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Apr 24. 2019

06. 나한테 말 좀 안걸었으면 좋겠는데 외로운건 싫어

소심함과 외향성을 가장한 성격이 공존할 때 


앞서 말했지만 나는 천성이 원래 소심하다. 

점점 성장하면서 이 소심함을 감추기 위한 외향성을 가장하기 시작했고 

나랑 아주 가까운 사이를 제외한 나머지 '지인'의 범주안에 든 사람들은 나의 소심함보다는 가장된 외향성을 내 성격으로 정의한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히 오랫동안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배낭을 메고 1주일은 기본이고 반년 넘게도 떠돌아다녔다.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한달 이상 같이 붙어다니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분명 뭔가 트러블이 생기거나 답답함이 생기거나 불만이 생기리라. 


무엇보다 나는 여행할 때는 조금 게으른 편이라서 그 때 그 때 일정을 정하는 편인데 이게 합이 맞는 사람이 그리 많이 없다. 관광지와 식당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고 그냥 길을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한테는 의미없는 시간낭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수많은 상업적 관광지에 오히려 흥미를 많이 잃었다. 그냥 그 나라 사람들, 길거리 구경하는 것이 더 좋은데 이는 혼자 여행할 때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자 혼자 여행한다고 하면 대개 반응이 비슷하다. 

"와, 대단해요"

"안무서워요?"

솔직히 나는 여행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지 모르겠다. 그냥 누구나 여행비를 가지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거 아닌가. 다만 장소만 옮겼을 뿐, 거기서 돈을 쓰는 것도 길을 걸어다니는 것도,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일상생활과 진배없다. 다만 편한 것은 이방인으로서 그 장소에 녹아들 때는 현실 세계에서 해야하는 고뇌를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롭지 않아요?"

맞다. 외롭다. 

때로는 이 외로움이 좋을 때도 있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너무나 좋은 풍경을 볼 때, 혹은 기나긴 이동의 시간일 때 등 가끔은 혼자인 게 아쉽다. 


대학생 때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하면서 여행을 많이 했다. 카우치 서핑은 현지인의 집에서 공짜로 머무는 대신 그들과 문화적 교류 (그냥 친구놀이. 수다 떨고 하는 것)를 하곤 한다. 당시엔 에어비앤비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었고 가난한 1인 여행자한테는 에어비앤비는 비싸기 때문에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카우치 서핑은 가난한 백패커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방일 필요도 없다. 빈 소파에서 자도 되니 재워만 줘. 그런 의미에서 카우치 서핑인거다. 특히 서양에선 낮에는 카우치 소파였다가 밤에는 펼쳐서 침대로 만드는 형태의 가구를 많이 쓰곤 하는데 말그대로 거기에서 많이 자곤 했다. 나중에는 척보면 척. 아, 나 오늘 여기서 자면 됨? 하고 알아서 카우치를 침대로 만드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대신 카우치서핑하려면 조건이 있다. 

성격이 활발해야 하고 지치지않아야 한다. 왜냐면 호스트들은 "내가 여행을 갈 수 없으니 여행자들을 집에 모셔서 간접적으로 여행하는 느낌을 내고 싶다"라는 것을 바라는 친구들이 많다. 즉, 내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기대를 많이 하기 때문에 나는 공짜 숙박을 하는 대신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썰을 풀어줘야 하고 같이 놀아줘야 한다. 물론 쿨한 호스트는 그냥 잠자리만 내주고, 편하게 쉬다가~ 하고 얼굴 1~2번 마주치고 바이바이 한 호스트도 있지만 카우치서핑에서는 그런 호스트가 조금 드물다. 

(근데 소심한 여행자들입장에선 이런 쿨한 호스트가 정말 최고였다) 


장기여행하다보면 꽤 많이 지친다. 가끔은 새로운 사람을 안만나고 싶을 때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화제는 떨어진다. 상대방이 지루해하거나 둘다 공통 관심사가 떨어지거나 침묵이 생기면 을의 입장인 내가 불안해서 억지로 화제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질질 끌고가곤 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외향성을 가장한 성격으로 카우치서핑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했으나 

속으로는 항상 

"제발 호스트가 무지 바빠서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곤 했다. 

어쩔 때는 호스트와 실컷 재밌게 논 후에, 

아침에 어떻게 인사하는게 자연스러울지 몰라서 일부러 호스트가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생활을 시작한 적도 있다. (방문밖으로 들리는 소리로 항상 유추한다) 그래서 보통 1~2박을 할 경우 첫날 저녁에는 재밌게 놀고 그다음날에는 내 생활을 가지곤 한다. (호스트도 보통 출퇴근을 하니 1~2박 할경우엔 마주칠 일이 그리 많진 않다) 


완벽한 외향성을 갖추지 못한 탓에 

나는 외국 여행을 할 때 외국애들이랑 미친듯이 오랫동안 놀진 못한다. 

그냥 Small Talk 를 조금 하다가 금새 피곤해져서 내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하이퍼텐션 (에너제틱) 하다는 소릴 많이 듣는데 그게 서양으로 가면 반절로 더 줄어든다. 외국어를 쓰다보니 아무래도 에너지 소모량이 더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그럼에도, 또 여행할 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면은 

미친듯이 외국애들이랑 막 어울려서 재밌게 노는 장면이다.

왜냐하면 어찌됐건 우리나라에선 외향성을 지향하는 문화아닌가. 

또 보여주기식은 외국애들이랑 거리낌없이 놀고있는 모습이 최고다. 

(물론 정말 의미없다. 그냥 일종의 허세 중 하나랄까)   

옛날에는 그래서 "나 이렇게 애들이랑 잘 놀고있어"라는 것을 인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함께 인증사진을 찍곤 했는데 요샌 그런게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아니깐 굳이 외국인들이랑 사진을 잘 안찍는다. 다만, 그들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런 것만 머릿 속에 담아둘 뿐이다. 

외국인들이랑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은, 찍히는 사진과 다르게 사실 되게 짧다. 짧고 굵게! 놀고, 빠진다. 

이 마저도 시작이 어렵다. 시작하면 미친듯이 놀아준다.

하지만 나와 말이 제대로 통하는 외국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소심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다. 

말이 잘 통할만한 친구가 없을 거 같으면,  항상 속으로 말한다. 


"나한테 말 좀 안걸었으면 좋겠는데 외로운건 또 싫어" 


사람은 모순적인 동물이다. 

오늘 우연히 접했던 책 제목이 생각난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