 능력자로 주변에서 인정하는 편인데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 친구가 컴퓨터를 들고 오지 않아서 내 노트북으로 함께 논의하다가 내가 다른 테스크를 수행해야해서, 잠시 그 친구에게 "ㅁㅁ야, 이것 좀 해줘~" 하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20분 있다가 내가 어느정도 그 친구가 했나 해서 모니터를 보는데 결과물이 너무 없는거다. 그리고 그 친구의 마우스와 키보드 움직임이 멈추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뱉은 말, "나 집에가서 할게. 나는 누가 보면 못해" 

정말 나와 비슷하구나. 그리고 나는 알지, 너가 집가서 3시간 걸렸던 일을 이후 30분만에 했다고 말할 거라는 것을.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심한 사람은 헬스장 가서 운동하기 힘들다. 내가 행여나 헬스 기구를 어설프게 다루거나, 자세가 이상해서 누군가의 주목을 끌까봐. 가령, 내가 로잉 머신으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치자. 정말 힘들게 나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데 트레이너의 시선이 느껴지면 갑자기 불안해진다. 내가 지금 혹시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트레이너가 지적해줄려나? 그리고 괜히 그 자세 어설픈게 보여주기 싫어서 힘든 척 하고 동작을 멈춰버리는 거다. 그래서 과감하게 운동을 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라리 나를 1:1로 피티 해주는 경우는 다르다. 그 때는 아예 "이 트레이너는 내 운동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는 마인드셋이 되어서, 정말 하라는대로 열심히 운동한다. 나는 피티 트레이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 중 하나인데, 정말 죽을만큼 힘들어도 하라는대로 다한다. 못하는 건 죽어도 보여주기 싫어서. 

이러한 이유로 나는 헬스장을 잘 가진 않는다. 매일 운동을 꾸준히 하자는 주의인데 매일 피티를 받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혼자 운동 기구를 남의 눈치를 봐가면서 하는 것은 못하겠다. 그래서 복싱 같은 특정 운동 종목을 정해서 등록했다. 아예 누가 대놓고 코칭을 해주는 건 괜찮으니까. 근데 문제는 여기에서도 소심함이 어김없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복싱장은 벽면 한쪽이 전면 거울로 되어있다. 운동을 할 때 스스로 자세 교정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이 경우 남의 시선 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잘 못본다. 거울 속에서 운동 하는 내가 어색한 거다. 특히 땀 뻘뻘 흘려서 얼굴 벌개진 채로 있는 내 얼굴은 더더욱 보기 싫다. 그래서 거울을 마주보며 운동을 할 때는 내 얼굴을 못보고 항상 가슴 쪽을 쳐다보곤 하는데 복싱을 할 때 항상 코치들이 "얼굴 쳐다보고" 라고 하는데 나는 유독 내 얼굴을 잘 못본다. 그냥 그 순간은 가장 내가 못생겨보이는 순간이라서 애써 회피하는 게 아닐까. 남의 시선 뿐 아니라 본인의 시선까지 의식하다니. 어찌보면 참 우습다. 이건 소심함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인걸까. 

그래서 2년 넘게 복싱을 해왔지만 도저히 발전이 없다. 왜냐하면 거울을 보고 열심히 혼자 복싱자세를 연습하고 나름 쉐도우 복싱을 해본다고 하지만 내 거울 속 얼굴을 잘 쳐다보지도 않고, 관장님이나 코치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긴장되면서 괜히 힘든척하고 쉬기 때문이다. 차라리 피티처럼 대놓고 "자 이제 내가 너를 가르칠 것이다!" 하고 시선이 예고가 되는 거면 상관이 없는데 우연히 누군가의 시선이 내 동작에 부딪쳤을 때 그 순간의 부담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나를 멈추게 한다. 그래서 항상 잘못된 동작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잘하는 동작만 계속 잘하게 되는거다. 


"나는 누가 보면 못해" 

이 말은 결국, "나는 누가 내가 못하는 걸 볼까봐 지금 안해" 인 것 같다.


언제쯤 타인의 시선에도 아량곳 하지 않고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마주하게 될까.  

소심함과 자존심이 만났을 때 정말 쓸데없이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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