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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암환자의 해방, 항암 종료 선언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by 노마 Mar 25. 2025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 



젊은 여성으로서의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이 있다. 임신 계획 유무이다. 항암 치료는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는데 문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난소 속 난자 세포도 파괴한다. 즉,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 난소 기능이 완전히 손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가임기 여성인 경우에 의사 선생님은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난자를 동결하거나, 난소보호주사를 맞느냐이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임력을 보존하느냐, 보존하지 않느냐란 선택지가 주어지니 망설여진다. 내가 원해서 하지 않는 것과, 애초에 그것을 못하게 된다는 것은 동일한 결괏값을 가진다 하더라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여성으로서의 하나의 기능을 잃는 박탈감이라고 할까. 


게다가 이 옵션들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매회차 수십만 원을 자가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난소보호주사를 맞는다고 한들, 100%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다. 주사를 맞아도 어차피 손상이 되는데, 그저 조금이라도 덜 손상되게 만들어 주는 약한 방어막에 불과하다. 어차피 아이 안 낳을 거니까 굳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가임력을 보존할 필요가 있을까란 이성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라는 만약에란 감성이 충돌한다. 


난자를 얼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고민 끝에 난소보호주사는 맞기로 했다. 인생을 살아갈 때 100% 확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날 한 선택으로 혹시나 생길 수 있는 큰 후회를 최대한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회 차 항암치료를 마치며 


나에게 주어진 예방적 항암치료는 4회를 1 세션으로 본다. 1회는 보통 3주로 치고, 일정이 변경 없다면 3개월에 1 세션을 끝낸다. 이때 다음 항암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종료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내 마음대로 5회 차에 종료할 순 없다. 4의 배수에 해당하는 회차에만 종료 의사를 밝힐 수 있다. 


항암 치료 4회 차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무슨 결과가 나오더라도 4회 차에서 종료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나마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었다. 어차피 8회 차, 12회 차까지 한다 하더라도 항암 세계에서 100% 완치란 개념은 없다. 아직 창창한 젊은 30대에, 항암치료를 오랫동안 받으면 몸이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우울증에 자기 효능감이 바닥을 칠 거 같았다. 육체 건강과 정신 건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의사가 적극적으로 다음 항암치료를 권유하지 않는 이상, 나는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을 선택했다. 


다행히 4회 차, 항암 주치의 선생님은 "재발 위험이 있는 유전자 때문에 8회 차까지 하는 게 좋겠지만... 환자분의 의지가 중요하니깐요"하며 나의 항암치료 종료 선언을 담담하게 받아주셨다. 물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나는 나를 갉아먹는 암에 비로소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한파가 몰아치던 그날, 항암제를 맞지 않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음에도 손이 더 이상 저릿저릿하지 않았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항암 치료를 중단한 지 거의 1개월이 넘은 시점, "내가 아팠던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물론, 당장 직장이나 일자리에 복귀할 생각은 없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 만큼, 당분간은 글을 쓰거나, 그동안 해왔던 여행 일기를 차근차근 정리할 예정이다. 


아프기 전과 크게 다를 거 없는 일상이지만, 큰 변화는 커피를 끊었다는 것이다. 커피가 암에 나쁘다는 게 아니라, 수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저녁에 커피를 마셔도 밤에 잠을 잘 잔다고 여겼는데 따지고 보면 당시 나는 새벽 3시~4시 돼서야 잠을 자고 7시~8시에 일어나는 최악의 수면 습관을 유지했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는데, 카페인에 민감해졌는지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가 둥둥 울리는 상태로 새벽 두세 시까지 뒤척이다 보니, 이러다가 다시 최악의 수면 패턴으로 돌아가겠다 싶었다. 커피를 끊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원래부터 커피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기 때문에 미련이 없다. 


커피를 안 마시니, 확실히 자정쯤 되면 졸음이 몰려온다. 최소 8시간 이상 수면 습관은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저속노화 식단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던 술은 100% 끊었는데,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교통사고처럼 다가온 암은, "너 그렇게 잠도 제대로 안 자면 몸이 회복을 못해"란 경고를 날렸고,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누구에게나 암은 시나브로 올 수 있다. 담배를 평생 피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한 사람들이 위암과 대장암에 걸리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처럼, 암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같다. "암"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모종의 원인으로 내 몸의 면역력이 낮아졌기 때문에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로 여기고, 이를 통해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암 투병 생활을 하는 모든 환우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니체가 "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That which does not kill us makes us stronger.)"라고 말한 것처럼, 이 순간을 이겨내면 당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투병 플레이리스트로 죽을 것처럼 아프고 힘든, 고난과 역경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켈리 클락슨의 "Stronger(what doesn't kill you)" 노래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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