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Apr 19. 2019

03. Trilingual (3개국어)를 꿈꾸며

언어병? 그렇게 나는 스쳐지나간 언어만 5개가 생겼다.  

나는 언어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말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할 수 있는 언어수가 너무 적다.

원어민과 소통과 교류를 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외국어는

기껏해야 한국어, 영어, 중국어이다.

그동안 스쳐갔던 언어는 일본어, 러시아어,아랍어, 스페인어 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정말 스쳐지나갔다.

스쳐지나간 언어 중 그나마 비중이 있는 언어라고 하면 일본어겠다.

최소한 아침인사,점심인사,저녁인사, 길묻기, 생일축하인사 등은 중,고등학교 제2외국어 였기에 아주 기초적인 말만 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많은 한자를 익히게 되면서 한자가 섞인 일본어를 최근부터 이해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일본어는 그냥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읽을 줄 알 정도이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엔 비루하다.



러시아어는 예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상빼때르부르크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 기차에서 생존수준으로 배웠다.

러시아는 사람들이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것에 비해 영어가 안통해도 너무 안통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물 하나 사려고 했는데 water 를 못알아들어서 내가 러시아 단어 Вода ( 발음: 바다 )를 아직도 기억하겠는가. 당시엔 한국어와 영어만 할 줄 아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러시아어를 생존하기 위해서 배워야 했다. 그것도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 기차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안에서 24시간 동안 할일이 없어서 키릴 문자와 간단한 인사, 여행 회화를 조금 외웠다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는 나 말고 아시아 여자 여행객은 없었고 대부분 현지인이었다.


아저씨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보드카를 1병씩 들고탔고 젊은 애들은 다들 편한 츄리닝 복장으로 도시락 라면을 먹거나 뜨거운 차를 계속해서 마셨다. (러시아 차문화도 엄청나다. 기차에 뜨거운 물 정수기는 필수)

나는 중간중간 여행도시를 스탑하는 식으로 총 1달간 러시아 여행을 했는데 최소 기차 탑승시간은 6시간, 제일 오래탔던 시간은 약 52시간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52시간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심지어 제일 저렴한 꼬리칸이어서 샤워할 수 있는 곳도 없고 화장실 세면대마저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딱딱한 베드에 누워있거나 밑에 의자에 앉아있거나. 그럼 내가 뭘하겠는가. 엄청 두꺼운 론리플래닛 유럽판을 한 4-5번 읽다 지쳐 러시아 사람들이랑 눈 마주치면 가끔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치우기 위해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 러시아를 벗어난 후 수년간 러시아어를 쓸 일이 없으니 (있어봤자 인삿말인 프리비엣이나 한국사람들도 잘아는 감사합니다란 뜻을 가진 쓰빠씨빠 정도만 생각난다) 지금 기억에 남아있을리가. 정말로 스쳐지나갔다.


다음으로 아랍어. 

혹시 고등학생 때 제 2외국어 하지 않았냐고 하면 땡.

앞에서 언급했듯이 난 제 2외국어가 일본어였고 아랍어 역시 러시아처럼 현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배웠다. 나는 인도 여행갔다가 삘받아서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북부 지방에서 3개월(비자 최대 체류기간)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히말라야 산맥 고산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나는 "여기가 샹그리아군, 지상낙원이야" 하면서 매일매일 산골소녀 코스프레하며 마을을 헤짚고(?) 다녔다. 작은 마을이라 여기 동네 사람들은 어느 외국인이 왔는지, 어느집에 누가 사는지 샅샅이 다 아는 곳인데 환대 문화가 특별한 곳이다.


동네 산책하고 있으면 너도 나도 우리집에 들어와서 짜이 (밀크티) 좀 하고가하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 분들도 시골 마을 사람들이다보니 영어가 그리 잘 통하진 않는다. 그나마, 젊은 친구들은 일본인들이 세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어느정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지만 어른들은 통역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인샬라 (신의뜻)였고 그 다음으로 배운 것은 앗쌀라무아리꿈 이란 인사에 "무알리꿈 아쓸람 (맞는지 기억이 안난다. 여튼 이런 비슷한 발음이었는데)" 으로 화답하는 것인 걸로 기억난다. 아직도 잦은 정전으로 불이 나간 한 숙소 주방에서 도통 다 똑같애 보이는 아랍글자를 외워보려고 용쓰면서 기초적인 단어를 배웠다. 뭐, 그렇다 해도 당시 아랍어로 소통이 3분이상 지속될 정도는 아니었으니 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는 스쳐지나갔다란 표현이 적합하다.


스페인어는 사실 내가 지금 제일 배우고 싶은 언어 중 하나이다.

어렸을 적부터 영어 다음에는 스페인어 해야지 줄곧 생각했는데 정말 중국어란 어마어마한 변수가 내 인생에 급하게 생겨서 계속 미뤄지고 있다. 노력을 아예 안한 건 아니다. 나름 대학생 때 남미 친구에게 스페인어를 배워보려고 한 7일동안 노력한 적도 있고 스페인어 발음기호 읽는 법은 어느정도 익혔다.

최근에는 하루에 15분만 스페인어에 투자하자!라는 생각으로 busuu 라는 앱을 통해 스페인어 기초적인 표현이랑 단어를 외우고 있다. 근데 뭔가 나는 한국형 인간인가. 앱으로 단어나 기초표현 외우는 것보다 그냥 인강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는 것이 취향에 맞나보다. 영 집중이 안되는 걸 보면. 뭔가 꾸준히 되지 않는다. 고민이다. 책을 하나 사서 매일 조금씩 익혀나가는 것으로 할것인가. 아니면 팟캐스트로 유명한 실비아쌤 오디오 클립을 매일 챙겨들을 것인가.



여튼 뜬금없이 외국어 이야기로 오늘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나의 외국어 썰로 귀결되었다.

요즘 고민인 것이 중국어를 배우면서 영어를 오랫동안 놓았더니 중국어와 영어를 거의 맞바꾸는 수준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는데 영어단어보다 중국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오늘도 전화영어하는데 막 빠르게 공감하는데 "뚜이 뚜이 뚜이" 라고 하는 나자신을 보고 또 자괴감에 빠졌다.

진심으로 완벽한 3개국어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결국 중급수준으로 정체기에 빠져있는 영어, 중국어 때문에 큰일이다.

언젠가 나도 완벽한 Trilingual이 될 수 있겠지.


그래서 오늘도 중국어 오디오 클립을 들으며 출근하고 중국어 노래 들으면서 일하고 전화 중국어를 하고

저녁에는 화상 영어를 하고, 넷플릭스 무자막으로 보기 하고.

누가 보면 언어병 걸린 사람으로 여기겠다.


이전 03화 12. 나는 누가 보면 못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