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는 너무 멀쩡한데, 왜 아프다고 하나요?

넷플릭스 <애플 사이다 비니거> 

by 노마 Mar 04. 2025
저는 너무 멀쩡한데, 제 몸은 그렇지 않다고요? 

항암 치료 1회 차 세션이 끝나고 2회 차를 시작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 예약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도착해 혈액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너무나 건강하게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잠도 잘 잤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더 가벼운 내 몸 상태에 자신만만했다. 문제없이 2회 차도 수행할 수 있으리라. 


내 몸은 내 마음을 배신했다. 의사 선생님은 "호중구* 수치가 과도하게 떨어졌다"며 1주일 정도 휴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암 약물 복용 기간 동안, 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정말 암 걸리기 직전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스스로도 "이처럼 건강한 암환자가 또 있을까"하며 자신만만하게 자문했을 정도였다. 


"저는 건강하고 부작용도 거의 경험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반문했지만 내 정신과 다르게, 내 몸속의 면역 수치는 아주 최저로 떨어진 상태로 위험한 상태였다. 


호중구 수치:  혈액에 돌아다니는 백혈구 중 약 60%를 차지, 면역력과 관련 있다. 흔히 호중구 수치가 낮아지면 각종 질병 등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력이 넘쳤고,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혈액 검사 결과는 내 확신을 배반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 호중구 수치가 회복되어 2회 차 세션도 진행할 수 있었는데, 2회 차 세션이 끝났을 때엔 간수치가 문제였다.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간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와 의사 선생님마저 "혹시, 술을 드신 건 아니시죠?"라고 물어봤을 정도다. 매번 혈액 수치 검사할 때마다 기준치 미달하거나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결과로 인해 항암 일정이 계속 연기되는 것을 경험하자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후 알게됐지만, 항암을 시작하는 많은 암환자들은 호중구 수치 문제로 항암 치료 세션이 딜레이 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이 때부터 애가 타기 시작한다. 호중구 수치를 어떻게 회복할까 전전긍긍하며 인터넷의 카더라 정보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사골 육수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닭발곰탕을 먹어라"라는 불확실한 정보 등이 떠돌아다닌다. 거부감이 들었다. "뼈 건강에는 사골 육수를 먹는 것이 좋다"라는 논리는 '뼈'니까 '사골'로 대응한다라는 것에서 기반한 거 같다. 실제로 사골 육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칼슘이 풍부하지 않다. 오히려 극도로 적어서, 뼈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부위가 아프면, 해당 부위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민간 요법 등에 절박한 사람들이 빠지며 기정 사실화된다. 


넷플릭스 <애플 사이다 비니거> 


<넷플릭스> 

항암 치료하는 기간에 넷플릭스에서 <애플 사이다 비니거>란 시리즈가 공개됐다. "암을 자연식(주스)/운동 등으로 회복했다"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인플루언서가 등장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시리즈는 웰니스 스타트업 창업가 벨 깁슨과 웰니스 인플루언서 밀라 블레이크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들은 각각 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건강한 음식과 운동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졌다고 주장한다. 많은 암 환자들은 이들의 콘텐츠를 보며 희망을 얻고 그들을 따라 한다. 


알고 보니 벨 깁슨은 암에 걸려본 적도 없는 사기꾼이고, 밀라 블레이크는 스스로 확신했던 자연 기법으로 어머니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드라마는 벨 깁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벨 깁슨보다 밀라 블레이크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그녀의 생각과 행동이 암환자로서 큰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건강한 채소 주스와 운동 등을 하며 스스로가 좋아졌다고 자가 판단한다

<넷플릭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후 팔을 잘라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그녀는 정식 병원을 방문하지도, CT 스캔 등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저, 자가요법으로 인해 그전보다 신체 활력이 훨씬 좋아졌으며 암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콘텐츠화해서 돈을 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는데, 겉으론 건강해볼지라도, 암세포는 계속 퍼져나가고, 속은 계속 곪아간다는 사실을, 죽기 직전에야 깨달은 것이다. 


결국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몸이 건강해졌다란 착각을 일으킨 셈인데 나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을 경험한 거다. 물론, 어떠한 병이건 긍정적인 마음과 건강한 식습관은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미 병에 걸린 몸에 '예방책'은 치유책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병에 걸리고 나서, 건강한 음식이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약이 되진 못한다. 


내 몸 건강은 실제 체감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그동안 큰 병 한 번 걸려본 적 없고, 아파보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지 말 것, 건강하더라도 꾸준히 건강검진 등은 받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나 역시 암에 걸리기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건강한 사람 중 1명"이었으니. 



이전 10화 생각보다 할만했던 첫 항암치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