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박물관 & 공동묘지
알록달록한 색감, 애니메이션 <코코>의 배경을 연상해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과나후아토엔 의외의 관광명소가 있다. 바로 《미라 박물관 Museo de las momias de guanajuato》가 그것이다. 과나후아토에 간다고 하니, 멕시코 친구가 "아 거기 미라박물관이 있어"라고 귀띔해져서 알게 된 곳이다. 멕시코의 미라라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죽음이란 소재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과나후아토 구시가지에서 미라박물관은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도달한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거의 다 오르고 나니, 그제야 이곳에 마을버스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 그렇지, 이 언덕 위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여기까지 도보로 오르락내리락하기엔 고역이리라. 더위를 좀처럼 잘 안타는 나 역시, 햇빛이 너무 뜨거워 따가움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박물관은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허름했는데 사설 박물관이라 멕시코 주요 관광명소 입장료 치고 꽤 비싼 편이었다. 반면, 박물관은 화장실이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부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여행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아, 입장료를 마음껏 인상하는 듯했다.
미라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라가 된 시신들
과나후아토에 미라박물관이 생긴 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19세기 중반~20세기 초 과나후아토 산타 파울라 공동묘지는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무덤을 유지하려면 가족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은 결국 무덤 유지비를 내지 못했고, 그 시신을 정부가 묘지에서 꺼내기로 결정했다.
대부분 시신은 의복, 치아, 머리카락까지 온전한 마른 미라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과나후아토의 강렬한 태양빛, 건조한 기후와 토양 특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공동묘지는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데, 바람이 많이 풀고 태양이 직접 공동묘지에 내리쬔다. 멕시코 공동묘지는 우리나라처럼 지하에 두는 게 아니라, 관 등에 넣고 집집마다 덮개, 무덤집(?)을 짓는 형태였는데, 뜨거운 태양열과 낮은 습도로 시신이 급속도로 건조해지며 보통 미라화가 되기까지 최소 7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왜 과나후아토에서만 미라가 이렇게 진행되었는지는 학계의 많은 의견들로 분분하다.
미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처음엔 묘지 관리인들이 몰래 지하 묘지에서 이 미라들을 전시해서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던 것이 지금의 미라 박물관로 발전했다. 그리고 과나후아토 관광 가이드들은 마케팅 일환으로 미라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과나후아토 미라를 등장시킨 영화를 통해 멕시코 전역에 "과나후아토 미라"가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다.
총 100여 구의 미라가 보관되어 있는데 이들 중 상처가 있거나 독특하게 죽은 시신 등에 상상력을 부여하며 이름을 붙였다. 가장 유명한 미라 중 하나인 라 브루하(la bruja)는 '마녀'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외관으로만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마녀란 콘셉트에 맞게 철창 뒤에 갇혀있는데, 혹자는 거짓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인에 대해 모욕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왜냐면, 이 시신의 주인공은 가톨릭 독실한 신자의 평범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존엄성을 두 번 죽인 셈이다.
박물관은 작았지만, 죽을 때 표정이 그대로 살아난 미라들의 모습을 둘러보니 섬뜩해졌다. 처음엔 사진을 찍다가 나중엔 사진 찍는 것에 대해 되려 죄책감이 느껴져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묘지 밖으로 꺼내져 이렇게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할 일인가. 마치 집세를 내지 못했으니, 너네 앵벌이라도 해서 값을 치루라는 잔인함이 느껴져 서글퍼졌다.
미라 박물관 옆 공동묘지
멕시코 미라 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로 산타 파울라 공동묘지가 있다. 미라들이 원래 잠자던 공간인데, 지금도 과나후아토시의 공동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이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만큼 죽음에 진심인 멕시코 사람들의 사상은 공동묘지에도 드러나있다.
죽음은 슬퍼할 게 아닌, 삶의 연속으로 보며 경외의 대상으로 보는 멕시코 사람들은 묘지도 각각 개성에 맞게 꾸민다. 묘지마다 제단을 꾸며 고인들이 좋아했던 음식, 음료, 사진 및 개인적인 물건 등으로 장식한다. 알록달록하고 개성이 넘치는 무덤들에서 멕시코 사람들의 유쾌함과 긍정성이 느껴진다.
문득, 이들도 땅 속에서 미라화가 되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다행인 건 이들은 무덤 유지비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당장 파헤쳐져 미라 박물관행으로 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묘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행복한 미라와 박물관의 불행한 미라의 대비를 보며 '죽음'에 대해 다시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