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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Aug 01. 2024

빵이 안보일 정도로 내용물이 가득한 샌드위치

과나후아토 과카마야(guacamayas) 

칸쿤을 제외하고, 멕시코를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과나후아토는 매번 손꼽힌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알록달록한 색감을 가진 작은 마을, 비교적 좋은 치안 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주로 관광객들이 머무르는 과나후아토의 구 시가지를 제외하고 과나후아토의 시내 쪽은 치안이 그리 좋지 않다고 멕시코 사람들은 말했다. 먼 훗날, 길에서 만난 한 멕시코 친구는 과나후아토에서 가까운 레온이란 도시 출신인데 "과나후아토가 안전하다고?" 하며 갸우뚱거렸을 정도였다. 어찌 됐건, 한국 사람이라면 과나후아토 시내 쪽은 갈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구시가지 내 주요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니면 안전한다. 


앵무새란 이름을 가진 샌드위치의 정체 

전날, 과나후아토 축제 때 우연히 어울리며 잠깐 같이 걸었던 과나후아토 커플에게 과나후아토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추천을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더니 "음...과카마야(guacamaya)?" 


이름부터 뭔가 흥미롭다. 과카마야라니. 과카몰리와 마야문명의 합성어일까? 알고 보니 과카마야는 화려한 색상의 큰 앵무새 종류 중 하나라고 한다. 주로 빨강, 파랑, 노랑 등의 눈에 띄는 색상으로 알려져 있다. 과카마야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샌드위치 같은 건데 인근 레온(leon) 지역 특별한 음식으로 과나후아토 대표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음식 이름이 앵무새 이름인 건 단순 우연의 일치인 건지, 아님 나름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 의문은 음식을 받고 나서야 대번에 풀렸다. 

과카마야 샌드위치의 이름 기원은 여러 유래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중 과카마야 앵무새와 연관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좌) 먹기 전 (우)어느정도 속을 먹고 난 후 보이는 빵 

과카마야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과나후아토 시장 가는 길, 커다란 파라솔 밑 한 가판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쌌다. 길거리 음식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 힐끔 구경하니 멕시코식 바게트빵(Bolillo)에 빨간 살사소스에 절여진 잘게 썬 토마토와 양파, 쪽파, 고수 등을 가득 넣고 아보카도, 계란, 치차론(돼지껍데기 튀김) 등을 가득 넣었다. 속이 너무 꽉 차서 빵이 안 보일 정도라 처음엔 이 음식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김밥에 비유하자면 밥은 거의 1줄 정도만 보이고 내용물로만 꽉 찬 그런 스타일이라고 할까? 한국돈으로 3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인데 아보카도와 계란을 포함해 꽉꽉 채워주니 이 정도로 혜자스러운 길거리 음식이 또 있나 싶었다. 


샌드위치이지만, 내용물이 빵을 압도할 정도로 많아 도저히 한 입에 빵과 내용물을 배어 먹을 수가 없었다. 포크로 내용물을 어느 정도 집어먹은 후에야 빵을 양손으로 집고 내용물과 함께 먹는 샌드위치 형태가 나왔다. 바삭한 바게트 안에 고소한 치차론과 매콤 새콤하게 양념된 야채들의 밸런스가 좋았다. 멕시코 사람들이 타코에 많이 넣는 야채들을 아낌없이 넣어주고 그 위에 부드러운 아보카도와 삶은 계란까지. 이렇게 보니 탄단지도 완벽하다. 물론, 돼지껍질 튀김인 치차론은 그리 몸에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샌드위치 안에서 바삭한 식감을 더해준다. 색깔도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한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과카마야'란 새를 연상시킨다. 이 샌드위치 덕분에 난 좀처럼 쓸 일이 없는 앵무새에 해당하는 '과카마야'란 단어를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과나후아토 시장에서 맛본 과카마야, 치차론이 가득하다 

과나후아토에서 파는 모든 과카마야가 다 이렇게 속이 넘치는 형태로 파는 것은 아니다. 다음 날, 과나후아토 시장 안에서 파는 과카마야를 맛보았는데, 가격은 똑같았지만 이번엔 치차론이 엄청 많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 아보카도와 달걀이 들어가 있고 그 위로 빨간 살사 양념에 버무린 양파, 고수 등을 끼얹어주었다. 지방덩어리인 돼지껍질 튀김인 치차론을 이렇게 많이 먹으면 질릴 법한데, 매콤하면서 새콤한 살사 소스를 끼얹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식사보단 맥주를 부르는 샌드위치였다. 


알록달록한 도시, 과나후아토 
삐삘라 전망대에서 내려본 과나후아토 구 시가지 

문득, 이 과카마야는 과나후아토와 참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나후아토 마을이 알록달록한 색감에 물들어 있으니까. 과나후아토 마을의 정수를 보기 위해선 삐삘라 동상이 있는 전망대에 오른다. 흔히 해 질 녘에 가서 일몰과 야경을 보는 명소인데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간대에 이곳에 올라 사람이 붐빈다. 다소 황량해 보이는 산등성이 아래에 노란빛으로 존재감을 자랑하는 과나후아토 랜드마크인 성모성당을 중심으로 저마다 색감을 자랑한다. 해가 지면, 고유의 색을 감추고 은은한 빛을 내는 모습으로 변하는데 넋놓고 보게 될 정도로 아름답다. 과나후아토뿐 아니라 멕시코 전체를 통틀어서라도 이만한 전망대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전에 쓴 과나후아토 브런치 다시보기> 

https://brunch.co.kr/@msk-y/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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