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타코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미국식 타코
멕시코 하면 역시 명불허전 타코이다. 한국에서도 멕시칸 요릿집에서 타코와 부리또를 자주 찾아 먹을 정도로, 타코를 좋아했던 나는 멕시코에 도착하면 1일 1 타코 할 생각에 부풀었다. 첫날, 멕시코에 도착한 날 기대에 부풀어 주문한 타코는 옥수수 또르띠야를 두 장 겹쳐 고기를 얹은 게 다였다.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다양한 소스와 각종 야채, 고기가 어우러져 있던 그 알록달록한 타코와 달리, 멕시코에서 접한 타코들은 심플하다 못해 "이게 다야?"라며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접한 타코는 그냥 서빙된 그대로 먹는 완성형 타코였다면, 멕시코에서 접한 타코들은 사람들이 취향껏 완성해서 먹는 타코였다. 타코는 한국의 쌈에도 종종 비유되는데, 생각해 보면 누가 상추쌈을 완성해서 주느냐와 상추쌈에 고기만 얹어주고, 자 나머지 재료와 소스는 취향껏 얹어 먹어보라고 하는 것 차이인 것 같다. 상추쌈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또르띠야에 고기만 올려주는 형태는, 그리 이상하진 않다.
모든 타코 노점에는 빨간 살사 소스와 녹색 살사 소스, 그리고 매운 살사 소스 등 최소 3가지 이상의 소스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대부분 양파나 고수 등을 각자 취향껏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별도 통을 마련하고 있다.
옥수수 또르띠야에 고기재료, 살사소스, 양파와 고수 심플한 조합이지만, 집집마다 살사를 직접 만들고 고기 요리 방식이 다르기 맛이 다르다. 매일매일 타코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타코 노점마다 최소 5개 이상 메뉴를 가지고 있고 많은 곳은 10개가 훌쩍 넘는다. 그때 그때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올린 타코를 주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치면 매일 다른 고기반찬이 나오는 백반과 같다.
처음 멕시코 타코를 먹었을 때 맛있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타코들과 사뭇 달라 살짝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한국뿐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국가에서 온 친구들도 멕시코 타코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말하곤 했다. 멕시코에 와서야 "아, 난 텍스멕스식 타코(Tex-mex tacos)를 좋아했던 거였어"하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마치 토핑 가득한 미국식 피자만 익숙했던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얇은 도우에 심플한 재료로만 마무리한 이태리식 피자를 처음 접하고 실망했던 것처럼.
텍스멕스 음식(Tex-mex)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텍사스식 멕시코 음식을 가리킨다. 과거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는데 미국으로 합병되었던 만큼, 오늘날에도 멕시코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텍사스에서 미국식으로 변형한 것이 바로 텍스멕스 음식이다.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완성형 타코 역시 텍스멕스 타코라고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부리또도 텍스멕스 음식이다. 그래서 멕시코에서 은근히 부리또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칸쿤과 같은 관광으로 유명한 곳,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혹은 식당들에서 부리또를 종종 팔곤 하는데 다른 멕시코 음식보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텍스멕스 음식은 우리나라에 살던 화교들이 중국 작장면을 들여와 캐러멜 소스 등을 넣고 변형해 만든 짜장면과 같은 존재이다. 중국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만나기 힘든 것처럼, 멕시코에서도 텍스멕스 음식은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아니면 좀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멕시코의 국민 타코는 알 파스톨
타코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일반 클래식 바베큐 고기부터 곱창, 눈알, 뇌, 혀 등 각종 특수부위 타코, 생선과 새우 타코, 콜리플라워 등 옥수수 또르띠야에 올려 먹을 수 있다면 뭐든지 타코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고기구이 중 '삼겹살'이 국민 음식으로 손꼽힌다면, 멕시코 타코에선 '타코 알 파스톨(tacos al pastol)'을 꼽을 수 있다. 흔히 멕시코 타코 제대로 하는 곳, 맛집을 찾으려면 터키 케밥집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깃덩어리의 크기로 유추할 수 있다.
하루에 그 정도 크기 이상의 고기를 소진시킬 수 있다면 맛집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특제 양념에 재우고 빙글빙글 돌리며 고기를 굽는다. 이 고깃 덩어리를 '트롬뽀(Trompo)'라고 부른다. 두 장 겹친 옥수수 또르띠야에(보통 한 장은 얇아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 장 겹치는 경우가 많다) 트롬뽀를 수직으로 얇게 잘라 올린다. 마지막으로 고깃 덩어리 위에 꽂혀 있는 구운 파인애플 일부 조각을 자르고 마무리하면 클래식한 타코 알 파스톨이다.
종종 쇼맨십 있는 타께로(타코를 만드는 사람)는 트롬뽀 고기 조각을 자르고 파인애플을 한 번에 잘라 올리는 것을 과장된 몸짓으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보는 재미도 있다. 물론, 영세한 타께리아나 노점의 경우엔 파인애플을 생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트롬뽀(Trompo)에서 이미 우리가 터키 케밥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타코 알파스톨은 1930년 중동 레바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멕시코로 건너와 만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중동식 양고기 구이를 밀 또르띠야 혹은 피타 브레드(중동에서 즐겨보는 납작한 빵, 이곳에선 pan de arabe라고도 불린다)에 올려 먹던 것이 그 기원이다. 이것이 멕시코에 자리 잡으면서 소금 양고기는 곧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로, 밀 또르띠야/피타브레드는 옥수수 또르띠야로 바뀌어 오늘날의 타코 알파스톨이 되었다.
당시 레바논 이민자들이 정착했던 곳은 멕시코 시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푸에블라(Puebla)'라는 곳인데 아직도 이곳에 가면 타코 아랍에 (아랍식 타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레바논 이민자들의 정통 방식 그대로 밀 또르띠야에 소금 양고기 구이를 잘라 올려준다. 아쉬웠던 것은 살사가 없어서, 나와 멕시코 친구에게선 맛이 다소 밍밍하게 다가왔다.
"이거 맛있긴 한데 매콤한 살사만 있었으면 완벽했을 텐데"
음식은 지역의 입맛에 따라 계속해서 변형된다.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식 타코에 익숙해져 정작 멕시코 타코에 실망하고, 멕시코 사람들이 레바논 정통 타코 아라베에 실망하는 것처럼. 원조, 오리지날이 무조건 최고, 100% 맛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다른 국적의 음식이 다른 지역에 다르게 맛이 발전해 왔다면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